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9. 11:05ㆍ좋은 글, 이야기
상대방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했는지
며칠 전 한국 법원에서 내린 이혼 판결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한집에 살면서 7년여 동안 메모지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눠 온 노부부에게 법원이 이혼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에 따르면 80세이신 할아버지와 76세이신 할머니는 1969년 혼인한 뒤 성격 차이로 결혼 생활 내내 불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가부장적 성향에다 매사에 꼼꼼하고 경제관념이 매우 투철했고 그에 반해 할머니는 소비 생활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관계가 계속 악화됐고 급기야 2003년부터는 서로 메모지를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했다고 합니다. 주로 할아버지가 메모지로 어떤 요구를 하면 할머니는 같은 방식으로 답을 하는 식이었고 할아버지는 심지어 할머니에게 시장에서 살 품목과 가격을 일일이 지정하고 요리방법까지 제시했다고 합니다.
결국 2008년 8월 깻잎 반찬을 상에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에게 심하게 멱살을 잡혀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던 할머니는 집을 뛰쳐나갔다가 몰래 집에서 가져간 각종 서류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은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2004년도에 정부의 한 발표로 인해 사회가 떠들썩한 적이 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보건복지부가 한국이 조만간 세계 최고의 이혼국가가 될 전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해 결혼 대비 이혼율이 47.4%를 기록, 조만간 50%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수치만을 놓고 본다면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발표에 의하면 매년 결혼하는 2쌍 가운데 1쌍 이상이 이혼하게 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발표 후 사람들이 이혼율에 대한 충격에 빠지자 법원행정처는 이혼율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혼율 47.4%라는 것은 한 해 동안 혼인을 한 부부와 이혼을 한 부부를 따로 놓고 비교할 때 이런 비율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전체 혼인건수에 전체 이혼건수를 대비해 산정한 이혼율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9.3%로 11쌍 가운데 1쌍 꼴로 이혼하는 셈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어떠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혼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더니 지난해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부부의 이혼율이 가입국 중 1위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도 이혼율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혼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기는 다했는데 그 최선을 다 한 자리가 어디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편에서가 아닌 나 자신의 편에서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그것은 나를 위한 최선이지 상대방을 위한 최선은 아닙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의 최선이란 나만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 상대방도 고려한 최선이어야 합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소와 사자는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결혼해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결혼식장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풀이 정말 싫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그러나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소와 사자는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둘은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와 같습니다. 그저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은 최선이 아니라 최악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 아담이 홀로 외롭게 있는 것이 보기에 안쓰러우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으셔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아담이 잠든 사이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시작이요 또 부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아마 하나님께서는 서로 최선을 다하며 도우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부부란 서로 돕기 위해 맺어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부부란 나의 자리에서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사람이 이혼해도 됩니까?”라며 질문을 던집니다. 물론 이 질문은 정직한 질문이 아니라 꼬투리를 잡고자 던진 질문입니다.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 주면 된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묻는 것은 양날의 칼이었습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에도 무조건 이혼증서만 써 주면 된다고 가르쳐 준 것은 아닙니다. <신24:1>에 의하면,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문제는 뭐가 수치스러운 것이냐 이게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아내를 버리고 싶으면 사실은 별 거 아닌 것 가지고서는 “이게 수치스러운 일 아니면 뭐냐?”고 억지 논리를 펴서 이혼을 쉽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시면, 사람들에게 “예수는 이혼해도 된다고 하더라”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간질할 것이고, “이혼은 안 된다”하면 “모세의 율법에는 해도 된다고 했는데” 라며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일 속셈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음흉한 속셈을 아시고, 율법의 조문 해석을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들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라고 잘라서 대답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하면서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나는 과연 내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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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좋은 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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