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께서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

2010. 6. 8. 20:18좋은 글, 이야기

사도 바울께서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

 

  사도 바울이 자신 편지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어느 말씀을 놓고서 현대인들에게 강조하며 경고하는 말씀을 나열한다면 밤이 새도록 열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일 것이다. 그 중에 우리가 현재 너무나 유념해야 하는 말씀을 놓고 글을 쓰고자 한다.

 

  골로새서 2장 9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는 말씀을 되새기는 정도가 아니라 이 말씀을 토대로 현재 기독교의 허구를 분석하고 그리스 철학과 헛된 사상의 속임수로 뒤덮여 있는 기독교를 바로 잡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그리스 철학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를 근동 아시아 지역과 이집트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사상으로 가득 한 철학들이 난무한 시대였으며 각종 학문들은 기독교를 위협할만한 내용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전통으로 전해져 오던 시대였다. 이런 한경 속에 사도 바울은 마치 거대한 바윗덩어리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인 복음의 말씀을 선포해 왔던 것이다.

 

  오늘날도 기독교란 전통 속에 감춰져 온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이 뒤섞여 있다면 그 어느 누가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교회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고대 종교가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면 아연실색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폴 카루스(Paul Carus)가 말하기를 “그리스 신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악마로 간주되었지만,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신, 영웅들에 관한 전설에 묻혀 있던 사상들은 그대로 유지된 채 기독교 화되었다.”는 이 한 마디는 기독교의 역사와 기원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한국크리스천 학술문학상 저술대상 작인 「기독교 대조작사」(심상용 목사)에 보면 “교회 역사가 로마로 넘어간 이후 천 구백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 그 본질이 어디 있는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기독교란 종교의 숨겨진 내막의 실체를 벗겨보면 기원사적으로나 교리 신학적으로 교묘하게 조작된 허구와 거짓의 종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증거는 다름 아닌 왜곡된 역사와 그 결과물인 교리신학의 허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고 기술하고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 Gibbon)은 그의 주저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로마제국 쇠망사」에서‘교회사의 자료가 부족하고 의문투성이’라는 말은 로마 교회로 일컬어지는 로마 가톨릭이 국가 권력까지 장악하게 된 이후 로마 철학이나 사상을 기독교화 시킨 이후 그 자료들을 철저하게 파괴시켜 나갔고 그 근거들을 광범위하게 소멸시켜 나갔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져 있던 자료들은 물론 로마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종교가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추방하고 파괴시켜 아예 족적의 근거들을 모두 제거하고 씨를 말려 나갔다.

 

  이것의 영향으로 가톨릭적 교리에 따라 가톨릭적 이단사냥의 습성에 의존하여 가톨릭적 방식으로 인간사냥을 한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은 무차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로 태워죽이고, 목을 자르고, 물에 빠트리고 목매달아 죽인 교회역사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을 본받아 유럽 각국에서 처참하게 자행된 칼뱅주의자들의 인간사냥은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건너가 원주민 인디언들을 마녀로 몰아 학살한 사건들이 기록되고 있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 가톨릭을 앞세워 들어온 풍신수길의 일당들은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베었을 뿐만 아니라 악랄하게 살상하는 만행을 저질러왔다. 이렇게 가톨릭과 개신교의 역사에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는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과연 원시기독교의 전형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고대 페르시아 군인들이 미트라 종교의 영향을 받아 전쟁에 나갈 때 가슴에 그리고 방패나 깃발에 십자가를 달고 임했으며 그리스 군인들도 이에 따라 가슴에 십자가를 달고 나갔음 고대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다. 이 영향이 로마제국에까지 미쳐 그들도 가슴에 십자가를 달고 전쟁에 임했음을 로마 역사에서도 입증하고 있다.

 

  무엇이 원시기독교의 원형이며 뿌리인가를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로마제국에 의해 전 국민에 향한 가톨릭화가 된 것만을 갖고 원시기독교와 동일하게 여겨서 안 된다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사상을 유입하여 가톨릭의 교리작업을 세워나갔으며 신학이라는 미명아래 성경과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내놓은 것을 신학이라고 한다면 과연 신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고찰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역사와 사상이 오늘날까지 미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의 경고 말씀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서구교회가 몰락의 원인을 찾아 대안을 내놓으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으며 미국 교회가 붕괴되는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실토했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위기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불구경하듯이 낙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주의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경고의 말씀 차원이 아니라 이미 고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로잡혀 있음을 알려 주고 있으며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에 철저하게 뿌리박혀 있다는 말씀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말씀이 오늘날 너무나 절실하게 들려와야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아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이 주와 함께 한 몸이 됨에 따라 넘치게 되며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로 인해 육의 몸을 벗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는 것이다. (골 2:14~15)

 

  전투복의 가슴에나 각종 무기에다 십자가를 달고 전쟁에 나가서 싸워 승리하는 목적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주님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것이 바로 세례(침례)며 안식(정착)이고 십자가로 승리하는 신앙성장의 요소가 된다.

 

  따라서 신앙인임을 자처하기 위해서 장식품으로 귀걸이나 반지로 아니면 차 안이나 밖에 액세서리로 달고 다니는 십자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십자가를 져야 하는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지내며 주님과 일으키심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힘을 받도록 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타 종교처럼 예배당 안팎으로 십자가를 내건다고 해서 위와 같은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따른 본질적인 의미와 개념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이방종교자들이 행하는 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방종교는 보여주는 시각적인 종교며 원시기독교는 들려주는 청각적인 종교다.

 

  심지어 샤마니즘에 의해 무당들도 십자가를 끗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여러 이방종교에서도 십자가 장식을 무수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기독교와 동일 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십자가를 그런 형식으로 남발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표시하는 것임을 인식하자.

 

 사도 바울선생이 오늘날 가톨릭과 개신교가 이방종교의 영향으로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빠져 물들어지게 된다는 것을 이미 예언한 것이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원시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는 온데 간데 없으며 로마가톨릭의 영향에 따른 개신교가 아무리 개혁을 하고 여러 신학을 주장해 왔지만 결과 유행에 따라 외쳤을 뿐이다.

 

  신학이라는 미명아래 군데군데 성경을 도배했지만 진정한 기독교를 제시하지 못해왔다. 오히려 혼란과 공허만 주었을 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며 욕을 해대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보다는 성경학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말씀론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낳아야 한다.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는 기독교의 허구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말씀을 가르쳐 봐야 소용이 없으며 성령운동을 일으켜도 잠시 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서 찬반이 일어날 수 있으며 무수히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것을 예상한다.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야 하는 내용이며 그 어느 누가 이 일을 일으켜야 한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글   쓴   이

이준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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