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2013. 4. 2. 19:44좋은 글, 이야기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2013년 2월 18일(월) 저녁부터 21일(목) 저녁까지 〇〇시찰 연합제직회가 주관하여 열두 교회 연합부흥회를 했다. 부흥회를 며칠 앞두고 플래카드를 거는데 플래카드에 주제를 반드시 명시하라는 강한 요청이 있어 유난하게도 왜 그럴까 했더니 강사목사님이 매 시간마다 주제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강사목사님은 몸 관리를 잘한 듯 보였다. 요즘 한국의 대부분의 중년들이 몸 관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목욕탕에 가보면 중년들의 몸매가 여자나 남자나 할 것 없이 배 안 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들 한다. 어쩌다 한 사람 배 안 나온 사람을 보게 되면 모두 관심을 갖고 그 비결을 물어보곤 한다. 그 대답은 엄청 신경을 써서 먹는 것 조절하고 운동 꾸준히 하여 단 한시도 마음 줄을 늦추지 않고 몸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부흥회 둘째 날, 집에 와서 내가 남편에게 그의 몸 관리에 감탄을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다른 목사님들이 물었다고 한다. 그의 대답인즉슨, 몇 년 전에 건강검진을 하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고지혈증이 있어 위험하니 속히 살을 빼야 한다고 조언을 했더란다. 목사님이 “어떻게 살을 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의사의 말이 “먹고 운동을 하든지, 먹는 것을 조절하든지 하십시오” 했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목사라서 꾸준히 운동할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듯싶어서 먹는 것을 조절해왔다고 했다. 아침은 빵 한 조각과 과일 주스 한 잔, 점심은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고, 저녁은 가볍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부흥회 기간에는 강사목사님의 식사 대접이 간단해서 좋았다. 아침 식사는 신경을 안 써도 되었고, 점심식사만 우리 고장의 특별 메뉴로 세 번 대접했으며, 저녁은 근처의 식당에서 백반으로 먹었으니 그만큼 시간이 절약되었다. 어떤 강사님은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반복되지 않는 메뉴로 대접해야 할 경우도 있어 부흥회를 주관하는 임원들이 엄청 신경을 쓰는 일이 간혹 있었다.

이번 부흥회 주제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하여”였다. 온전한 신앙생활, 즉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 아래에서 민수기 10장에서 25장까지의 사건을 살피면서 말씀을 전개해 나갔다.

 

   먼저 강사님은 말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비만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옛날에 못 먹고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엄청 먹어대어 주위 사람들을 보면 비만 아닌 사람이 드문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살을 빼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도시에서는 운동프로그램이 유행을 하고 있으며 살 빼는 약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육체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우리 몸속에 독이 되는 것들, 즉 지방, 당, 넘치는 단백질, 유해 독소 등을 빼내고 우리 몸에 좋은 것들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에 있어서도 영혼을 죽이는 요소, 즉 독이 되는 것들은 빼내고 이로운 것들을 집어넣어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〇〇시찰 성도들에게 빼내야 할 것 일곱 가지와 집어넣어야 할 것 일곱 가지를 가르쳐줄테니 잘 들으시고 실천하여 이제부터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7회에 걸쳐 한 가지씩 쉽게 성경을 풀어 말씀하시니 농촌교회 성도들은 말씀이 쉽고도 재미있다고 좋아들 하셨다.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시찰연합으로 부흥회를 하는데 소수만 참석을 하여 주관하는 목사님들을 힘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성도들이 부흥회뿐만 아니라 예배에도 참석률이 저조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현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열정이 식어졌음은 사실이다.

 

   이번에도 초기에는 참석률이 저조하여 자리가 넉넉했다. 당연히 헌금도 저조하여 그 헌금을 가지고 시찰의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지장이 올 것을 염려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러나 빼내야 할 것 일곱 가지와 집어넣어야 할 것 일곱 가지를 매 시간마다 쉽고도 차분하게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해주니 소문이 퍼졌는지 갈수록 참석자수가 늘어났다. 수요일밤과 목요일밤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꽉 끼여 앉아 말씀을 듣느라고 많은 사람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실제로 연세가 많은 성도들과 몸이 연약한 성도들이 부흥회를 마치고 몸살이나 감기에 걸려서 주일날 아픈 교우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몸은 아파서 괴로워도 영혼은 그동안 들은 말씀으로 은혜가 충만해서 기쁜 표정들이었다.

 

   전반기에 헌금의 액수가 적어 걱정하던 회계 장로님이 부흥회가 끝나고 회장인 남편에게 다음날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넘쳤다. 웬일인가 했더니 마지막 날 성도들이 헌금을 많이 해서 작년보다도 더 많은 헌금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 장로님이 말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더군요. 나는 초반에 노심초사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한방에 모자란 것을 채워 주시더라니까요. 이번에 저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험했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한 지침들을 여기에 소개하겠다. 이 글을 읽는 성도들도 민수기 10장부터 25장까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으면서 함께 은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출발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있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민수기의 내용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기보다는 얼마나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였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민수기 초반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를 조사한다. 그 계수에 든 자가 약 60만 명이다. 그런데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에 입성하기 직전에 다시 계수를 하는 민수기 후반에 보면 초반에 계수한 자들 60만 명 가운데 두 사람, 즉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고 새로운 세대를 계수하니 역시 약 60만 명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출애굽한 60만 명 가운데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자는 60만 명 중 2명이라는 말이다. 몇 퍼센트인가? 참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들만 그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도 그들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는 배은망덕한 모습이 아니던가. 우리는 민수기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축복의 비결, 혹은 온전한 신앙생활의 비결을 깨닫고 실천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는 빼내야 할 것 일곱 가지와 집어넣어야 할 것 일곱 가지를 대략적으로 기술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가지씩 자세하게 글을 쓰고자 한다.

 

   첫째, 민수기 10장 33절~11장 3절에서는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원망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환경과 형편이 어떻든지 원망하지 말고 감사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서 원망을 빼내고 감사로 가득 채워야 하겠다.

 

  둘째, 민수기 11장 4~9절, 31~35절에는 탐욕을 품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탐욕이란 자기가 받은 것 이상을 요구하는 마음을 말한다. 사람마다 각기 제 몫이 있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에서도 달란트 비유가 있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두 달란트 받은 자,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그 사람에 맞게 주실까?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과 자기의 것을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이든지 재물이든지 자녀든지 외모든지 건강이든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판단에 가장 적절한 분배임이 틀림없다.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교하게 되고 불만을 느끼고 자기에게 허락하신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탐욕으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된다. 탐욕으로 얻은 것은 절대로 내 것이 못된다. 탐욕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행위이고 심지 않고 거두려는 악한 마음이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탐욕을 빼내고 우리 영혼을 자족으로 채워야 하겠다.

 

  셋째, 민수기 12장 1~16절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는 사건이 나온다. 비방이란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비방하거나 판단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리석어서 입만 열면 남을 비방하기를 즐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하나님은 결코 이를 간과하지 않으신다. 비방의 원인은 대부분 시기심과 질투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넓혀야 한다. 성도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하라고 맺어주신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신에게서 비방을 빼내고 사랑을 집어넣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협력해야 하겠다.

 

  넷째, 민수기 13장 25절 ~ 14장 12절에는 가나안을 정탐하고 온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열 명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의심하여 가나안을 악평하고 백성들을 선동한 사건이 나온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은혜를 누렸으나 다른 열 명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신뢰하여 부화뇌동한 자들 역시 광야에서 다 죽고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했다. 우리 모두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집시다.

 

   다섯째, 민수기 16장 1~14절에는 고라와 그 일당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사건이 나온다. 대적이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인 목사를 대적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물론, 목사도 사람이니 실수도 있고, 약점도 있고, 연약하기도 하다. 어느 누가 완전한 자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말씀을 대언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양들을 돌보라고 자기의 종을 교회에 세워 주셨다.

 

  성도들은 목사를 판단하고 비방하고 대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가 물었다.

“그러면 목사가 잘못 하고 있을 때 그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의 견해는 이렇다.

 “그럴지라도 대적은 하지 말고 그 일을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해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의 종에게 대적하지 말고 복종해야 한다.

 

   여섯째, 민수기 20장 1~13절에는 슬프게도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나온다. 그토록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종, 인간의 역사 가운데 단 한 사람인 모세조차도 한순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을 범했다. 하나님은 물이 없어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에 신물이 나서 자제력을 잃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모세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성도들이여, 명심합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말고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땅에 이르는 자들이 됩시다.

 

   일곱째, 민수기 25장 1~9절에는 이스라엘 두령들이 모압 여자들의 초청으로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드릴 때 참석하여 함께 우상에게 절하고 모압 여자들과 성관계를 가져 하나님을 모독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 목메어 달려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이래로 지금까지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시킨 일이 얼마나 많던가?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리 속에 얼마나 많은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우상은 아마 ‘돈’과 ‘자녀’일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우리 속에 있는 온갖 우상을 버리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삽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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