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3. 11:11ㆍ좋은 글, 이야기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까지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되는 영화)
최근에 “일라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배경은 서기 2034년, 알 수 없는 대재앙으로 지구가 폐허가 된지 30년이 지나 살아남은 자들이 생활하는 모습이다. 도시는 형성되었지만 자원은 희박하여 서로 죽이는 잿빛 도시의 문명은 폭발과 함께 사라져 약탈자와 악당으로 가득한 곳에 나타나는 일라이라는 방랑자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일라이(아메리칸 히어로의 상징인 덴젤 워싱턴)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임무를 맡아 인류의 미래가 좌우되는 중요한 어떤 책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엄청나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현재의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으로 본다면 액션 블록버스트에 속할 수 있다.
물을 점령하여 마을을 세운 악당 카네기(게리 울드면)는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줄 어떤 책을 찾고 있던 중, 마을에 나타난 일라이가 자신이 찾고 있던 소중한 책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과 동거하던 맹인 여자의 딸, 솔라라를 일라이의 방에서 함께 동거케 하여 책을 빼앗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솔라라는 카네기의 협박에 못 이겨 일라이를 염탐하려 했지만 일라이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그를 동조하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이 잿빛으로 변해하고 물 한 모금조차 얻기 힘든 인류, 멸망의 위기에 놓인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열쇠를 지키려는 일라이는 지상 최후의 문명을 지키려는 사명을 갖고 있었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일라이가 가진 책을 빼앗으려는 카네기는 일라이와는 목적이 서로 달랐다. 둘의 목숨을 건 대결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더해 주는 장면 속에서 일라이는 부상을 입고 목숨을 건졌지만 그가 가진 책이 카네기 수중에 들어가고 만다. 카네기는 자신의 목적이 성공하여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일라이는 자신의 사명과 임무을 완수하기 위해 솔라라와 함께 계속 서쪽을 향해 간다.
카네기는 자신의 마을로 돌아와 그렇게 갖고 싶었던 책을 소유하게 됨으로 목적달성에 기뻐하며 봉인된 그 책을 열기 위해 만물상 주인을 불러 책을 열게 되었을 때 그 책은 하얀 종이에 불과했다. 그 종이에는 인쇄나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닌 점자로 된 성경책이었다. 카네기뿐만 아니라 눈이 정상인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카네기의 동거녀이며 정부인 맹인여자는 카네기가 가져온 책을 만졌지만 그 내용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를 떠나 버린다. 이로 인해 카네기가 세계 정복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마을 주민들은 꿈을 잃어버려 아비규환의 마을로 돌변하여 약탈하고 기물 부수고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상태로 벌어진다.
그러나 책을 잃어버린 일라이는 자신의 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 펜과 종이를 가져와 자신이 부르는 대로 기록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사명과 책임을 다했던 일라이는 책을 빼앗겼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 오면서 읽었던 그 책의 모든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술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받아 적은 그 도시의 대표자는 인쇄를 하여 완성된 책을 만들었을 때는 일라이가 기력을 다해 숨을 거둔 뒤였다.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했던 책은 다름이 아닌 성경책이었다. 일라이가 가지고 오면서 그 책의 모든 내용을 모조리 외운 것일까? 아니면 그 책의 내용을 하나님의 은혜로 구술하도록 역사하신 것인가?
이 영화에서 무엇을 우리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지 개인적인 평가는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옛 사람의 속성을 가진 육의 사람은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며 눈이 어두워 현실을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일라이가 성경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다 외우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본다고 해도 글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읽었던 내용을 하나님의 은총아래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록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고 본다. 모든 것을 믿음에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운 일라이처럼 사명을 다하는 모습은 마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장면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악당의 손에 들어갔지만 백해무익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성경을 빼앗겨 가지지 못했지만 그 내용 전부를 구술로 전할 수 있게 된 장면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현실성이 없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역사하신 것이라면 신앙인들은 받아들이게 된다.
과거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기 이전에도 구술로 전해 내려오다가 전수자들이 죽음으로 인해 그 내용들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러나 이 성경들이 필사에 따라 철자가 첨가되거나 삭제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줄의 문장이 거듭 기록되거나 삭제되는 일도 일어났다.
이로 인해 사본을 적는 전문가들을 양성하여 맛소라 사본을 비롯하여 각종 사본을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 내용들이 번역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올바르게 전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 내용 중에 구원역사의 줄기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와 개념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본질과는 달라졌다.
이로 인해 각종 번역들이 일부 내용들이 틀리고 변질되었으며 삭제, 첨가, 배제. 오역으로 인해 상처투성인 성경책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소개하는 영화를 목회자나 직분자는 필히 관람하는 것이 매우 좋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의 사명과 의무를 다하는 장면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 13:19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막 4:15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라는 구절을 묵상한다면 성경책이 빼앗겨도 읽혀진 말씀의 내용은 마음에 새겨서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기초로 한 영화라면 한번 볼만 하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깨달았으면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믿음 생활을 하지만 말씀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 올바른 신앙생활이 되었으면 한다. 그 내용을 찾았으면 이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야 한다. 이런 전수자가 바로 에녹이라고 이름이 전수한다는 뜻인데 바로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마치 일라이가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악당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성경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내용 전부를 전달하는 사명과 임무에 충실한 것을 우리가 본받았으면 한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모든 내용을 전하고 죽음에 임했지만 그 책이 발행되어 지구의 최후에서 새로운 지구로 문명이 발달되고 제 2의 전수자가 바로 솔라라가 탄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 잘 다니고 예배만 드리면 다 되는 것일까? 구제나 하고 봉사하며 선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과 임무를 다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근본을 깨닫고 생명의 근원과 뿌리인 예수님과 하나님과 함께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말씀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 전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구든지 만나면 전해야 할 것이다. 틈만 나면 전해야 할 것이다. 누가 당신을 건드리면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다할 때까지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 |||||||||
|
'좋은 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원 높은 세계 (0) | 2010.05.04 |
---|---|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결단-무릎꿇기 (0) | 2010.05.04 |
바울과 바나바의 분열을 통하여 (0) | 2010.05.03 |
짐을 나누어 져 주는 사람이 되자! (0) | 2010.05.03 |
개장수보다 못한 영력이 될 수 없다 (0) | 2010.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