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최자실 목사님의 성령 체험 - 죽음의 골짜기에서 만난 하나님

2008. 11. 4. 10:57신앙간증

나는 굴속에 쪼그리고 누웠다.


그러나 바위에서 찬기가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별 빛이 초롱초롱한  밖으로 나와서 키가 큰 풀잎을 한 아름 뜯어다가 바위 위에 깔았다. 다시 누워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가슴만 쿵덕 쿵덕 뛰고 있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울어 골은 쪼개질 듯 하고 눈은 퉁퉁부어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동굴 속에 들어 앉아 억지로 단식했다. 이틀째가 되니 굶어서 죽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흘째 되던 날 오후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옛 속담에 사흘 굶어 담 넘어 가지 않는 사람 없다더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산 아래 동네에 내려와 사과 몇 알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굴 속에 엎드려 소리쳤다.


“하나님 이제 죽여주십시오.”


또 사흘쯤 있다가 내려가서는 고구마 한 두개 사먹고 올라와서 “죽여주십시오.” 하고, 이렇게 서너 차례 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로 죽게 된 것 같았다. 손발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심장 뛰는 소리가 폭탄터지는 소리 같았다.


중생의 체험


그런데 내가 밤마다 원망하던 그 하나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멀리 계시지는 않았다. 허기진 배를 부둥켜 안고 뭐라도 좀 사 먹으려고 산 개울을 따라 내려갔는데 뜻밖에도 30년 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낯익은 데가 있어 서로를 자꾸 쳐다보다가 옛 기억을 되살리고 반가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그 친구와 함께 개울가에 앉아 지난 과거를 주고받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웃고 울면서 불평과 원망속에서 지난 세월을 털어 놓았다.


‘오늘 밤 지나면 다시 너 안 볼텐데 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잔뜩 해 주리라’


나는 이것이 마지막 신세한탄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있는 모든 말을 다했다. 한참동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친구는 내 손을 꼭 붙잡더니, “자실아, 너 성신 받아라.”라고 말했다. 나는 펄쩍 뛰었다. “예수 믿으면 됐지 성신은 무슨 성신이냐. 나는 열두살 때부터 예수를 믿어 초대 부인회장도 두번씩 했지만 너 보다시피 결과가 이것뿐이야.” “그래 열두살 때부터 예수 믿으면서 요모양 요꼴로 산에서 죽으려고 왔니?” 그러고 보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친구 말로는 내가 이런 식으로 죽는다면 그것은 내가 예수를 잘못 믿었다는 결론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 산 너머에 지금 목사님들이 모여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너 거기 가서 은혜나 받자. 죽더라도 그 다음에 죽고. 너 지금 자살 귀신 들렸어. 그걸 쫓아내지 않으면 지옥 간다.” “난 싫다. 안가, 안간단 말이야. 이 손 놓아라. 그리고 너나 성신 받고 잘 살아라. 나는 일없다.” 나는 자살 귀신 들렸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발악 발악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놓으라고 했지만 한편 마음속으로는 정 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손을 놓으면 오늘밤 나 죽는다. 제발 부탁이니 놓지 말고 강제로라도 나를 그곳에 끌고 가라.” 


결국 나는 그 친구에게 강제로 끌려서 부흥회 장소에 따라갔다. 가보니 천막 속에 가마니를 깔아 놓았는데 사람들이 오백명 가량 앉아서 손벽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성신이 오셨네, 성신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신이 오셨네.”


나는 친구 옆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이구 이 산골짝에서 다 미쳐 버렸구나.”


모두들 미친 사람들처럼 몸을 앞 뒤 좌우로 흔들면서 손벽을 치고 찬송을 부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못 마땅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메아리쳐 오는 것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미쳐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밤 거기서 30여년 만에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듣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날 밤 하신 설교가 30여년 전 해주에서 내가 들었던 설교와 같은 내용이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 사람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식을 낳는 것입니까? 강아지와 돼지는 사람보다 더 많이 낳습니다. 그럼 일하는 것이 목적입니까? 아니외다. 이 세상에서 소보다 더 많이 일한 사람 보셨습니까? 보았으면 누가 말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소의 최후가 무엇이든가요?” 


해주에서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바로 이 설교를 듣고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하였고 이 설교를 듣고 나의 신앙이 시작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 내가 이 산속에 자살하러 와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렇다. 지난 30여년 동안 내가 바로 소 돼지같이 살아왔구나. 돈만 생각하다가 맏딸 죽이고 어머니 마음에 못 박지 않았던가. 30여년 전에 이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듣고도 내가 왜 이런 헛된 길을 걸어왔지? 왜 이렇게 한 눈을 팔며 세상을 살아왔지?”


설교가 끝나고 통성 기도가 시작 되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기도의 열기 속에서 내 마음에도 서서히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나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울음은 원망의 울음이 아니었다. 신세한탄의 울음도 아니었다. 막연하게 서러워서 우는 울음도 아니었다. 어제 울던 그런 울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 우는 울음, 바로 그런 울음을 울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회개의 역사는 부흥회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밤 11시쯤 되어 사람들이 모두 잠든 천막 한쪽 구석에서 견딜 수 없는 애통의 회개가 나오는데, 옛날 사촌 시누이 다섯을 흉보던 일부터 시작하여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죄는  모두 회개하였다. 마음 문을 열어놓고 회개를 시작하니 왜 그렇게 회개할 일도 많은지, 왜 그렇게 내가 죄인이었던지, 새벽이 되도록 회개의 기도는 끝이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옛날의 잘못들이 하늘의 별처럼 되살아 나오는데 도저히 나로서는 기억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성신이 시키지 않으셨다면 나는 그와 같은 완전무결한 회개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새벽 3시쯤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무거운 쇳덩어리 같은 것이 가슴을  쾅하고 내려치더니 온 몸이 불덩이처럼 활활 타오르면서 진동이 일어나고 입에서는 생전에 들어보지도 못하던  소리가 나오는데 혀가 꼬부라지며 영어도 아니고 일본 말도 아닌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마귀의 역사인 줄로 잘못 알고 더욱 힘차게 회개의 기도를 하였다.


 

“아, 내가 이 산 속에서 보름이 다 되도록 먹지 못했더니 산신령이 들렸구나.”


 

돌아가신 어머니가 항상 성신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초신자는 잘 구별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깊은 은혜 가운데 들어갈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런데 어머니가 성령의 역사는 평안과 기쁨이요, 마귀의 역사는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이라 하셨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안하고 기쁘고 감사의 기도가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가?”


 

“아니면 마귀의 역사인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도만 하면 입속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데 아무리 멈추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밤새 얼마나 곤두박질을 했던지 온몸이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다.


 

“할렐루야”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시원하고 상쾌한 새벽 기운이 천막 안에서 감돌고 찢어진 천막사이로는 먼동이 터오고 있는데 천막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내게로 오더니 등을 두드리면서 인사했다.


 

“자매님 어젯밤 성신 충만 받았습니다.”


 

“방언도 유창하게 하고요.”


 

“축하합니다. 자매님.”


 

더욱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던 그 친구는 밤새도록 나를 위해 기도했다면서 내가 은혜 받은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받은 것처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도 기뻤다.


 

나는 새벽 기도를 마친 다음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나는듯이 발걸음이 가벼웠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어제의 그 소리가 아니었다. 졸졸 쏴르르 흐르는 물소리가 음률이 있고 그 소리에 맞추어 바위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돌 틈에 자란 잡초들이 합창을 하는 것 같고 그 위의 피어오르는 안개는 하나님의 영광 같았다. 어제까지 그렇게 우중충 하게 보이던 소나무들이 이날 아침에는 유난히도 푸르렀다. 바위 위에 올라서서 심호흡을 하니 삼각산이 내 뱃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고 만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산천초목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나무의 풀들은 하늘을 향해 자라 오르고 계곡의 물은 순리(順理)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데 어머니와 주의 종의 말씀을 불순종한 나 혼자만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용서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택하신 백성은 절대 버리시지 않는다는 위대한 사랑의 진리를 뼈 속 깊이 깨닫고 감사드렸다. 나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펴고 찬송을 불렀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별들이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내가 이렇게 찬송을 잘 했던가?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계곡에 울려 퍼져 내려갔다. 건너 산봉우리에서 아침 까치가 깍깍 까르르 하고 나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다. 옛날 못했던 찬양을 한꺼번에 다하려는 듯 나는 더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다.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며 이 골짝 저 골짝으로 퍼져 나갔다. 내가 들어도 아름답고 신비한 음성이었다.


 

“저 푸른 하늘이 언제부터 저렇게 고왔던가? 저 흰 구름이 언제부터 저리도 아름다웠던가? 왜 그 옛날에는 저 하늘 저 구름을 못보고 살았던가? 내가 30년 동안 헛되이 믿었구나.”


 

기도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고 찬송은 입술로 나오는데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할렐루야를 외치니 새로운 세상이 발밑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사흘 동안 회개의 기도를 드리느라 입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도 어디서 그렇게 기운이 나오는지 내 기도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루 밤과 하루 낮을 기도와 찬송으로 보내고 나니 아쉽게도 부흥회는 끝나고 말았다. 목숨을 끊기 위해 삼각산 골짜기로 찾아들었던 최자실을 거듭난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놓고….


 

최자실|1915년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58년 순복음신학교 졸업과 함께 불광동에 천막교회를 개척하였으며, 1964년이후 수 십년에 걸쳐 해외선교와 국내사역등  성역에 헌신한 여종이다. 이 글은 최자실 목사의 자서전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에 수록된 글의 일부이다.

출처 : 천국은 확실히 있다
글쓴이 : 한나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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