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멈추게 할 만큼 집중해라

2012. 2. 7. 14:06좋은 글, 이야기

태양을 멈추게 할 만큼 집중해라

 

 

 

 

   TV 드라마에서 좋은 배역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배역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신의 인상이나 모습에서 악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악역이 되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과연 그 배우가 악역을 할 수 있는 연기력이 없다면 악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TV 드라마처럼 악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해야 하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는 악한 부모의 역할을 해야 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이웃에 있는 왕들과 서로 동맹하여 쳐 올라왔다. 그만큼 이방인들 주변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아도니세덱을 중심으로 여러 인근 지역 왕들과 규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도모했다.

 

   여리고성을 함락하고 아이 성을 전멸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력을 만만하게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별 볼일 없을 정도로 허약한 군대로 여겼던 가나안 족속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불안감으로 동맹을 맺고 규합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하고자 모였다. 우리 주변에 기독교를 허물기 위해서 언제든지 규합하여 공격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신의가 두터운 사람으로 자기를 속인 기브온 사람들을 위해서도 구원의 외침을 듣는 순간, 외면하지 않고 지체하지 않으며 모든 군인과 모든 용사를 동원하여 출전 명령을 내렸다.(7) 하나님은 약자를 돕는 의협심을 돕는 사람들을 도우시며 약속을 지키는 신의의 사람을 격려하실 때가 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 의리가 없고 신의가 없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다. 세상 사람들은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으며 술 한 잔이며 화해될 수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서로 분쟁이 되어 세상 법정에까지 가서 판결을 내려고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고소고발이 법정에까지 가지 않았으면 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격려를 받고 힘을 얻어(8) 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승했다(11) 그런데 누구일지라도 하나님이신 여호수아(예수)와 화친하는 때에는 그 벗(친구)들로부터 노(怒)를 초래하게 된다. 기브온 사람들이 그랬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을 막아주고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 같이 예수님은 그를 평화의 주로서 앙망하는 자를 그 적에게서 구원해 내시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새로운 계시를 필요했다.(8) 그는 아마도 기브온 사람과 동맹을 맺음으로 인해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하여 실망하고 또 염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말씀은 26마일(약 40키로)를 하루 밤에 진격할 만큼 엄청난 원동력이 되었으며 승리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세상에서 졌다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씀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부터 혼자하지 마라. 나와 같이 하자”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씀을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살아계신 그 분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는 세미(정확)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전 장에서는 같은 길을 3일 동안이나 허비했던 장면과는 달리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라고 말씀하셨는데(8) 승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이 장에서는 여호와에 의해 싸우고 또 이전 일이 거듭거듭 기록되어 있다. (10, 11, 12, 14, 19, 25, 30, 32, 42)

 

   도륙에서 도륙으로 이어지고(10) 칼로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이방인들을 우박에 죽고(11)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적군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게 한 멋진 장면(12~14)은 지구의 회전의 중지나 아니면 신기루의 출현이냐? 라는 논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미 우주항공국(NASA)에서 일하는 해롤드 힐(Harold Hill)이란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게 된 배경에는 기가 막힌 스토리가 있다.

 

   우주 개발 관계 과학자들인 해롤드 힐(Harold Hill)의 연구팀은 인공위성의 궤도를 작성하기 위하여. 전자계산기로 지금부터 10만 년 전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사이의 태양과 달의 궤도 진행을 살피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궤도 진행상에 '꼭 하루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NASA의 슈퍼컴퓨터가 우주 천체의 시간으로 수백만 년의 지구 역사를 추적해 나가는데, 희한하게도 시간이 사라져 버린 적이 두 번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하루, 즉 24시간이 어디로 가버렸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한 번은 23시간 30분, 또 한 번은 40분 정도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자전을 감속했다는 얘기다. 도저히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미스터리로 남겨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해롤드 힐이 우연히 성경책을 읽다가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서 그만 온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바로 지구가 하루 가까이 자전을 멈춘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옛날 여호수아 때에 태양이 정지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패주하는 가나안 남부 연합군을 추격하는 여호수아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셔서, 태양을 하루 가까이 멈추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그는 곧바로 미친 듯이 여호수아의 남부 전쟁이 일어났던 연대를 찾아서 잃어버린 하루를 찾기 위해 슈퍼컴퓨터가 그 당시로 돌려 여호수아 시대의 궤도를 조사한 결과, 사라진 시간의 타이밍과 맞춰 보니 정확히 23시간 20분 동안 궤도가 정지했었던 사실이 기가 막힐 정도로 거의 일치했다. 전자계산기를 밝혀냈다.

 

  그러나 이는 없어진 하루와 완전히 일치하는 수치가 아니었다. 아직도 40분의 행방이 묘연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들은 곧 성경에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태양의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신 사실을 찾아냈다(왕하20:8-17). 그런데 놀랍게도 그 10도는 시간으로 계산할 때 정확히 40분에 해당된다. 이로써 그들은 여호수아 때의 23시간 20분과 합하여 정확히 궤도 진행상에 없어진 하루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무신론자였던 해롤드 힐은 바닥에 엎드러지면서 고백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정말 계셨군요!” 그때부터 그는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한다.

 

   여호수아 10장에는 한 사람도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19) 여호수아가 군장들에게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희가 더불어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는 말씀은 승리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성령 충만은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인해 강하게 역사하는 성령의 증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으로 인해 생긴 담대함은 순교를 위한 자세와 태도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성령 충만은 은사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순교를 위한 것인지 구분해 한다.

 

   그 승리야말로 온전한 승리로 적을 전멸하였으며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라는 말씀도 거듭 기록되어 있다. (28, 30, 32, 33, 35, 37, 39, 40) 이것은 사소한 죄라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주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내게 거리낌이 되는 것이 있다면 남기지 말이야 소통이 될 것이다.

 

  10장에서 5인의 왕의 목을 모두 밟아 죽였다.(24~36) 왜 목을 밟아 죽여야 했는가? 목을 밟는 것은 적을 발등상(의자에 앉아 있을 동안 발을 편하게 하는 도구)이 되게 하는 뜻으로 온전한 승리를 얻은 것을 표시하는 내용이다.(시 110:1) 적이 도망간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라. 도망가는 적을 좇아가 넘어뜨리고 목을 밟아 죽여야만 온전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를 취급하는 길은 다만 하나일 뿐, 즉 그 목을 믿음으로 얻어진 승리의 발로 밟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재발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귀신을 내좇았는데 또 다시 들어와 군림하게 되면 그 존재를 내좇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내가 죽든지 아니면 그 존재가 죽든지 해야 할 것이다.

 

   죄는 개량될 수 없는 것, 마치 다섯 왕도 개량할 수 없음과 같은 것, 사람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개량하려 하나 그 노력의 실패는 언제나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이다. 어리석지 않고 미련하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개량되어지는 존재를 의미한다.

 

   12절 하반과 13절 상반은 큰 기도와 놀라운 응답(14, 마 21:21 참조)을 기록한 이사야28:21 말씀의 인용으로 초자연적인 역사아래 이루어진 사건이다. 자연의 질서를 깨면서까지 전쟁의 승리를 안겨다 준 하나님의 역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온전한 승리의 경험을 누구나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여기며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하게 믿는 가운데 태양을 멈추게 할 만큼 집중하는 전쟁을 해야 한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이는 것처럼 나의 모든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 앞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소한 죄까지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승리를 얻을 수 없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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