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2. 11:03ㆍ좋은 글, 이야기
“네 팔 하나를 잘라야겠다!”
20대 후반의 어느 주일, 내가 다니던 교회에 경기도의 한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다. 설교를 듣는 내내 개척교회의 힘든 사정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였다. 농촌에 자리한 교회라서 목사님도 가끔은 성도들의 논밭에 나가 일을 같이 한다고 하셨다. 사례비는 생각도 못하고 10여 명의 교인들과 7명의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힘들게 목회하고 있었다.
예배가 끝난 뒤에 나는 강사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 드리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주일학교 교사는 있나요?”
“교인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교사를 할 사람은 없고요, 저와 제 아내가 주로 가르칩니다.”
“여름성경학교도 하나요?”
“가끔 서울의 큰 교회 청년들이 와서 하는데, 안 오면 그냥 우리가 대충 합니다.”
“제가 만화로 설교하고 아이들이랑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름성경학교를 인도해 보고 싶네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우리야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렇게 해서 나의 자비량 단기선교가 시작됐다. 빔 프로젝터는 물론 OHP(Overhead Projector)도 없는 농촌교회라 만화 설교를 하기 위해 전지와 매직과 크레파스와 종이를 고정시킬 수 있는 핀을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나눠 줄 ‘울퉁불퉁 삼총사’도 몇 권 샀다.
버스를 3번 타고 경기도에 자리한 교회를 찾았다. 목사님은 보이지 않고 무표정한 아이들 서너 명만 모여 있었다. 사모님이 성경학교를 할 장소라고 안내해 준 곳은 비닐하우스였다. 군데군데 다 뜯지 않은 상추들이 보이는 그곳에 장판을 깔아 예배 장소를 만들었다.
결혼 전부터 아이들에게 만화를 그리며 성경 동화를 들려준 경험 때문에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아이들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서울 아이들과 다른 그 무엇이 느껴졌다. 갈급하고 막연하고 궁금한 그들의 눈빛. 그럴수록 최선을 다해 설교했고, 배꼽이 빠지도록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또 오세요. 선생님.”
예배가 끝난 뒤 모든 어린이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줬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몇 명의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제야 성도의 논에 일하러 나간 목사님이 오고 있었다. 사모님이 멀리 논둑길을 걸어오는 네 명의 농부 중 한 명이 목사님이라고 안내해 주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삽을 어깨에 메거나 수건을 머리에 두른 모습 때문에 목회자와 성도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 중 한 사람, 유난히 미소가 밝았던 한 사람이 목사님이었다. 사모님이 직접 만든 매실차를 같이 마실 때 목사님이 조용히 말했다.
“여기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도가 안 됩니다.”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한바탕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마을에 와서 갈등도 많았죠. 우상 숭배가 심하고 대부분 친척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도하기가 어려워요. 교회에 와서 대하기 어려운 집안 친척이 있으면 다음 주부터 교회를 안 나오기도 하니까요. 몇 년 동안 부흥도 안 되고 너무 힘들어서 농촌 목회를 포기하려고 했죠. 아이고, 내 얘기만 했네. 이거 드세요.”
그분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힘든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것도. 그분은 잘 익은 수박 한쪽을 포크로 찍어 나에게 건네며 말을 이어 갔다.
“곧 중학교에 들어갈 아이들도 걱정되고 해서 이 마을을 포기하고 서울로 가려고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죠. 하나님이 내 팔을 잡고 그러시더군요. ‘네 팔 하나를 잘라야겠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왜 그러십니까?’ 하나님은 간단하게 말씀하셨죠. ‘네 팔이 필요해서.’”
목사님은 다시 수박 한쪽을 입에 물고 잠시 먼 산을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나는 안 된다고 소리쳤어요. 그럴 순 없다고 버텼죠.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하는데 하나님이 그러시더군요. ‘너는 팔 하나 잘라지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는데 나는 내 아들 예수를 아낌없이 너에게 주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너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거냐?”
그분의 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수박을 든 손도. 아마도 그때 받은 강력한 메시지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분이 생각하는 목회의 길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분의 사명감이 얼마만큼 깊은지도 짐작됐다. 결과를 평가하기 전에 그분의 사역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목사님은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줬다.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꼬깃꼬깃 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네?”
“사례비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교통비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세차게 봉투를 밀며 거절했다.
“아닙니다. 저는 정말 기쁘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저보다 더 귀한 사역을 하시는데, 사례비 걱정은 마시고 다음에 또 필요하면 불러 주세요.”
“그래도 이렇게 가시면 미안해서 어쩌죠?”
나는 급히 인사하고 버스를 탔다. 주름진 얼굴과 주름진 옷차림의 시골교회 목사님이 창 밖에서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목회하고 싶었을까? 도시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농어촌 산골교회로 가기를 누가 원했을까?
그곳은 소명으로 이뤄진 기적의 동산이었다. 한 알의 밀알로 살아가는 사명자의 깃발이었다. 소명은 하늘에서 온다. 비전은 하나님이 이뤄 주신다. 우리는 크고 작은 도구일 뿐이다. 비교가 불가능한, 모두 소중한 그릇들이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하루는 하나님의 날이 된다.
멀어지는 초로의 목사님을 바라보며 나의 자비량 단기선교 사역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시간이 많지 않더라도, 물질이 많지 않더라도 자비량 단기선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고, 믿음의 문제다.
-조대현 목사/ 조인교회 담임, 만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전 국민일보 화백, ‘개척교회는 재미있다’(두란노)에서
출처 : 사랑의교회 www.sar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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