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7. 14:21ㆍ좋은 글, 이야기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걸음뿐
2011년 9월 26일(월)부터 10월 1일(토)까지 4박 6일간 J노회 44명의 목회자부부들이 베트남과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다. 인천에서 베트남으로 출발하여 2박 3일간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여행한 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캄보디아 시엠립까지 비행기로 이동하여 거기서 2박 3일간 시엠립에 있는 앙코르 유적지를 여행하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시엠립발 인천행 비행기인 캄보디아 비행기 스카이윙스 아시아 에어라인을 금요일밤 11시 10분에 탑승하였다.
나에게 모든 여행은 출발 직전까지는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행복하지만 막상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피곤하고 불편하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 들뜬 마음으로 이제 편안한 나의 집으로 가게 되는구나 하고 앉아 있는데, 웬일인지 시간이 한참 지나도 비행기는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에어컨이 작동이 되질 않아 승무원들이 에어컨 작동 기기를 만지작거리면서 돌아 다니길래 후진국 비행기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며 기다렸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승객들은 잠시 비행기에서 내려 대합실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들 수군수군하며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승무원들의 영어 발음은 특이하게 캄보디아 억양이어서인지 그들의 해명하는 말이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시동을 걸 때 오일을 분사시키는 곳에 이상이 생겼다나, 다들 그렇게 이해를 하고 불퉁거리면서 대합실로 돌아갔다.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한국인 고객 담당 실장이 와서 큰 고장이 아니니 금방 수리를 하여 2시 30분에 출발할 수 있다고 하여 우리 모두는 불편한 의자에 기대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어느 승객은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지 벌써 어디선가 빈 박스를 구해다가 바닥에 깔고 편안하게 누울 자리를 잡았다. 의자는 하나씩 팔걸이가 있어서 의자에 누울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빈 박스를 구해다가 바닥에 편히 눕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다. 2시간 정도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냥 불편한 의자에 기대 앉아 선잠을 청했다.
잠이 올 리 만무였다. 대단히 느긋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몽사몽간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으니 두통이 왔고, 눈이 따끔거렸다. 12시가 넘으니 면세점들은 문을 닫고 퇴근하였고 공항 직원들도 두 세 사람만 제외하고는 모두 퇴근하여 공항 대합실은 적막하였다. 전기가 부족하여 절전을 해야 하는 캄보디아 형편이므로 전기불빛은 희미하여 더욱 을씨년스러운 캄보디아의 작은 공항 대합실에서 150여명의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한 승객들은 난민들처럼 그렇게 후줄근하게 의자에 또는 바닥에 깔린 박스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느새 잠이 얼핏 들었었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시가 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승객들은 염려와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불평을 크게 터트리기 시작했다. 잠을 자던 사람들도 일어났다. 어떤 승객이 우리가 타야할 이 비행기는 2년 전에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여 안개 속으로 사라진 것과 같은 종류의 비행기라고 하였으며, 몇 달 전에 러시아에서 비행기 사고가 나서 수 백 명이 사망한 것과 같은 종류의 비행기라고 하였다. 승객들이 여승무원을 붙들고 해명하라고 윽박지르며 한국 고객 담당자를 불러오라고 하니, 그녀는 고객 담당 실장은 호텔을 예약하러 갔다고 하였다.
그 말에 승객들은 더욱 더 분통을 터트렸다. 빨리 수리를 하여 한국으로 가도록 해야지 무슨 호텔 예약이냐 하면서. 여승무원을 닦달하여 고객 담당 실장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 때가 새벽 5시 경이었다. 승객들 중에서 가장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은 바로 목회자들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캄보디아를 출발해야 간신히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데 지장이 없는데, 이런 상황으로 보아서는 곧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목사님부부들은 애가 탔다. 아마도 속으로는 긴급한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발 주일 예배를 놓치지 않게 해주시라고. 사실 다른 승객들 중에서는 호텔로 가려고 짐을 챙기고 있었다.
돌아온 고객 담당 실장은 승객들의 불평에 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무도 그의 해명을 믿어주질 않았다. 어떤 이는 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고 따졌다. 또 다른 이는 과거의 비슷한 사고를 상기시키면서 이 비행기를 탈 수 없노라고, 다른 안전한 비행기로 대치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캄보디아 시엠립 비행장에는 대치할 다른 비행기가 없었다. 오직 이 비행기 한 대로 운항을 하는데, 이와 같은 출발 직전의 고장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일로서 이 비행기를 고쳐서 타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느 부인네는 위험한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아시아나나 대한항공 비행기로 표를 바꿔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이 비행기를 고쳐서 타고 가는 일 이외에 아무런 조처도 할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반복하여 간곡하게 말하는데 어쩌겠는가? 이제 거의 다 고쳤으니 7시에는 꼭 출발하도록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고 여기저기서 불퉁거렸으나 어쩔 것인가 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그렇게라도 오늘 중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측이 우세하여 겨우 무마되어서 다시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만약의 경우에 있을 비행기 사고를 상상하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뇌리를 지나갔다. 이 비행기는 아주 낡은 비행기였던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탑승 두려움 증후군을 갖고 있었다. 사실 그런 증후군을 갖고 있어서 절대로 비행기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조사에 의하면 이 세상의 여러 교통수단 중에서 비행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런 말을 들어도 그다지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높은 구름다리나 사다리 같은 것을 이용하지 못한다.
높은 곳에 오르면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가족이 대둔산을 갔는데 대둔산 꼭대기가 아름답다고들 하여 다들 구름사다리를 올라가는데 나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 아래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의 대처 불가능한 상황, 깊은 물속에서의 숨이 막히는 상황 등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높은 곳과 깊은 바다 속을 두려워한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6시 30분이 되니 직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불안해하였고,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섰다. 승객들이나 직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무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운명 앞에서 마음들이 착잡해 보였다. 오직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 비행기가 공중에서 엔진이 멈추면 어떻게 할까? 이 비행기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나의 두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경우의 그 애들의 슬픈 눈이 떠올랐다.
그동안 뉴스에서나 보았던 비행기 사고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사무엘상 20장 3절에서 요나단에게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걸음 뿐이니이다.” 라고 했던 고백이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 해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죽음도 그를 손댈 수 없음을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 알게 된다. J노회 목회자부부 44명은 조용히 속으로 하나님을 불러본다. “하나님, 아직 나의 사명이 남아 있습니까?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걸음뿐인 이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라고 기도하였다.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농담을 하지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모두가 심각하다. 이 순간에는 삶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사명에 대해서 깊이 묵상한다. 비행기에 오르긴 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명싸개로 싸서 보호해 주셨듯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셔서 안전하게 한국에 도착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한다. 7시가 되니 비행기가 이륙하였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이 토요일 아침인데 다행하게도 비행기가 이륙하게 되어 주일 예배를 인도하는데 지장이 없게 되었음을 감사하였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쯤 되어 인천 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한국 땅을 밟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시 사명을 감당할 마음의 다짐을 하였다. 버스를 타고 정읍에 도착하여 승용차로 집에 오니 저녁 9시쯤 되었다. 일주일간 집을 떠나 있었는데 마치 1년쯤 떠났다가 돌아온 것 같았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아니 거의 겨울 날씨였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구나.” 하고서는 깊은 잠을 잤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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