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복종을 하기 원한다면

2011. 11. 9. 11:25좋은 글, 이야기

온전한 복종을 하기 원한다면

 

 

 

     온전한 복종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에 따른 승리일 것이다. 그런데 마귀사단과 싸움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정당당하게 해야 하는가? 싸움에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광야 40일 동안 가장 모범을 보여 주신 싸움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은 말씀을 바탕으로 공격했고 주님은 말씀을 바탕으로 방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성령에 이끌리어’(마 4:1)‘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4:1)에 싸움에 임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5장에도 성령과 함께 하며 싸움에 임하면 얻어지는 승리의 삶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영적 승리를 얻기 위해 기본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원칙을 무시하며 싸움에 임하게 되면 백전백패를 할 수밖에 없지만 이 원칙에 입각하여 적용하며 싸움에 임하게 된다면 백전백승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승리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패배만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대로 하면 승리할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외면하고 꼭 자기만의 방법과 원칙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이 그 방법과 원칙에 승리했다고 해서 자기에게도 승리를 안겨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만의 원칙과 방법이 최고라고 하는 망상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5장에서 살펴보면 할례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6장 여리고성을 함락하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할례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성들의 생식기 일부를 제거하는 작업인데 요즘 의료시술로 하면 고통을 없애주는 마취제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수술 후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약품까지 동원해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의료기구가 신통치 않았을 것을 예상해본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수술 후의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골 2:11을 보면 육적인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 할례의 의미라고 하는데 주님과 한 몸이 이루어지는(고전 6:17 주 하나님, 주 예수님, 단 성령에게 주를 앞에다 두고 사용하지 않음)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할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신 30:6에 보면“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시고자”하는 목적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할례를 시행하게 하신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과 연합해서 한 몸이 되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굳이 그런 육체의 고통을 안겨다 주는 할례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여호수아 5:9에 애급의 수치를 우리 앞에서 굴러가게 하시고자(길갈이란 이름이 명해진 이유) 할례를 시행하게 하여 성결의 표시를 주시고자 하는 의도였다.

 

    우리가 애급과 같은 이 세상, 사람인 애급과의 교제를 끊어버리고 부끄러워해야 할 애급의 수치를 제거해주는 작업을 감행하지 않으면 세상에 속한 생각이 남아 있어 또 다시 애급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애급에서 건진 바 된 것을 항상 기억하게 하기 위해 우리 몸에 흔적으로 남게 하신 것이다.

 

    여리고의 견고한 성체가 얼마나 크고 높아 함락하는 것이 불가능케 할 만큼 이스라엘의 진입을 막고 있으며 가나안 입국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육의 승리를 주시지 않는다. 육체, 자기 자신의 지체를 죽여야만 승리를 얻게 된다.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삶을 누려야 한다.

 

    요단이라는 본질적인 뜻은 낮아지고 낮아져서 빠르게 흘러가는 강이란 의미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어질 때까지 낮아지고 낮아져야만 한다.(골 3:3, 5)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 계속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요단강에 들어가면 잘못된 것으로 씻겨 내려가고 좋은 물을 흘러야 한다.

과거 우리가 광야에서 생활해왔던 옛 사람의 습성으로 인해 얻은 수치와 패배의 삶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놓인 수치와 패배가 굴러가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장애물로 남아 있다면 승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아무리 할례를 감행하여 실시했다고 할지라도 여리고 평지에 기다리며 유월절을 지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가 내 안에서 증거로 남아 있어야 된다. 유월절을 지킨 일로서는 이스라엘이 애급에 구속된 것뿐만 아니라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는 전후에 있어서 어린 양 보혈에 의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참된 영적 승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일하심)에 대하여 보혈의 공로의 증거가 있는 곳에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만나를 먹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의 소산으로 무교병을 만들고 볶은 곡식을 먹게 된 이후로 만나가 중단되었던 것이다. 가나안의 땅의 열매로 양육되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하늘에 내려주는 음식이었는데 딱딱하지 않고 먹기 쉬운 음식이었지만, 가나안 땅 입성 이후에는 그 땅에서 얻어지는 소산물을 취해 딱딱한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오늘날 교인들이 먹기 쉬운 스프처럼 된 가벼운 설교를 듣고자 한다.

 

   요한 6:60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에서는 “이 말씀은 단단하도다”라고 되어 있다. 얼마나 먹기가 어렵고 단단하면  소화하기 쉽지 않은 말씀을 손을 대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설교가 어렵거나 난해하면 거부하는 성향이 너무나 많다.

 

    어렵게 가르쳐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생소한 내용이 담긴, 아니 성경의 본래적인 의미와 개념으로 원형과 본질을 전하면 딱딱하게 여기며 입에 대기도 싫어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먹을 수 있도록 마련하신 것인데 튼튼한 이빨이 생겼으면 질근질근 씹어서 먹어야 한다.

 

    만나는 특별히 요리하지 않아도 되는 광야 생활에 알맞은 음식이었지만 가나안 땅의 곡식성령의 심오하게 이루어진 단단한 말씀이지만 천국인의 완전한 생애에 너무나 딱 맞는 음식이다. 영적 승리를 위해 필요로 하는 힘(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귀중한 음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섭취해야만 되는 음식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군대장관에게 절대 복종을 해야만 되기 위해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벗어야만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5과 같이 모세에게 신발을 벗기를 원하는 것처럼 여호수아에게 신발을 벗게 하신 것은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신발을 벗어야 하는 복종을 원하시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군대장관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복종한 것처럼 승리의 절대조건은 그리스도를 주로서 온전히 모시고 따르는데 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고 특히 가나안에 들어간 후 승리의 군대 사령관으로서 특별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었다.(13~14)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노예 신분으로 신발을 벗는 행위는 가나안 땅에서 복종하고 그를 신뢰하여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며 행동하겠다는 자세다. 모세도 떨기나무 아래서 신발을 벗으며 거룩한 땅에서 하나님께 복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구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복종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온전한 복종을 하게 된 마지막 종착점이 바로 십자가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온전한 복종을 원한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복음화의 원천인데 민족 모두가 예수 믿게 해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기도를 하지 말고 내가 먼저 할례를 받아 육의 지체를 죽여야 한다.

 

   내 앞에서 애급의 수치를 굴러가도록 성결의 표시로 마음의 할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어린 양의 피가 내 안에서 흔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으면서 양육을 받아야 한다. 또한 군대 장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행위로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이제부터 나의 모든 신분을 벗어버리고 나의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노예로서의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나의 체통, 체면, 자존심 분만 아니라 나의 모든 열등감, 수치, 실패, 좌절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복종을 위해 신발도 벗고 육의 지체를 죽이는 일에 서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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