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4. 11:15ㆍ좋은 글, 이야기
예수님을 손님이 아닌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바로 어제 2011년의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걸어 놓은 것 같은데 벌써 1장의 달력을 찢어 버립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됩니다. 새해 첫날 신정을 맞는다고 괜히 분주했던 기억이 있는데 벌써 구정을 맞았습니다. 새로운 해가 떠오르면서 새로운 마음의 각오를 하며 거창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깨져 버려 있습니다. 그리고 구정을 맞으면서 다시 그 꿈을 추스르면서 다시 새로운 각오로 마음을 다져봅니다.
그러한 각오들은 사실 생각만으로는 쉽게 이루어질 것 같은데 꼭 뒤를 돌아보면 그것은 마치 어떠한 기적과도 같이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꼭 이루려고 애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너무 허황되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이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적’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기이한 행적, 신의 힘으로 되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적이란 초자연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이 이적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을 우리는 ‘표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요즘 나오는 국어사전은 모르겠는데 내가 사용하는 70년대 국어사전)에는 표적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가 표적은 초자연적인 사건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이적인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놀라운 이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표적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나시매”(요2:11)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 놀라운 이적 안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요? 먼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은 질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이 질적인 변화는 신령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질적인 변화를 우리는 ‘중생, 거듭남’이라고 표현합니다. ‘중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행위가 좀 나아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윤리적으로 생활이 변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착해졌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귀의 자식 이였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진노의 자식 이였던 내가 축복의 자녀로 바뀌는 그 놀라운 근본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손님으로 그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칠일 동안 결혼잔치를 베풀며 때로는 두 주간 동안 계속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잔치에 초청받은 손님들은 그 결혼식에 대한 증인으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손님들에 대한 가장 큰 결례를 행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는 결혼식에 있어서 중요한 예식 수단입니다. 신랑 되는 남자는 신부되는 여자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나의 생명을 바칠 것을 다짐합니다. 당신도 나의 잔을 받아 마심으로 나의 아내가 되어 주기 바랍니다.” 그 잔을 받은 신부되는 여자가 포도주를 마시게 되면 이것은 여자는 남자의 청혼에 대한 승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생명을 당신을 위해 바칠 것을 다짐합니다.” 포도주는 이렇게 결혼 예식에 있어서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손님들은 그 신성한 결혼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포도주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음료에 해당됩니다. 잔치 집에 음료수가 없다는 것은 초청한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이렇게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결혼예식에 있어서 초청을 한 자와 초청을 받은 자 모두에게 있어서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잔치집의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주인과 하인들은 발만 동동 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혼인잔치에 함께 한 사람인만큼 함께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예수님을 찾아 갑니다. 예수님에게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거절하십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에 무조건 따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손님으로만 계셨을 때에는 그곳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손님은 단지 대접만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간청을 받아들이십니다. 잔칫집 마당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위해서 물을 두 세통 담을 수 있는 돌 항아리가 여섯 개가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 집종들에게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주인의 자리에 서서 종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종들은 불순종하거나 불평하거나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진정 주인을 섬기는 자세로 절대 순종을 합니다. 그때부터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되는 놀라운 이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표적을 그 잔치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손님으로만 모신다면 우리들에게는 이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질적인 변화, 중생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표적인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이 손님으로만 계신다면 우리가 양적으로는 변할 수 있습니다. 좀 착해졌다느니, 교회를 좀 더 열심히 출석한다느니, 이전보다 더 열심히 봉사한다느니,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질적인 변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질적인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주님을 나의 손님으로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 있는 내가 죽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내가 죽을 때만이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살아 움직이십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손님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2011년 달력에 아직 11장이나 남아 있는 올해에는 예수님을 나의 손님이 아닌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나의 삶이 표적의 축복으로 넘치는 한 해가 되어 봅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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