부활의 주님을 보고도 모르는 이유

2008. 3. 16. 22:07좋은 글, 이야기

부활의 주님을 보고도 모르는 이유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다. 여자의 몸으로 무덤에 간다는 것은 강심장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데 어둠 컴컴한 새벽 미영에 무덤으로 갔다. 무덤에 가서 무덤의 문이 열려져 있고 시체가 없는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다른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고하였다.

 

그런데 그 두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찾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결방안을 모색해 주지 못한 채 그냥 가버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기만 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안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왜 금방 알아보지 못했을까? 의구심이 생긴다. 이렇듯 우리도 지금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까? 자문해 봄이 어떨는지

 

왜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무덤에 가면 예수님의 시체라도 볼 줄 알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시체는 없고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만 놓여 있었다. 두 제자가 해결해 줄로 알았지만 해결은커녕 그냥 가버려 실망과 좌절 속에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슬픔과 눈물 속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일 년 365일을 사순절처럼 지내고 예수님의 고난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문제에 봉착되었다고 할지라도 슬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죽음의 반대인 생명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무덤가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무덤가에 맴돌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생명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직접 나타나셨는데 왜 못 알아봤을까?

 

어둠 컴컴한 무덤 안에 들여다봐도 예수님을 계시지 않는다. 천사와 대화를 하고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과 대화를 해도 동산지기로만 알고 주님의 시체를 자기가 찾겠다고 그녀의 이름대로(막 달라 마리아)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상황을 유추해 본다면 무덤 안에 있는 마리아는 뒤에 있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서 있는 위치가 빛이 들어오고 있는 방향을 등을 지고 서 있어 뒤돌아봤을 때 예수님의 머리 쪽이 빛에 의하여 알아보지 못했을 경우와 울고불고 하는 난리 속에 눈과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잘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을 어두움 속에서 발견해서는 안 된다. 빛 가운데서 만나야 알아 볼똥 말똥할 것인데 어두운데서 예수님을 봤으니 못 알아 볼 수밖에,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방향을 잘 잡아야 하며 울면서 어두운 가운데서 찾으면 안 된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앙탈을 부린 막달라 마리아는 울고불고 하면서 시체를 가져간 사람을 미워하고 심지어 저주하며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두 제자에게, 천사에게, 나중에는 주님에게 앙탈을 부렸던 막달라 마리아의 성품인 우리 자신이라면 아마 더 했을 것이다. 주님의 시체를 가져간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주하거나 욕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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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려면 어두운 무덤 속 죽음을 향해서는 안 되고, 무덤 밖의 빛과 생명과 사랑이 약동하는 곳을 향해야 만날 수가 있다.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처럼 슬픔 가운데서, 어두움 가운데서, 죽음 가운데서, 미움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빛(Light)이요, 생명(Life)이요, 사랑(Love)이시다.(L3) 부활하신 예수님은 빛이시라, 우리가 밝은 곳을 향해야 하며, 주님은 생명이시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지 말고 산 자들 가운데서 찾아야 하며, 주님은 사랑이시라 진실로 사랑하는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주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서 살아계시고 숨 쉬며 나와 함께 부활의 옷을 입고 함께 기쁨과 빛, 생명과 사랑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자료/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불가)

 

칼  럼  필  자

이종남목사

570220ljn@naver.com

흐  르  는  곡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12곡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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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봉서방카페

b0356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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