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1. 12:53ㆍ좋은 글, 이야기
십계명의 재해석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 왔을 때는 수 많은 박해 가운데 선교가 어렵게 진행되었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유교 문화와의 충돌이었습니다. 특히 기독교는 임금도 부모도 없는 ‘무군무부(無君無父)’라는 종교라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 오해는 당시 임금에 대한 충성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해 온 유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에는 굉장히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이 오해의 발단은 1791년의 ‘진산사건’에 있습니다. 전라도 진산에 윤지충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고종사촌인 이 사람은 정약용을 통해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한국인 최초로 천주교 신자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1787년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초기 신자들은 대부분 조상 제사를 지냈는데 1790년 북경에 있던 구베아 주교가 조선 천주교에 조상 제사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 소문 에 따라 윤지충은 신주를 불사르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이 소문이 조정에 알려 지게 되고 결국 그는 체포되어 죽게 되었는데 그가 한국의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였습니다. 이런 배경 탓인지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 왔을 때도 사람들은 기독교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불효 막심한 종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효를 무시하지 않는 오히려 효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보여 주는 네 가지의 계명 다음으로 제일 먼저 네 무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만큼 효는 기독교에 있어서 결코 등한시 될 수 없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계명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하는 첫째 부분과 인간과의 관계에 속하는 두 번 째 부분 중간에 두신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계명을 십계명의 한 가운데, 즉 십계명이 두 부분으로 나뉘는 지점에 위치하도록 했습니다. 이 계명이 사람에 대한 의무를 다룬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것은 두 번째 부분에 속하는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부모란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이 계명은 첫 번 째 부분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 5계명을 중간의 위치에 두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사람에 대한 의무를 단단히 연결해 놓고 계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원문을 직역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고자 하는 땅에서 네가 오래 살기 위해서 너는 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을 번역해보면 “너는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고자 하는 땅에서 네가 오래 살 것이다.” 처음 원문 번역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요구되는 조건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으로 이해 되며 두 번째 번역은 부모를 공경하게 되면 그 결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으며 그것을 오랫동안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두 번역들이 내용상에서는 동일합니다.
부모공경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쁨이 오래 지속되느냐 아니면 짧은 시간에 그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느냐가 결정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5:16)에 의하면 이 오래 살 것 이라는 말씀엔 장수와 복을 누리는 것 까지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이 공경의 뜻을 ‘중요하게 여긴다’,’진지하게 받아 들인다’로 부모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들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양육권, 축복권, 제사권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부모, 혹은 아버지 역할 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하실 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에게 위임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부모의 역할은 그저 영양공급과 경제적인 지원으로 축소되고 있고 점점 부모의 역할을 학교나 교회, 사회와 국가에게 이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사이에 권위가 사라졌고 이것은 가족의 붕괴현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며 그들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를 여호와와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로 유기적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참 하나님으로 인정되기 위해서 오직 여호와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겨야 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인정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언약해주신 복을 받을 수 있게 되듯이, 자녀들이 부모들을 공경함으로써 부모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지난 역사를 기억할 수 있기 위해서 부모들이 겪은 신앙경험은 계속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또 마땅히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그의 뜻을 알고 또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그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 그의 뜻을 아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큰 복입니다. 그러나 만일 부모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 들여지지 않고 그들의 인격이 무시된다면 어떻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교훈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지며, 그들의 신앙경험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의 권위가 무시될 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농담으로 혹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혹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에게 보여주셨고 또 말씀 하셨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가 기억 되고 또 당신의 말씀이 전달 되어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너희 자녀가 너희를 사랑하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나는 내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너희가 나를 사랑하기를 갈망한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이다.” 또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너희의 아버지인 나를 사랑하기를 배우라 그리하면 이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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