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3. 21:44ㆍ좋은 글, 이야기
현재 WCC유치 반대 운동, 서울 모 교회 목회자가 논문 표절로 인해 윤리도덕문제, 감리교단 안에 세습으로 인해 아직도 내홍을 겪고 있으며 한기총과 한교연의 갈등, 교단 안에 일어난 소용돌이와 교회 안에서 분쟁이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을 누구에게 탓할 수 있으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교회 안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나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사도 바울시대에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교회 안에 일어난 부정부패, 간음, 부조리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바울을 비롯해 예수의 제자들이 목격했다.
성경을 마지막으로 집필한 사도 요한은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쓴 것이 바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이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는 분도 있지만 모르고 있는 분들은 읽고 찾아내야 한다. 미리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읽는 독자들이 발견하도록 숙제를 내주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 안에 신학교마다 갈등구조를 갖고 있다.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으며 내부적인 교육과정이나 신학적인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신학”이란 단어가 헬라철학에서 비롯된 단어로 헬라적인 구조를 가진 학문을 바탕을 두고 신학이란 잣대를 만들어버려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원래 기록된 말씀의 원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원형이 되는 원본이 없다는 것이다. 원본을 베낀 사본만 남아 있는 상태라. 많은 분들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짜놓으신 계획이라면 그 계획아래 발견해야 할 것이다.
사본이든지 번역이든지 오역 투성이든지 그 사이에서 올바른 잣대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잣대를 삼지 않고 세상 잣대에서 놀아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보고 있는지 세상을 너무나 의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가 세상을 의식하고 타협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세습을 하는 교회를 겨냥해서 지탄의 대상이 되게 하고 표절한 논문으로 인해 비난의 화살을 수없이 날리고 있는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횡령, 간음, 분쟁으로 인해 윤리도덕의 비리에서 세상의 잣대에서도 벗어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잣대에서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거 서울 모 교회 목사님이 다른 분의 설교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전해 언론에 공개되고 주목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완벽한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표절하지 않고 설교할 수 있는가? 인용하는 성경구절과 다른 분들의 글들을 인용하는 차원에서 볼 때는 인용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연히 따지고 보면 표절이다. 수많은 논문 속에 인용과 표절의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가요의 노랫말이나 가락, 드라마나 연극, 영화 등 표절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지적되고 있는 상태로 볼 때 기독교의 표절은 수없이 행해지고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창세기 9장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보고 형들에게 알린 것뿐인데 술에서 깨어난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는 장면이다. 함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전혀 없는데 왜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 노아가 마신 포도주를 무엇을 의미하는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상태가 무엇인지?
함이 밖에 있는 형에게 알렸을 뿐인데 저주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알려지면 상당한 후유증이 일어날 것이다. 단순히 문자적인 내용에 충실히 한다면 함이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그대로 표절하여 형들에게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노아의 하체를 덮어주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들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자는 뜻이 아니다. 드러난 부정부패는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왜곡과 위선은 얼마든지 숨길 수 있으며 안 그런 척 하며 언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셈과 야벳이 함의 말만 듣고 행한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문자적으로 볼 때는 간파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상태를 알고 싶을 것이다. 깊은 묵상 속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함의 형들에게 가서 발설한 것이 무슨 의미며 개념인지도 파악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의 사건은 단순히 술을 먹은 노아의 추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경에 나온 인물대로 살아가겠다고 닮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좋은 점도 닮아야 하겠지만 그들의 저질은 잘못도 내게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닮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신앙과 삶을 표절하지 않고 닮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장점만 홀라당 닮아가고 표절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아내를 팔아먹고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가로채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아내를 얻고자 외삼촌도 속이고, 다윗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간음과 살인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그 외에 신앙의 위인들의 잘못된 관행들이 우리의 삶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더 완악하고 패역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삶과 신앙을 표절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처럼 닮기 원한다고 위대한 고백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예수를 표절하고 있는가? 이런 표절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되어 지지 않는다고 항변할 것이다. 나와 예수 분리의 상태에서는 절대로 닮지 못한다.
아니 닮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분과 연합되지 않고서는 닮아내는 표절의 삶을 추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분과 한 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서 장사지내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여진 상태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표절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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