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기도를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2009. 3. 26. 11:59좋은 글, 이야기

온전한 기도를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에 나오는 기도는 단순하게 기도로만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성경을 대하는 이들마다 단순한 기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요구만 하나님께서 하소연 하듯이 쏟아 붓는 기도를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은 단호히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 하에 글을 쓴다.

 

   아마 이런 내용으로 접근한다면 기도를 맹렬히 하는 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의 방법만의 기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무속주의자들처럼 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무조건 응답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기도가 온전한 기도라 할 수 없다.

 

   물론 기도의 선배들 가운데 응답을 많이 받은 이들의 기도를 모델로 한다거나 아니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기도를 모방을 하는 것이 온전한 기도로 착각하지 말라. 시대에 따라 기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아니지만 성경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기도를 찾아 온전한 기도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구약에 나오는 기도라는 단어 중에 수십 개 단어가 있는데 서로 다른 의미 속에 기도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자기 성찰을 위한 기도로 테필라](hL;piT])와 팔랄(ll'P;)이 있는데 테필라와 팔랄이란 단어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테필라는 ‘사이에 끼어들다. 개입, 중재하다, 라는 기본 뜻이 포함된 단어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개입하며 끼어들어 간섭하시는 기도로 내가 스스로 만든 제목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기도제목으로 주시는 기도임을 깨달아야 한다.

 

   팔랄는 ‘판단하다. 결단하다’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말씀, 한 말씀을 받아 배우며 인식하고 깨달아 성장해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겠다고 결단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하고 간구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 쪽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말씀하신 약속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내겠다고 하는 강한 충성과 맹세로 다짐하는 것이다.

 

 

   ‘나다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서 헌신을 뜻하는 기도로 자신을 바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행을 맹세하고 제물을 바치며 어떠한 일을 삼가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바쳐야 하는 제물은 무엇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를 바치는 것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을 바치는 내용이 구약에 나오는데 단순히 동물인 소를 의미하는 것도 되지만 소라는 의미는 배우는 존재를 의미하는데 배우는 존재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상을 배우며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는 존재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그 말씀과 사상의 불에 의하며 짐승의 속성이 태워지고 다른 존재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짐승의 속성으로 이루어진 옛 사람의 습관을 삼가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다.

 

   기도를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는 것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물론 기도를 장 시간하는 유익과 효과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기도의 장점이라고 할 수 없는데 오랫동안 기도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아주 취약점으로 여긴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시간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타종교와 같이 내 중심의 기도를 의미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한 몸이 된 가운데 이루어지는 기도를 의미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나 위대한 성자들의 기도 중 아주 간단하며 집중하는 기도는 아주 간단명료하다. 심장이 뛰는 가슴에다 손을 대며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기도 외에 그 어떤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로 자신의 기도는 전혀 내포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도제목이 많은 이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기도라고 할 것이며 그런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기도라고 하찮게 여길 것이다. 만약에 이런 기도를 지금 하라고 한다면 할 분이 얼마나 될까?

 

   경기도 어느 모 교회는 기도에 대한 의미와 개념을 가르치고 난 뒤에 대표기도를 시키면 머뭇거리며 쉽사리 기도를 하지 않고 신중한 기도를 하고 있다. 유창한 기도나 말의 끊김이 없는 기도가 잘 하는 기도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기도 순서가 틀리거나 유창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온전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만든 기도제목이 그렇게 많지만 막상 기도의 줄기를 잡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되면 내 중심의 기도가 하지 않게 된다. “주님 제가 어떤 기도를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먼저 여쭈어 봐야 한다. 그런데 그런 질문도 여쭈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사정만 아뢰고 있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다.

 

   저는 이것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하는 식의 기도가 올바른 기도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이렇게 표현을 하지만 막상 그런 기도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 중심의 기도가 시작하다가도 중단시키고 하나님께서 유도하시는 기도로 몰입하게 된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몰입시키는 기도를 자주 권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도제목이 없이 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 중심의 기도제목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제목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도 줄기를 잡는 것이다. 과거 중보기도 단체에서 봉사할 때 기도제목을 부탁하며 기도를 요청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기도를 부탁하는 이에게 성경구절을 제시하며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고 읽으면서 기도의 줄기를 잡아 기도를 독려하게 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칼  럼  필  자

이종남목사

570220lj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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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봉서방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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