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ont color="#0000ff">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b></font>

2005. 5. 10. 19:41신앙간증

유진숙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던 지난날

모태신앙인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가르쳐 준 찬송가를 부르며 기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고, 학업을 마친 뒤에는 잠시 교사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였다. 시댁은 재벌이라 할 정도로 잘 사는 집안이었으나 믿지 않는 불신 가정이라 그런지 형제들 사이에 재산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와서 집안에 분란이 일어난다고 하며 나를 핍박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시아버지는 서울에 집을 새로 사서 우리를 분가시켜 주었다. 서울에 와서도 나는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여 스물다섯 살에 집사가 되어 여전도회 일을 열심히 도왔고,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집달리가 찾아와 집이 잡혔으니 우리더러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남편이 나도 모르게 집을 저당 잡히고 굉장히 비싼 골동품을 샀던 모양이었다. 그때 남편은 일본 어딘가에 있었고,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나는 하루아침에 집을 넘겨주고는 아이 셋을 데리고 순천에 있는 친정으로 갔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교회에 발길을 끊고 말았다.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내 속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이 끓어올랐고, 나의 불행에 조금도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던 교회 사람들에게도 반발심이 치밀어 올랐다. 교회를 안 나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 속으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멸시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영적으로 예민하여 뭔가 믿지 않으면 못 견디는 체질인지라 불교 쪽으로 마음을 돌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유명한 절이라는 절은 모두 찾아다녔다. 교회처럼 죄인이니 축복이니 하는 거부감이 드는 소리를 안 들어서 좋았고 그렇게 8년 동안이나 절을 좇아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중학생인 둘째 아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점차 식물인간처럼 변해 갔는데, 병원에서는 자폐증이라 했다. 병원과 요양원을 찾아다니며 낫기를 기대했으나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방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을 시키게 되었는데, 그 뒤로 아들은 행방불명이 되었고, 남편마저 집을 나가 이리저리 방황하더니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그 후 나는 한 3년 동안 남묘호랑개교에 빠져 들기도 했으나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믿던 종교를 다 버리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 마음이 몹시 허전해서 세상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세상 유혹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점쟁이 친구들을 사귀어 한 2년 동안 휩쓸려 다녔다.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그러다가 방배동에 사는 동생의 권유로 방배동에 지하방 한 칸을 얻어 아이 둘을 데리고 살게 되었는데, 여전히 살길은 막막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고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럴 즈음에 내가 하나님을 잘 믿다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다는 것을 동생한테 들은 어떤 권사님이 찾아와 “이제는 그만 방황하고 제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곡히 권유를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그런 소리 하려면 오시지 말라고 하면서 그 분을 떠밀어내었다. 그래도 그 분은 매번 찹쌀이나 무우 등 먹을거리를 들고서 이틀에 한번씩 찾아오시기를 1년 동안이나 하셨다.

권사님이 우리 집을 내왕하신 지 1년도 훨씬 넘은 92년 9월 첫째 주일날, 마침내 나는 그 분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하여 교회에 따라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다닌 지 한 달쯤 지났을 어느 주일날, 한 청년이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라며 찬양하는 것을 들었는데,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인생 그대로를 노래하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정말 헛살았나? 오늘 당장 내가 죽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이제 내 나이 마흔 넷이나 되었는데, 내 인생이 너무나 허망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주 금요일 날에 또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하여 금요철야예배에 갔다 왔는데, 바로 그날 새벽에 자려고 누웠을 때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누군가 나에게 나무젓가락을 하나 내밀어 주었는데, 그 나무젓가락에는 긴 실과 짧은 실이 하나씩 매여 있었다. 그걸 돌려보라고 해서 뱅뱅 돌렸더니 느닷없이 그 실이 엄청나게 큰 구렁이로 변해 내 발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칭칭 감아 올라왔다. 마침내 그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내 얼굴을 덮쳐오려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혀도 몸도 어깨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은 굳어 있었고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악몽을 꾸었던 바로 그날 가슴에 통증이 생겼는데, 그 통증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몸이 아픈 나는 구역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날이 갈수록 마음이 열려졌고, 영적으로는 은혜를 받으며 살아났는데, 가슴의 통증은 몹시 심해졌다. 그래서 대학 병원을 찾아가 보았더니 암이라고 하며 3개월밖에 못 사니 수술을 받을 필요도 없이 생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우리 형제들과 교회 식구들이 병원을 찾아가 죽어도 좋으니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진정서를 내고 항의를 하여 겨우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수술을 받고 나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너무나 통증이 심했다. 수술을 주관했던 선생님도 완전히 포기하고는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으니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분께 빌어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나를 치유하신 은혜의 하나님

그렇게 두 달 만에 퇴원을 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결단을 하고는 20일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내 집은 지하방이라 낮에도 칠흑같이 컴컴했기 때문에 기도하기는 좋았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기도를 하려고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갑자기 방이 환히 밝아왔다. 누군가 들어온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방은 그대로 캄캄했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가 방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고, 나는 다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가 참 간사합니다. 제 생명을 다시 한 번 살려주시면 주님을 위해 살리라 마음먹었지만 제 육신이 너무나 고통스럽군요. 차라리 빨리 데려가 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으니 주님께서 행하소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내 앞에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예수님이 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나는 ‘혈루증 앓던 여인은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는데 나도 주님을 놓지 않으리라’ 하고 결심하여 있는 힘을 다해 그 분을 꽉 붙들어 안고는 하염없이 몸부림을 쳤다.
“딸아, 울지 마라. 내가 네 눈물을 보았고 네 기도를 들었다.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호하리라.”

마치 울리는 바람소리 같은 그 음성이 내 육신의 귀에 분명히 들려왔다. 그 음성을 들은 나는 땅바닥에 엎어졌는데, 갑자기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지고 경련이 일어났다. 나는 한참 동안 방바닥 위를 미친 듯이 나뒹굴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두 시간 동안이나 풀쩍풀쩍 뛰었다.
그날 이후 나는 육신의 고통과 암의 후유증을 깨끗이 고침 받았다.? 수술을 해도 석 달을 못 넘긴다고 하였으나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의 통증도, 후유증도 없었다.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그 이후로, 나는 교회에서 ‘전도왕’이 될 정도로 전도를 열심히 했고, 지금은 하나님이 채워주신 물질로 집도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그리고 1년 전부터 위 통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번에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서 10일 금식기도를 하며 치료를 받았다.
주님을 저버렸던 죄인이었지만 그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나의 영육간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종으로 불러주신 은혜의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