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은퇴를 하려했던 이유

2011. 11. 10. 18:01좋은 글, 이야기

조기은퇴를 하려했던 이유

 

 

 

     금번에 목회지를 옮기기 전 나는 조기은퇴를 하려고 했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경기도 시흥에 직장을 잡아놓고 월세방을 계약하기까지 했다. 물론 교회 성도 중에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기은퇴를 하고자 했던 이유는 2가지이다. 한 가지는 목사라고 하는 부담감 없이 마음 편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해서이다. 그렇다고 교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힘이 들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0년 전 옆 교회에서 교인 간에 갈등이 있어 내가 시무하던 교회가 분리되어 나온 탓으로 두 교회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는데 부임하여 8년 동안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교제하며, 1년에 서너 번씩 교회로 초정하여 국악잔치를 베풀고 또한 독거노인들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반찬 봉사를 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였다.

 

     이제 우리 교회와 인연을 맺은 믿지 않은 사람 중에 혹 친척 때문에라도 옆 교회로 나가면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 목회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지쳐서인지 아니면 내면에 잠재된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목사라는 부담감 없이 그냥 성도로서 살아가고 싶어서 조기은퇴를 하려고 한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목사병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목회를 하는 목사들 중에는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목사병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 경우 가장 두드러진 병은 세 가지인 것 같았다.

 

     첫째는 독재병이다. 경험해보아서 잘 알겠지만 나 역시도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기에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여러 중직들과 상의를 하려고 제도를 마련해 놓고 매월 의견을 나누고 또 더 나은 방식이 있는 지를 상의한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틈만 나면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면에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내가 어떤 제안을 하거나 잘못된 것을 가르쳐줄 때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좋기는 한데 조금 성가시구만.”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인지 바른 것을 가르쳐주면 좋기는 한데 성가시다. 내가 한 마디 지시하면 아무 불평 없이 척척 이루어져야 마음이 편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목사들도 그런 마음인지 임직 식에 가면 장로, 권사 권면 말씀 중 18번지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사회적, 교회적 직위 그리고 물질 등으로 하늘나라 건설을 위해 온힘을 다해달라는 권면보다는 목사에게 말없이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믿음이요, 덕이라는 권면이다. 그런 권면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누구의 간섭도, 누구의 방해도 없이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그러한 독선적인 욕구가 있지만 목사라는 직위는 ‘하나님의 종에게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그 욕구를 부추긴다. 그 죄악에서 벗어나고자 조기은퇴를 하고 성도로 돌아가고자 함이었다.

 

    둘째는, 섬김을 받고자 하는 병이다. 목회하기 전 직장생활도 10여년 해보았지만 이사도, 사장도 목사만큼 섬김을 받는 직분이 없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식이 많든 적든, 사회적 직위가 높든 낮든,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도 목사님이라면 떠받든다. 우리 민족의 특별한 종교심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목사만큼 섬김을 받고 대접을 받는 목사는 세계적으로 없을 듯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석에 앉으라고 말씀하셨건만 자리도 항상 상석이다. 이제 상석에 앉지 않으면 되레 이상한 목사 취급을 받을 정도이다. 밥도, 국도, 숟가락도 제일 먼저이다. 한 마디로 목사의 나이에 불문하고, 인격에 불문하고 담임목사는 제일 어른 대접을 받는다.

 

     질서 상 가능한 일이라 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이 끝이 없다. 극히 조심한다고 해도 습관이 되어서인지 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제 섬겨주지 않으면 서운한 면이 있다. 교회 안에서만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안에서 샌 바가지 바깥에서도 새더라는 속담이 있듯 교회 밖의 세상에서도 그런 자세가 나온다. 성도는 물론 세상 사람까지도 섬기며 살아가는 목사도 많지만 그렇지 않는 목사도 많아 목사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도 본다. 그러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목사라는 직업병에 걸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모습이 튀어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살다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큰일 당하겠다 싶어 회사에 들어가 섬기며 살고자 조기은퇴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셋째는, 위, 아래를 모르는 어른병이다. 잘 아는 형님으로부터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그 형님의 동생은 목사이다. 동생 목사가 가정사에 대해 소홀히 한 면이 있어 형이 이러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동생 목사가 이렇게 말하더란다. “나도 이제 결혼도 했고 또 교회에서는 다 ‘목사님’, ‘목사님’ 하고 깍듯이 대하는데 형님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형님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게 그 말을 하는 형님은 몇 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서운한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80이든 90이든 모든 성도가 다 ‘목사님.’ ‘목사님.’하고 하나님을 대하듯 고개를 숙이고 떠받드니 목사가 되면 자칫 세상 선배도, 집안 형님도 심지어는 부모도 몰라본다. 형님이 성도이면 성도 취급을 하고 부모가 집사이면 집사 취급을 하기 쉽다. 교회 내에서는 목사이지만 교회 밖의 가정이나 사회로 돌아가면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듯하다. 나 역시도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점차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보고서 조기은퇴를 하려 한 것이었다.

 

       한 가지만 더 들자면 나만이 옳다고 여기는 나만이즘병이다. 기독교 교리가 진리라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또한 확신할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으로 주신 세상의 건전한 지식까지도 터부시하고서 우리 것만이 그리고 나만이 옳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고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귀 기울이지 않으려하는 경우도 있다. 그뿐 아니라 어떤 특정 사실을 주장할 때 조금 유연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확신적으로 주장하다보니 세상 사람들에게 독선적으로 비쳐져 거부감을 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집단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비 기독교인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 있게 말씀을 하세요?’ 나 역시도 나만이즘병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런 저런 이유로 조기은퇴를 하려고 월세를 얻었건만 희한한 일들이 터졌다. 입사하기로 한 직장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일이 잘못되어 입사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그뿐 만이 아니다. 십 수 년 간 무사고 운전경력이었건만 교통사고까지 냈다. 하는 일마다 꼬여 하나님께 손 들어버렸다. 그 대신 현재 시무하고 있는 교회는 어느 정도 뿌리는 일이 끝났으니 다른 교회로 옮겨서 분위기도 쇄신하고 새롭게 복음을 뿌릴 수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우리 부부의 은사에 부합한 목회지가 나와 교회를 옮겨 다시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역지에서는 더욱 인간답게, 목사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사역의 열매도 더욱 맺히길 기도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