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3. 4. 2. 19:47좋은 글, 이야기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배경은 1980년도 5월에 일어났던 전남 광주 민주화 운동입니다.「화려한 휴가」는 시민군을 진압하는 특전사의 작전명입니다.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격동의 상황에서 겪게 되는 아픔을 그렸습니다.

택시 기사로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한 청년이 영문도 모른 채 우연히 진압군에게 끌려가게 되고, 그 계기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동생은 친구가 진압군에 맞아 죽게 되자 데모 대열에 끼어듭니다.

청년은 사랑하는 간호사의 아버지이자 특전사 출신 예비역 장교인 시민군 대장과 함께 시청을 사수하다가 죽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남녀, 형제, 부녀, 모자, 사제 간의 사랑이 잘 나타납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사건과 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힘든 상황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조차 살아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감사할 만한 조건이 있을 때뿐 아니라 감사할 조건이 없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일이 잘될 때만이 아니라 일이 안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형편이 잘 풀릴 때만이 아니라 안 풀릴 때에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기독교인들은 감사의 사람들입니다. 누구 탓하기 전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합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습니다. 집에 돌아가던 중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소경이 된 후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였습니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숲 속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몇 십 마일을 간 다음에 드디어 부자는 반갑게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부둥켜안고 기뻐했습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참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요." 이 말에 아버지는 궁금해서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뿌리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참 감사할 일이구나. 그런데 나도 하나 감사하자구나.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참 우리 하나님 감사하구나." 우리는 이 부자의 대화를 통해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한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시대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부터 회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 꺼리만 생기고 불평만을 일삼는 투덜이에게는 불평거리만 생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괴테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감사하는 마음은 곧 시들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수시로 변하며,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에야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환경과 조건에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감사할 이유를 갖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과 악조건 아래서도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한 감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단의 상황이 닥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인생의 한 단락을 아름답게 매듭지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독일의 한 중년 기독교인이 대학병원의 수술실에서 혀(舌)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는 언어는 이것이 최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간호원, 조수, 견습의사들을 비롯하여 둘러 선 모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습니다.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마다 만일 내가 이 환자라면, 만일 나에게 한 마디 언어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누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두 줄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환자의 입이 움직였습니다. 그는 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함으로써 최후의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섭리하고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고 감사합시다. 인생살이는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겪으며 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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