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2. 10:30ㆍ좋은 글, 이야기
자기 자신을 위하여 울고 있는 이들이여!
19세기의 작가 Oscar Wilde가 쓴 ‘주님(The Master)’이라는 풍자적인 소설의 책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무덤에 모셨던 아리마대 요셉과 무명의 한 젊은이와의 대화를 그린 것입니다.
저녁이 되어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요셉은 벌거벗은 채 가시로 자기의 몸에 상처를 내고 머리에는 재를 관처럼 쓰고 울고 있는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 젊은이에게 “젊은이여! 당신이 슬퍼하는 이유를 나는 알 듯합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는 정말 위대한 분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이 젊은이가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때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예수를 위해 울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울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나도 물로 술을 만들었습니다. 나도 문둥이를 고쳤고 눈먼 자를 보게 해 주었습니다. 나도 물 위를 걸었으며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광야에서는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라는 사람이 행한 것은 나도 모두 다 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를 아니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있으나 이 이야기는 수많은 질문들을 자아내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가 행한 것은 모두 성취할 수 있었던 젊은이. 그러나 한 가지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지 아니했습니다. 아니, 그는 십자가에서 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자기를 위해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의 문제만은 해결하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심상치 않습니다. 온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지난 달 25일 지진이 촉발한 쓰나미로 수마트라 서부 먼따와이 군도에서 최소 400명이 숨졌고 아직까지 생사조차 파악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국가재난관리청에 따르면 10개의 마을이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했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우스빠가이 지역 수산청 관계자는 베투몽가라는 마을에는 200명이 살았는데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40명뿐이며 생존한 주민들은 곳곳에서 울부짖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재난이 발생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26일 중부 자바에서는 메라피 화산 폭발로 최소 40명이 숨졌습니다.
정부는 화산 반경 16Km이내 주민 1만 3천명에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인구가 밀집해 있는 자바섬의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메라피 화산은 과거에도 수십 차례 폭발해 지난 한 세기 동안 수많은 희생자를 냈는데, 지난 1994년에는 60명, 1930년에는 1300명의 인명을 빼앗아갔습니다. 메라피 화산 폭발의 징후가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감지되었기 때문에 신속히 대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화산 인근의 주민들 중 가축과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주민들은 피난 명령을 거부한 채 화산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넋을 놓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5일 자정 직전 한 세기 만의 최대폭발을 일으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염에 그슬린 가스를 내뿜으면서 가옥과 나무를 불태워 버리며 미처 피하지 않은 주민 수십 명의 목숨도 앗아가 버렸습니다. 화산 폭발 이후 희생자는 모두 120명이 넘어섰습니다. 숨진 그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은 이유, 아니 떠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그곳을 떠나도 생존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목 놓아 운 것도 분명히 목숨을 잃은 그의 부모 형제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목 놓아 운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지진과 화산폭발이 잦은 것은 열도가 오스트레일리아판과 유라시아 판의 경계인 '순다 해구(자바 해구)를 따라 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지각의 거대 판끼리 경계를 이루는 해구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지역입니다. 판끼리 마찰로 발생한 열이 용암을 형성하고, 늘어난 용암은 화산 분출과 지진을 유발합니다.
지금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경보가 내려진 화산은 3곳이 됐고, 주의보가 발령된 화산도 18곳이나 됩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불안에 떠는 이유는 나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있습니다.
하루에 한국에서는 약 680명이 죽는다고 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약 2만5천 명 정도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 죽은 사람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물론 망자를 보며 그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어서 울지만 또 한편으로는 산자인 나도 망자와 같이 언젠가 저렇게 관속에 들어 갈 것이라는 불안함에 눈물짓습니다.
20세기의 거장 신학자 폴 틸리히는 그의 저서 ‘존재의 용기’에서 사람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누구나 다 불안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언젠가는 ‘꼭 죽는다’는 죽음의 운명 때문에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죽음의 운명이 언제 우리에게로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존재의 불안’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언제 심판과 불행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 하나로 그보다 몇 십 배의 보복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이것을 ‘도덕적 불안’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돈을 벌면 벌수록 반비례하여 생겨지는 공허감, 명예와 권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 속에 이상스럽게 침투하여 들어오는 무의미성, 선한 일을 하면 할수록 뒤따르는 짜증과 불만, 이것을 ‘영적 불안’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기에,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알기에 불안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네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임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자기 자신을 위하여 울고 있는 이들이여! 불안에 떨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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