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읽어야 하는 성경

2013. 7. 24. 11:25좋은 글, 이야기

 해산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읽어야 하는 성경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을 정확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읽고 이해되어지지를 원한다. 그러나 이미 번역된 성경들이 정확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번역되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많은 목회자들마저도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고자 기도하며 서적을 뒤적이면서 몸부림치며 도달하려고 한다.

 

   성경은 육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도록 닫힌 말씀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성경을 몇 번 읽었다고 자랑을 하고 있다. 죄송하지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를 읽었다고 자랑하지 마라. 원본에 가까운 원어성경을 읽어도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까지는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만일에 성경이 육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열려진 말씀이었다면 마귀의 세력들이 성경을 수억만 번을 변개시켰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사본들이 발견되면서 많은 분들이 원본에 가까운 성경이라고 고수하며 전통을 지켜오려고 했지만 원래의 뜻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원본에 가까운 사본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었다.

 

   심지어 원본을 베낀 맛소라 사본마저도 자음 100만개와 모음 300만개가 위조되어 있다면 어떻게 하시려는지....... 이것을 발견한 인천에 목사님이 계신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다. 하지만 이것을 소중하게 그리고 원래대로 보관해야 하며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전달해 와야 하는데 맡은 이들이 조작해버렸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간수해 오던 인간들이 변개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방치시키시는 어리석은 분이신가? 아무리 사람들이 조작하고 위조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사악한 지식과 문화와 습관에 의해 사라질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 오랜 세월 속에도 하나님의 진리가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발견하는 이들마다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탄이 변개작업을 하거나 성경의 비밀을 전달하지 못하도록 가진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에는 발견하여 오묘한 진리의 말씀이 전달되고 있음을 사탄도 기가 막힐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의뢰해 오기를“어떤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아니면“어느 번역 성경이 정확합니까?”질문이 있다. 어느 성경이 정확하다고 선정할 수 없지만 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며 말씀 속에 의미와 개념을 찾아야만 아버지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 언급한 바가 있는 영화“일라이”에서 악한 지배자가 귀중한 성경을 자기 수중에 확보했지만 그 성경은 보통 사람이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인 전용 성경책이었다. 이 성경은 시각장애인만이 볼 수 있다면 보통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읽을 수 있는 자만이 읽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닫혀진 비밀의 말씀이다. 그래서 비밀의 말씀이 열려져야 하는 것이다. 열린 말씀이 되어야 풀어지게 된다. 성경은 아무나 읽는 것이 아니다. 눈이 열려져 있다고 해서 읽혀지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있다고 해서 읽혀지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그 분과 함께 읽어야 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의 눈이 나의 눈과 하나가 되어서 읽혀져야 하며 그 분의 생각과 나의 사고가 하나가 되어져야 만이 귀중한 뜻을 깨달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에바다의 역사이고 예배의 본질이며, 거듭남의 사건이고 부활의 은총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서 성경을 주신 계획은 인간의 마음 땅에 본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육의 속성인 무지를 깨뜨려 불태워 버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머리로 바꿔지게 하심에 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머리 모양이 바꿔졌다거나 목이 잘리는 사건이 바로 이와 같은 현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수차례 거듭해서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원본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만약에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로 인해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을 것이며 그것을 차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런 성경은 읽혀지지 않고 이상한 종교로 형성케 하는 우상숭배의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과거에 성경책이 귀할 때는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지금은 가정이나 개인적으로 흔하게 여러 권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손쉽게 인터넷에서 손 안에 있는 스마트 폰까지 성경책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편리하지만 그러나 비밀을 캐내기는 쉽지 않다. 누구든지 읽혀진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읽혀지는 책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가기를 원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알아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숫자 개념이 아니다. 이것을 인간의 숫자로 이해하고 풀어버리니까 괴상한 해석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한 때, 두 때, 반 때를 일 년, 이년, 반년씩으로 풀어서 이상한 종말시기를 만들어버렸다. 원문에는 정해진 한 때, 정해진 두 때, 정해진 반 때로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 마저도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해석해버리니까 666만 나와도 적그리스도로 치부해버린다. 심지어 서울에 운행하는 666번 버스를 타지 않는 사례가 있었다. 죄송하지만 잘못 이해시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를 세상의 숫자로 오해하지 마라. 하늘의 숫자로 풀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으로 모든 사물과 사회에다 잣대를 들이다 대면서 옳으냐? 옳지 않느냐? 판단해 버리고 있다. 이단으로 규정하는 문제도 자기하고 맞지 않으면 이단이 되어버리며 한번 이단으로 정죄되면 영원한 이단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단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시는데 한국교회에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불교에서 돌아서거나 이방종교에서 돌아서면 받아주는 한편 이단에서 돌아서게 되면 받아주지 않는 현실기독교를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독교인지, 뿐만 아니라 위임목사예식을 거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임목사가 잘못하면 위임예식을 한 교단에서 가차 없이 위임목사 무효라고 해버린다.

 

   교단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것인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목사위임을 했는데 무효라고 한다면 과연 그 하나님 앞에서 선포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 마음대로 유권 해석을 해버리는 가운데 악행을 자행하고 있다면 한국기독교가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를 남발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성경의 잣대는 인간이 결정내리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지만 과연 내 안에 존재하는 그 분과 한 몸이 된 상태에서 성경의 잣대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함부로 이단이라고 했다가 하나님 앞에 가서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하는지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는데 누구를 나무라고 있는지

 

    이단이라고 정죄한 이가 더 큰 이단의 굴레 속에 있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과연 이단보다 더 정결한 상태인지 자문해 보라. 이와 같이 성경에 벗어나 독특한 내용을 알고 선포하게 된다면 이를 트집 잡아 이단, 삼단으로 만들어버린다. 태권도 심사보다 더 빠르고 급속하게 정죄해 버린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만이 아니다. 사물도 사물 그대로만 인식하게 되면 사물로 국한된 해석으로 오해하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런데 요한일서 5장 17절에 가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형제를 구하라고 되어 있다. 즉 천국 가는 죄라고 할 수 있는 이 죄에 대한 원형과 본질을 알아야만 되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죄 짓지 말라고 하면 되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진정한 의미와 개념이 무엇인가? 알아야 된다.

 

   야곱이 꿈꾸었던 사닥다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닥다리와 전혀 다른 사물이다. 바벨탑처럼 나선형으로 된 계단형식의 사닥다리인데도 불구하고 사다리로 알고 있다. 또한 오르락 내리락이 맞는지 내리락 오르락이 맞는지도 모르고 읽어버린다. 올라간 시점으로부터 한다면 더 이상 내려올 수 없는데 오르락부터 먼저 해석해버린 것이다. 내리락 오르락으로 해야만 올바르게 구문이 형성된다.

 

   이런 것을 지적하면 그냥 읽고 은혜만 받으면 되지 하는 식으로 은근 슬쩍 넘어가버리려고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읽고, (정확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듣고, (정확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요한계시록은 언급하고 있다.(1:3) ()부분이 없는 단어이지만 그 뜻을 함축하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숨겨진 단어와 문장, 그리고 구문들을 표현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사야 1장에“나를 보내소서”라고 되어 있는 문장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분들이 그 앞에“말씀을 지키고 있는”나를 보내소서. 라고 반드시 붙여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명의식이 분명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부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만 가지고도 글을 쓴다고 하면 아마 어마어마한 양의 원고가 나올 것이다. 속독으로 성경을 읽었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항의가 빗발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말씀을 씹고 되새김질하여 씹으면서 음미해야 한다. 오묘한 비밀을 알려줄 때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시려고 하는 의미와 개념이 발견될 때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성경의 오묘한 진리를 알고자 신앙서적을 그리고 목사님과 목회자로부터 배워보지만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유명한 성경 공부하는 곳에 그리고 이와 관련된 곳에 가서 배우려고 한다. 심지어 신학교에까지 가서 배워보지만 심오한 내용을 전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 박사 코스에 가서도 그런 내용을 배워보지 못할 것이다.

 

   골리앗이 다윗의 물맷돌에 맞듯이 말씀의 돌에 맞아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는 영적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가 있다. 말씀으로 인해 영적충격을 받아야만 되고 내 안에 영적 지진, 해진, 공진이 일어나야 된다. 말씀의 돌이 내 안에 던져져 짐승의 속성들이 가루가 되도록 박살이 나야 한다. 이로 인해 아픔이 있다면 더 아프게 해달라고 고통이 엄습하고 있다면 더욱 강하게 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읽어야 한다.

 

   해산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읽어야 하는 성경은 책이 아니라 내 입과 마음에 존재하고 있는 말씀이다. 신명기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이것이 성경의 원본이라 할 수 있겠다. 성경 속에 있는 글자들이 존재로 튀어 올라올 때까지 쓰라린 고통으로 읽어야 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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