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 유다가 아닌 바로 내가 말입니다

2009. 4. 3. 09:15좋은 글, 이야기

가롯 유다가 아닌 바로 내가 말입니다


    집안의 귀한 물건이 철모르는 아이에 의해서 엿가락 몇 개로 팔리어지는 일들이 옛날에는 꽤 있었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집안에 있는 물건을 헐값에 의해 고물상에 팔고 나서 그것이 굉장히 가치 있는 물건임을 알고 나중에 땅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반대로 헐값에 산 물건이 나중에 그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방작으로 알고 헐값에 사들인 그림이 수백억 원으로 호가하는 명작인 것으로 판명돼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영국 대중지 텔레그래프에 의하면 지난 20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한 경매장에서 한 스위스의 고미술 수집가가 라무아뇽 가문이 내놓은 수십 점의 그림 중 홀바인의 제자 중 한명이 그린 모방작으로 알려진 한 초상화를 350만원에 샀습니다.  모방작인 만큼 소장가치가 떨어져 구매를 두고 한참을 망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홀바인의 그림이라는 점에 마음을 두고 그 그림을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몇 년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그림이 모방작이 아닌 홀바인이 16세기에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이 판명됐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세밀한 묘사와 특징 등 홀바인의 기법과 일치하다는 의견을 냈고 또한 적외선 실험결과로 그 그림이 독일 르네상스 대표적인 화가 한스 홀바인 2세((1497~1543)의 진품으로 판명 났습니다.  


   고미술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이 그림의 정확한 가경은 나와 있지 않지만 최근 홀바인의 토마스 와이어트 초상화가 무려 130억 원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이 그림은 최소 100억 원은 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즌 그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의 가치를 바로 평가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요셉을 시기하던 형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20세겔에 팔아넘깁니다. 그 당시 성인 노예가 은 30세겔에 매매되었던 사실로 보아 요셉이 은 20세겔에 팔린 것은 요셉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약 13년 후에 그 당시 최강국인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형들이 17년간 같이 생활해 온 요셉이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을 알았다면 요셉을 팔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을 겨우 은 20세겔에 팔았다는 것은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의 가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가 스승이신 예수를 팔아넘기기 위하여 대제사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려니 얼마나 주겠느냐?”고 흥정합니다. 대제사장이 은 30을 주겠다고 하자 가롯 유다가 군소리 없이 받은 것으로 보아 아주 만족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3년이나 쫓아다니며 제일 측근에서 스승을 보필했던 가롯 유다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노예 정도로 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진정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근심하며 서로 “나입니까?” 라고 예수께 묻습니다. 그러나 상투적인 그 질문들을 들으면서 예수는 그보다 더한 찢어짐과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가롯 유다가 회개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가롯 유다는 예수의 간절한 바람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뛰쳐나온 가롯 유다는 대제사장과 예수를 잡을 계획을 짜고 예수께서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 예수에게 입을 맞춥니다. 결국 가롯 유다는 사랑의 입맞춤이 아닌 배신과 반역의 입맞춤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롯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의 죄를 지고 가 버렸습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예수와 함께 살아왔습니까? 얼마나 예수를 따라 다녔습니까? 얼마나 최측근에서 예수를 섬긴다고 떠들고 다녔습니까? 그랬다가 어느 한 순간 사탄에게 은 30도 아닌 완전히 헐값에 예수를 넘겨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를 팔아버린 가롯 유다를 수없이 내 입으로 정죄하면서도 우리들은 그 입술로 순간순간마다 예수의 몸에 사랑의 입맞춤이 아닌 배신과 반역의 입맞춤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입술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것도 모자라 허리에 비수를 꽂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도리어 예수께 “나는 당신을 판 사람이 아니지요?” 하고 뻔뻔스럽게 되묻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찢어지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우리를 향하여 돌아오라고 회개하라고 부르짖는 예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 애절한 주님의 음성을 뒤로 하고 도리어 더 사악한 길로 내몰아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2000년 전에 예수를 판 가롯 유다가 아닌 바로 오늘날의 내가 말입니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26:25)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칼  럼  필  자

김해찬목사

호주 시드니 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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