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방심하면 된 통 얻어터진다

2012. 1. 13. 11:38좋은 글, 이야기

영적으로 방심하면 된 통 얻어터진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서 패배한 것은 아간의 죄였음은 물론이지만 아이 성을 아주 작은 고을이라고 깔보았기 때문이다.(수 7:3) 필자가 농촌교회에서 시무했을 때 새벽기도회가 유명한 서울 어느 모 교회의 초청으로 선교대회에 참석했는데 서울 나들이를 안내하던 안수집사 한 분이 시골 목회자를 아주 우습게 여기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찹찹했다.

 

   자기들은 대형교회 안수집사이기 때문에 시골목회자를 자신들의 발꼬락에 때만큼 여기지 않는 꼴불견이 그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주보를 수집하기 위해 교회마다 방문할 때 주보를 얻기 위해 찾아가면 아주 반갑게 여기는 교회도 있지만 왜 왔냐는 식의 아래위로 흩어보면서 거지 취급이나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교회도 있다.

 

    인천 아주 큰 교회의 목회자 사무실에 있는 비서는 찾아갈 때마다 웃지도 않고 왜 왔냐는 식의 모습이 보여 수석부목사에게 언질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래 씹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지금 현재 교체된 비서는 상냥하고 깍듯이 대하는 자세가 한국교회 안에 너무나 절실하다.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왕처럼 모시라는 것이 아니다. 제발 깔보지만 않았으면 한다. 개척교회나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이 찾아오는 분 중에도 교회를 귀찮게 하는 분도 있겠지만 방문객 중에 얼마나 특이한 분들이 찾아 왔으면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하찮게 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깔보지 마라. 그 중에 어떤 인물이 반전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아이 성의 패배는 아간의 범죄에 앞서 아주 작은 성이라 우습게 여기며 전쟁에 임하여 철저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 앞에 공격의 대상을 우습게 여긴다면 어떤 영적 싸움에서도 패배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간이 처벌이 되고 아이 성을 깔본 것으로 인해 저주받은 것이 제거됨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지위로 회복되었다. 패배를 안겨다 준, 적을 향해 다시 공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행동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수많은 전쟁사에서 볼 수 있지만 여호수아서에서 나오는 장면은 고금을 통해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격려하신 후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명하시고 또 승리의 약속을 주시지 않았다면(수 8:1) 승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전에 아이를 쳤을 때에는 하나님의 명하심과 약속을 받은 일이 없이 공격했던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군인을 모두 다 인솔하여 공격한 일을 거듭 기록하고 있다. (수 8:3, 11)

 

    잠언에 보면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미련한 자는 머리 회전이 둔하고 자신의 생각과 방식으로 언행을 일삼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미련과 지혜로움의 차이는 머리 회전이나 아이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서로 일맥상통 똑같을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면 무엇의 차이인가? 하고 말씀을 묵상했을 때 미련한 자는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언행을 일삼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런 언행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여쭈어본 뒤 결정을 하고 언행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 성을 공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여쭈어본 뒤 공격을 감행했다면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대승리 후는 방심하게 되어 너무나 위험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중하지 않게 된다. 또한 자신을 지키는 일을 망각하며 자기 자랑에 빠져 기도하는 일에 경홀히 여겨 유혹에 빠지기 쉽고 된 통 얻어터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챔피언을 따고 난 뒤 그 다음의 상대가 없어지게 되면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예를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 성을 공격하기 전 여리고 성 대함락으로 인해 자만에 빠져 있었는데 아주 작은 성을 공격하는 것을 너무나 우습게 여기며 달려들었던 것이 패배한 원인이다. 따라서 아간이란 존재가 나타나 작전을 망치게 됐다고 아간에게 돌멩이를 던질 이유가 전혀 없다.

 

   이렇게 아이 성을 공격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여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아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간이 아니라고 정직하며 하나님 앞에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다고 하는 자체가 바로 “너는 아간이라”고 제비에 뽑혀 저주를 받게 된다는 의미다. 내가 아간이 아니라고 발뺌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자가 토끼를 잡는데 전력을 다해 잡듯이 우리들도 아무리 작은 적이라고 할지라도, 작은 유혹이라고 할지라도,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것처럼 언제라도 변함없는 긴장과 최선을 다해 전쟁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상대방을 아주 쉽게 여기고 임하는 가운데 패배하는 것을 수없이 보면서도 잊어버린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전력을 다하여 전쟁에 임하게 되면 완벽한 승리는 항상 보장되어 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는 복병을 두어 승리하게 된 원동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영적 복병을 두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 하나님을 비롯하여 관련된 존재들은 모두 다 복병으로 여기고 적재적소에 이미 배치되어 있다.

 

   오히려 아이 성 사람들이 지난 번 이스라엘과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는 자만심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이 여호수아 8장에서 목격하게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아이 성 사람들은 방심하고 속임수에 빠져 성 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했으며(17) 나아가 싸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스스로 지키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패를 당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와 같이 방심하거나 자만하여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면 철저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 교회 건축이 완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에서 목회자가 쫓겨나거나 교회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종종 보는 것처럼 교회의 큰 일이 완성에서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하심에 따라 손에 있는 단창을 들어 아이 성읍을 가리키고 적을 멸하기까지는 그 손을 거두지 않았다.(8:18, 26) 이 장면은 출애굽기에 아말렉과 전쟁할 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것과 같다.(출 17:11~12) 우리들의 군대장관 되시는 주님의 기도가 그침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승리를 한 후 에발산에 제단을 쌓아 제물을 드리고 율법을 돌에 써서 옮겼다. 그리고 이를 백성 앞에서 읽은 것은(30, 31, 32, 35) 전승 후에 헌신을 새로이 하여 감사하고 말씀을 살피어 경계를 삼은 것으로 여리고 승리 후보다 나은 합당한 모습이라 본다. 어쩌면 여리고 함락이후 이러한 태도를 보였다면 아이 성의 함락도 순조로웠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적 전쟁에 있어 승리한 후 승리의 기쁨을 우리끼리 자축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 앞에 승리의 보고 겸 감사의 제단을 쌓아야 하며 찬양하며 승리의 축제를 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영적 전쟁을 임하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께 문의한 뒤 작전을 짜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오히려 나보다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되어 승리하는 것을 스포츠에서 종종 엿보게 된다. 그 반면 약체인 상대방을 만나면 혼쭐이 나는 것을 얼마든지 목격하게 된다. 이와 같이 아무리 작은 유혹에도, 작은 문제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큰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하여 반드시 승리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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