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ont color="#0000ff">전도왕 12명의 전도자 전도경험 간증</b></font>

2005. 5. 12. 13:27신앙간증


1.“가까운 곳부터 시작”작전 성공/한상용(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제자 입시고민 등 상담 신앙심 일깨워/4년간 한교회에 3백여명 결신성과

전도는 특별한 은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였다.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두려움과 실패했을 때 인간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앙연조는 오래됐지만 전도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90년,어느날이었다.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앞두고 전도팀을 구성해 노방전도를 나가기로 했다.

어깨띠를 두르고 교회문을 나섰으나 무척 쑥스러웠다.누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나는 교회로 다시 들어왔다.기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담대함과 용기를 주시옵소서.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성령충만함을 통해 자신있는 메시지를 전하게 하옵소서』

한참을 기도한 후 교회문을 나서는 내게 복음증거에 대한 자신감이 강물처럼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분명 성령의 도우심이었다.

기도를 통해 노방전도의 두려움을 벗은 나는 전도하는 신앙인이 될 것을 서원하며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했다.이때 학생전도에 대한 분명한 사명을 갖게 되었다.멀리서 전도대상자를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몸담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전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전도에 앞서 철저한 준비기도를 한후 전략을 짰다.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준비기간으로 삼아 얼굴을 익힌 후 4월부터 서서히 전도의 손길을 펼치기 시작했다.학생들이 무리를 느끼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하는 방법은 첫째 나 자신이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고 즐겁고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저 선생님이 저토록 의욕적이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소개할 때 우회적인 방법보다도 결론부터 내리고 그것을 설명해가는 형태로 진행했다.

『여러분,기독교 신앙을 소유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와는 엄청난 차이를 갖습니다.이 종교는 우리의 삶에 기쁨과 평안을 갖다줄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자체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신앙에 대한 소개를 한후 맨투맨작전을 시도했다.학생들이 학교생활과 가정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과 입시 압박감들을 상담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위해 신앙의 필요성을 설명했다.학생들의 심성은 순수해서 진지한 자세로 전도했을 때 전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내가 출석하는 은평교회로 초청하거나 집과 가까운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했는데 4년간 학생 3백26명이 은평교회에 등록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만나는 동료교사와 이웃주민들에게도 자신있게 복음을 증거했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전도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했을 때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얻은 전도에 대한 결론은 모두 세가지다.첫째,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전도이므로 늘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둘째,상대방이 내게서 크리스천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 나와야 한다.셋째,교회에 나오는 것보다도 양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거듭남의 확신이 보일 때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장로·명지고교사>
-----------------------------------------------------------------------------------------

2.“중보기도·끈질긴 설득 주효”/김완섭(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병원환자 찾아가 쾌유기도 말씀전해/전도지·신앙서적 우송… 믿음열매 맺기도

L씨와 나는 퇴근길이 같은 방향이었다.L씨는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출판사 건물 밑에서 자동차 경정비소를 경영하는 분이었다.그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출·퇴근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교회 안 나가세요?』라는 질문으로 전도를 시작했다.그리고 출·퇴근하는 차량안에서 기회를 보아 기독교복음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좁고 폐쇄된 차량 안에서 그는 꼼짝없이 듣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가 듣든지 안듣든지 예수님에 관해서,속죄에 대해서,거듭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곤 했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전하다가 그 횟수가 줄어든지 한 달여를 지난 어느 주일,나는 성가대석에 앉아서 무심코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L씨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에 역사하셨군요』

그후 그는 열심히 교회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시면 결코 열매가 맺힐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개인적인 열심이나 뜨거움만 가지고는 큰 열매를 맺을 수 없을 뿐더러 오래 가지도 못한다.또한 한 영혼을 위하여 뜨거운 중보기도가 있을 때에는 확실히 열매가 생기는 경험을 자주 겪었다.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처음 교회에 나가는 날부터 병원 전도를 따라 다녔다.전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구원이 무엇을 뜻하는지,중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를 때였는데도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전도다닐 수 있었던 것이었다.그때는 내가 전도한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동료들에게서 전도를 받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중단할 때도 자주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도하는 생활을 해 왔다.병원 전도,축호 전도등 직접 전도하기도 했지만 전도지나 신앙서적을 보내기도 했고 스스로 전도지와 전도 소책자를 만들어서 무료 보급하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말세에 대해 알기 쉽게 쓰여진 책을 몇십 부 사다가 성도들과 친구들,친척들에게 보낸 일이 있었다.얼마 후에 소식을 들으니 어떤 이는 그 책으로 인하여 신앙을 가지게 되어 뜨겁게 믿음 생활을 하기도 했고 한 친구는 그 책이 계기가 되어 아내와 함께 교회에 출석한다고 했다.전도하여 한 사람의 열매가 맺힌 것을 볼 때의 기 기쁨은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으리라.

요즈음 한국의 교인 수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그래서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앞으로 불신자 「회심전도」와 낙심자 「회복전도」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마지막 두가지 명령,영혼 구원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출판 및 문서 사역을 시작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뜻대로 행치 못하는 나 자신이 주님 앞에 부끄러울 때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전도의 능력을 받을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이레서원대표 평화교회집사>
-------------------------------------------------------------------------------------

3. 조종순 구로중앙감리교회 집사(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 극복체험 “간증”/아이못낳는 이웃 「믿음기도」 적극 권유/크리스마스 이브에 “잉태”… 감사의 “눈물”

아들을 잃는 아픔과 그로인한 방탕한 생활,막내 아이 출산때 죽음을 넘나든 고통.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전도하기에 좋은 간증이 되었다.나를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절로 감사찬송이 나온다.

남편,4살된 아들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날 그 아이가 뜨거운 물에 빠져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로인해 남편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나는 그 고통을 잊으려 세상 낙에 취해 지냈다.얼마후 나는 막내 아들을 출산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그런데 탯줄이 끊어져 하혈을 하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피가 빠져나갔다.거의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고 복음을 접하게 해 주셨다.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다시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그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마음문을 두드리셨다.

『나의 인생이 뭔가.나는 이렇게 살다 종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하나님앞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주를 위해 살게 하옵소서』

그때부터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전도목표를 세워놓고 전도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그에게 계속적인 관심을 보였다.시장을 보러 갈 때도 파 한단을 더 사서 그에게 갖다 주는 등 좋은 것만 생기면 간직했다가 그 사람에게 주면서 전도를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이것저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예수를 증거했다.수첩에 그날 만나 전도한 이들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기록하여 믿음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체크하면서 계속적인 관심과 집중적인 기도를 했다.

한번은 지난날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현란한 옷차림과 방탕한 생활,그야말로 세상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 여자는 결혼을 한 후 몇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어 남편과 늘 불화상태에 있었고 세상적인 쾌락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했다.

나는 나의 간증을 들려주며 교회에 가기를 권했다.그러나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한번 전도하기로 작정한 이상 꼭 교회로 인도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으로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하루는 그녀가 『예수 믿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나요』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고 말고.예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세상에 못할 일이 전혀 없으시지』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다.그러나 그해가 다 지나도록 그녀에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그여자는 예수 믿어도 소용없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께 간구했다.『제발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크리스마스 이브,그녀는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되었고,우리 모두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후로 그분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믿지 않는 영혼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그후 나보다 먼저 여선교회 회장 직분을 맡아 헌신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항상 내가 구한 것 이상으로 보너스를 주시는 분이다.전도를 하니 마음에 기쁨이 왔고 내가 전도한 이들이 또 세상에 나가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을 때 그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전도하는 중에 내 속의 모든 공포,두려움은 사라지고 평화와 안식이 임해 마음의 천국을 이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4.그림엘 말씀담아 어린 영혼 복음/이범교(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매주 토요일 국교 교문앞에서 「믿음」 전파/「핍박감내」 등 3대원칙 준수… 아내도 동참

토요일이 되면 가슴이 설렌다.해맑게 웃는 어린 아이들,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이것저것 묻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15년전부터 토요일 오전12시는 어린이노방전도의 날로 정하고 있다.처음엔 혼자서 시작했지만 7년전부터는 아내와 함께 전도에 나서고 있다.전도를 나서기 전 아내의 손을 잡고 『오늘도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한후 손잡고 집을 나서기 때문에 주위에서 예순이 훨씬 넘은 우리더러 「잉꼬부부」라고 한다.

종로5가 효제국민학교 앞에 도착하면 처음엔 교문앞에서 그림을 들고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 있는다.그러면 하교길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 둘씩 우리를 에워싸고 『할아버지 저사람이 누구에요.왜 십자가에 못박혔나요』라는 질문을 한다.시선의 집중을 확인한 나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아이들에게 쉽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림을 이용한다.병든자를 치료하는 예수님,십자가를 진 예수님,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미리 준비해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해서 1주에 30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나눠준 전도지를 가지고 다음날 교회에 나온다.전도대원들이 새신자어린이를 후속 교육한다.

전도대원은 국민학교 3∼6학년 어린이 7∼8명으로 구성돼 있다.내가 말씀을 전하면 대원들은 전도지를 나눠주고 또 교회에 아이들이 출석하면 가정방문을 한다.

이렇게 전도를 하면서 세운 전도의 3가지 원칙이 있다.첫째,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증거한다.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핍박도 감내해야 한다.

둘째,기도만 해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활동해야 한다.외치지 않고는 전도가 안된다.

셋째,전도의 구체적인 방법을 세워야 한다.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근심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다.한 영혼을 사랑하는 안타까움을 갖고 전도하면 분명히 복음을 전할 수 있다.나만 예수믿고 구원받은 것에 행복해할 수 없다.

한 가정을 심방했던 일이 생각난다.부모가 불신앙인이라서 방문하는 것을 싫어했다.그래도 여러차례 찾아가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했다.

『내일이 총동원 주일이니 제 체면을 봐서라도 한번 출석해주세요』

그들이 다음날 교회에 나왔다.그들은 1년만에 집사가 되고 구역장이 돼 이젠 전도활동이 눈부시다.만약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어찌됐겠는가.

이젠 누구를 만나 회사일로 이야기 하거나,인생문제를 얘기할 때도 예수님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성령님께서 늘 지혜를 준다.

한번은 술취한 사람이 『왜 전도같은 것을 하느냐』며 멱살을 잡아 참지 못하고 싸운 일도 있었다.곧 후회하고 회개했다.전도하면 이런 핍박 정도는 각오해야 하지 않겠는가.

몸이 약한 나였지만 지난 15년동안 아파서 누워 본 일이 없다.아내역시 마찬가지다.아내는 다리가 아파 좀 쉬었으면 하다가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3시간 노방전도를 다니면 오히려 다리가 가벼워진다고 말한다.

이렇게해서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면 열두제자훈련 운동을 벌인다.예수님의 제자가 12명 아닌가.이들은 1년동안 훈련받고 각 반에 배치된다.

또 내가 운영하고 있는 한나만화영화사에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미술을 지도해 주고 있다.2년전에는 20명에게 무료로 미술을 가르치고 전도도 했다.

오늘도 아이들의 외침이 가슴에 요동쳐 온다.

『주예수 내 맘속에,예수님만 사랑합니다』<중앙성결교회 장로>
------------------------------------------------------------------------------------

5.가족 복음화 중보기도 “열매”/나용균(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많은 크리스천이 가족이외의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에는 열심이나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을 전도하는 일에는 덜 열심인 것을 가끔 본다.나는 주변 사람들의 전도도 중요하지만 전가족을 복음화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그래서 가족의 완전 복음화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족은 결혼후 병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 어머니와 어머니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는 아버지가 있다.어머니는 하나님을 믿고 병을 고쳤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아 고향의 마을 주민들을 많이 교회로 인도했으나 가족은 제대로 교회로 인도하지 못했다.

위로 누이가 셋 있으나 큰누이만 사모로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돕고 또 형이 둘이 있었으나 큰형은 하나님을 영접하지도 못한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둘째 형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출석교회 목사님의 부도덕한 일을 보고난 뒤 무교회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전 가족복음화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늘 중보기도를 드린다.이 결과로 교회는 문턱도 넘기 싫어하던 이모 두분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큰이모 둘째이모는 교회에 나간지 2년이 됐는데 믿음이 아주 좋다.

나의 목표는 둘째형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다.둘째형과 그의 가족을 위해 나름대로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그리스도인의 빛과 향기를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난 가족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중보기도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어머니와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으나 이제부터는 두분의 이모,아버지와 같이 기도를 할 계획이다.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 세상에 없는 크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나의 삶을 통해 불쌍한 형제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가족 모두가 주님앞에 서리라고 믿는다.<기윤실 간사>
---------------------------------------------------------------------------------------

6.수업종료 5분전 말씀인도 “결실”/이종신(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끊임없는 관심·상담 대입진로 불안 해결/1년에 학생 백명 깨달음 받고 신앙생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위대한 명령을 주셨다.

그것은 마태복음 28장19절,20절의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다.이 사명을 위해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 및 사회복지시설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일찍이 기독교적인 가풍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대학을 졸업하고 미션고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교회에선 고등부,대학부,새신자반 지도를 하게 되었다.

어느날 기도중에 문득 학교와 교회에서 사방으로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내가 교육자로서 부름을 받은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다.학생들에게 세상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이들에게 온전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제자화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라는 깨달음이 왔다.

고등학생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 늘 두렵고 초초하게 마련이다.특히 고3학생들의 심적 고통은 이루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따라서 이들은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이들에게 참 평안이 되고 소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마음의 안식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때부터 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아니었다.신학기가 시작되면 각 반의 수업 첫시간에 제일먼저 하는 일이 교회다니는 학생과 안다니는 학생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전도할 대상이 된 학생들의 이름,주소,전화번호등을 반별로 수첩에 기록한후 매 수업시간 종료 5분을 남겨놓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가기로 약속한 학생들을 일일이 체크하면서 상담과 계속적인 지도를 하였다.그랬더니 1년에 1백여명의 학생들을 전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한번은 나와 교회에 가기로 약속한 고3학생중에 한 학생이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상담을 해보니 역시 대학입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성적은 부진하고 공부를 해도 능률은 안오른다는 것이었다.나는 그 학생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길이 많다.너는 체격도 좋고 인물도 좋고 심성도 좋다.특히 하나님을 향한 너의 마음은 그 누구도 못따른다.그러니 신학대학에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얼마뒤 그 학생은 나에게 찾아와 신학대학에 갈 것을 결정했다며 밝게 웃었다.지금 그 학생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박사코스를 밟고 있다.

학교에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된 학생들이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발표력이 향상되고 대인관계에서 원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또한 매사에 적극적이 된다.더욱 감사한 것은 전도한 학생들이 자신들만 신앙생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전도함으로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목회자들이나 교회학교 교사들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나 학생전도는 역시 학생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또한 학생들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이들을 신앙으로 결실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었다.<신일고등학교 교사>
---------------------------------------------------------------------------------------

7. 내게 주어진 「작은것」 나눔 실천/장애자(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우울증 고생 이웃보다 치유기도·교회인도/일년지나자 “말끔”… “남편에게도 권유” 의욕

나보다 먼저 크리스천이 된 남편을 보면 볼수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깊어만 갔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길 원하셨기에 내게 성령을 주셨고,주님안에서 이웃과 함께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지혜를 공급해 주셨다.

성령을 받은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기도생활에 전념했다.그런데 하루는 기도중에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가진 재물도 없고 지식도 없는데 어떻게 나누어 주지」라는 생각에 한동안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네게 있는 것 중에서 나누어 주라』는 두번째 음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외에는 결코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먼저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느라 분주했다.그러나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데 불과했던 나의 작은 나눔으로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곧 실감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셨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친숙하게 만드는 일이었던 것이다.작전을 바꾼 나는 먼저 내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내게 꼼꼼한 뜨개질 솜씨와 정갈하게 만두빚는 솜씨를 허락해 놓고 계셨다.나는 이 두가지 달란트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우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의 체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예쁜 조끼를 짜서 선물했다.또 정성스레 빚은 만두를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게 살포시 쪄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과 함께 이웃집에 건네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주치던 한 아주머니를 만나 집으로 초대했다.그런데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아줌마,교회 다니시죠.저좀 데려가 주세요』하는 것이었다.순간 「하나님,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

한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며 말씀으로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다.일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우울증은 말끔히 치유되었고,이제는 그녀도 남편과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겠다는 아름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내가 가진 지극히 작은 것을 나눔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그들이 주님과 친숙하게 살아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길 원하시는 것이다.<상계광림교회 집사>
--------------------------------------------------------------------------------------

8. 아이 못 낳는 이웃 설득 교회 인도/김송자(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성도들과 주오기도·성령은혜 확신갖게/출석 8개월만에 「역사」… 첫아들 잉태 “보람”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다.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전도될 때 제일 기뻐하신다.항상 구역식구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작은 것에서부터 베풀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평소 주위에서부터 실천하자는 것이다.

몇년 전,옆집으로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마침 아이들에게 줄 간식으로 빵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힘들어 보이는 그들 부부에게 한 접시 듬뿍 담아 가지고 갔다.나는 결혼한지 얼마 안돼 보이고 아기도 없길래 「새댁」이라고 불렀다.

나는 새댁과 많은 이야기를 하던 중 고민을 듣게 되었다.결혼한지 8년이 지났고 남편은 사대독자인데 아직 아기가 없어 너무 괴롭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 부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먼저 이들 부부를 위해서 기도를 했고,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있는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그런 후 교회에 나가보자고 제안을 했다.

『나랑 교회에 함께 나갑시다.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영접한 자 곧 그의 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좋은 분이거든요』

우선 말로써 전도의 씨를 뿌려 놓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쳐서 입술을 열어야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후 한달여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무심코 새댁 집앞을 지나는데 백일정성을 드려보라는 등 삼신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등 어느 낯선 아줌마의 음성이 들렸다.나는 나도 모르게 새댁의 집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를 데리고 나왔다.그리고 용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우선 새댁을 교회에 등록시키고 주일마다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그리고 교회사모님과 구역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다.새댁에게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주기에 바빴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있은지 8개월만에 주님은 새댁에게 태의 문을 열어주셨다.그리고는 첫아들을 출산케 하셨고 딸도 주셨다.

지금은 새댁이 멀리 이사를 갔지만 가끔씩 전화를 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전한다.며칠 전에는 주님을 몰랐던 시댁 어른들이 구원받아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하나님은 부족한 내게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용기를 주셨고 30배 60배 1백배의 은혜로 채워주셨다.전도의 열매가 이렇게 크고 마음의 풍족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왜 늦게 알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했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실천할 수 있는 나의 위치가 너무나도 감사하기만 했다.<광복성결교회 권사>
--------------------------------------------------------------------------------------

9. 하루 9시간 발로뛰며 「말씀」인도/전미경(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경로당·시장 등 두루 누비며 교회출석 설득/“뿌린대로 거둔다” 실감… 최우수 전도상 수상

1992년 10월…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겐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귀한 추억의 시간들이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안산광림교회에서는 그때 믿지않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1만명 초청잔치」라는 이름아래 총력전도를 펼치고 있었다.

교회문턱을 넘어선지 불과 1년 남짓한 시점이었고,예수님품안이 무조건 좋고 감사하기만 할 때였다.

전도의 비결을 일러 주기 위해 대구에서 오신 정종근장로님께서 전도인원 작정 결신서를 내라고 하셨다.『많이 쓸수록 많은 열매를 맺을수 있다』는 장로님의 말을 너무나 확실히(?) 믿은 나머지 남편은 2천명을 적어 냈고,나는 겁도 없이 5천명이나 적어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써낼 땐 그저 동그라미 많이 치는게 잘하는 일 같아서 적어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걱정이 됐다.

출석한지 몇달만에 우리가족 4명을 전도한 전적밖에 없는 내가 무슨 용기로 5천명을 적어냈는지….

아무튼 하나님께 약속을 한 일이라 조급해지기 시작했다.교회에서는 「전도특공대」가 조직됐는데 전도경험이 많은 분을 조장으로 하여 3명이 1개조가 되어 합력하여 선을 이뤄내도록 독려하였다.

같은 여선교회 회장인 김재옥집사와 박순자집사가 한 조가 되었는데 전도경험이 없는 박집사와 나는 오로지 베테랑인 김집사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김집사는 먼저 하나님께 약속하도록 만들었다.「새벽기도 1시간전인 새벽4시에 나와 기도할 것」과 「아침9시에 집합하여 저녁 6시에 헤어질것!」

다시말해 한달동안은 어떠한 개인적인 용무나 가정의 대소사도 하나님께 약속드린 「9 to 6」(9시간)의 시간을 범할 수 없다는 일종의 계엄령같은 조치였다.

아픈 것도 허용되지 않는 전시 이상 상황처럼 오로지 하나님 일로만 다니는 걸 보고 글쟁이 남편은 김집사의 별명을 「독일병정」이라고 지어주었다.나도 100% 공감했다.

우선 교회에서 나눠준 초청장을 욕심껏 가져다가 봉투를 맞춰서 정성스럽게 넣고 우리의 이름을 새긴 고무도장을 찍었다.남동생이 물려준 탱크 소리나는 스텔라 자동차가 전도 특공대의 장갑차가 됐다.그 차에는 교회에서 내준 선물용 쓰레기봉투가 가득했고 초청장,설교지,광고전단등이 수북했다.「끌어 오려면 베풀어야 한다」는 김집사의 「노하우」대로 초청한 날에 오기만 하면 확인도장을 받는 티켓도 발부했고 경로당 노인들에게는 KBS 견학권을 대대적으로 뿌리고 다녔다.또한 번화가에서는 띠를 두르고 노방전도를 했고 아파트와 연립주택을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교회 글귀가 새겨진 껌과 사탕도 늘 주머니에 불룩하게 갖고 다니며 학생들과 시장에서 마주치는 주부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그러면서도 교회의 모든예배와 행사는 우선적으로 참여했다.우리 3인방의 기도는 목숨을 건듯이 맹렬했다.점심은 시간날 때 먹는 것임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우리가 뛴 거리가 작은 안산시에서 5백㎞를 넘어섰으니 꽤 다닌 셈이다.

마침내 우리의 전도로 교회문턱을 넘어선 사람들이 버스로 몇대가 넘었다.할렐루야!

우리 3인방은 결국 최우수전도상을 탔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아직도 그때의 감격과 사랑이 내 영혼과 생활에서 신앙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니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안산 광림교회 집사>
--------------------------------------------------------------------------------------

10. 예수영접 「놀라운 축복」 체험 간증/곽경자(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방랑벽 남편」으로 고통받는 이웃 믿음전파/하루에도 몇번씩 들러 “교회 나가세요” 설득/들은척도 않던 부인 신앙생활후 가정평화 찾아

나는 어릴적 몇번 교회에 가본적은 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결혼후 2년쯤 지났을때 친정어머니가 이름모를 병환으로 고통받으시다 결국 주님을 영접하고 건강을 회복하셨다.그일을 계기로 친정은 모두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그러나 나는 남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얼마후 남편의 거듭된 사업실패로 그많던 재산을 다 탕진하게 되고,엄한 시집살이로 인한 스트레스,연탄가스로 인한 시누이의 죽음 등이 나의 영혼을 짓누르게 됐다.설상가상으로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그 모든 일들로 인해 나는 화병에 시달려야 했고 심한 위병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나는 예수 믿으라는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교회나갈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남편은 고통에 시달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결국은 허락해 주었다.

나는 아이들과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병 고침도 받게 됐다.얼마동안 그렇게 다니다 보니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하나님,남편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남편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며 날마다 기도했더니 교회얘기만 나오면 펄펄 뛰던 남편이 변화받기 시작했다.

우리부부는 함께 새벽기도,철야예배,주일예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고 찬송하며 기도했다.

그때부터 우리가정에 놀라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남편 사업도 잘 되고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던 아들도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전에는 예수 소리만 나와도 펄펄 뛰던 남편이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우리부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에 너무 감사하여 우리가정에 일어난 놀라운 축복을 이웃에게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이웃에서 젯상에 올리는 그릇이나 기구를 파는 일을 하는 집을 전도하기로 했다.

그집은 남편이 한달이면 20일정도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오곤 해 부인이 심한 우울증과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문턱이 닳도록 방문해 기도하며 우리가정에 일어난 놀라운 축복의 간증과 함께 복음을 전했다.

『아주머니,예수님만 믿고 성령안에서 살면 남편의 방랑벽도 없어지고 가정에 행복이 찾아옵니다.예수 믿으세요』

처음엔 들은 척도 안하던 그 부인이 어느날 『우리도 예수님만 믿으면 집사님 가정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겁니까』하고 물어왔다.우리는 그것은 평안의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면서 더욱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주님을 영접한 그 부부는 남편의 방랑벽도 없어지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교회봉사에도 앞장서 금년에 집사직분을 받게 됐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가정을 택하고 구원하여 가정천국을 이루게 해 주신 하나님.믿고 구한 것은 다 이루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했을 때 남편을 구원하여 주시고 남편과 함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영혼구원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11. 복음전파 앞서 이웃사귐 부터/김영필(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궂은일 마다않고 도와주며 거리감 없애/기독교자랑도 짧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위층 할머니 “아줌마따라 교회가겠다” 화답

지난 91년 나는 교회학교에 다니던 4살배기 아들을 따라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됐지만 믿음이 성숙지 못한 나머지 잠시 낙담하여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기도하고 싶고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다.

지난해 여름이었다.이른 새벽에 눈을 뜬 나는 「어느 교회로 새벽기도를 갈까?」주저하고 있었다.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동안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바로 그때 꿈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야할 교회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 교회는 현재 출석중인 새안산감리교회였다.

그때부터 나는 교회에 빠짐없이 출석하며 구원에 대한 확신도 얻을 수 있었고,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한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데까지 이르게 됐다.

내가 전도하는 방법은 바로 자랑을 하는 것이다.물론 부족한 내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그리고 교회에 대하여 끊임없이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친절하게 인사하고 보다 빨리 친숙해 질 수 있도록 편안하게 대해준다.본래 하나님께서 외모도 평범하게 만들어 주셔서 별다른 거부감없이 주위 사람들과 사귈 수 있었다.

우리의 생활환경이 갈수록 이웃간의 대화와 사귐을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나는 전도를 위해선 먼저 닫혀있는 서로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면 솜씨야 있건 없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또 이웃의 대소사에 얼굴만 내미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손을 걷어붙이고 돕기도 했다.

이렇게 이웃과 친숙해진 다음에는 조금씩 하나님과 예수님,그리고 교회에 대한 자랑을 시작한다.이때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절대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아들이 예전에 교회학교에 다녀와서 들려주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처럼 이해하기 쉬운 언어들로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그리고 교회에 다니면 마음이 편해지고 큰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도 자랑하고,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자랑한다.

얼마나 내가 어린 아이같이 설명했으면 얼마전 위층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교회에 나가려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는 아줌마를 따라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다.

또 지난해 나의 권유에 순종하여 교회에 등록한 조카는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돼 성령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다』고 전해오기도 했다.

비록 나는 보잘것 없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모양으로 그 열매를 거두게 해주셨던 것이다.

또한 믿지 않던 남편에게도 끊임없이 자랑을 했다.『오늘은 교회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좋은 얘기를 해주던데요.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어떻게 나 혼자 천국에 갈 수 있겠어요? 여보,같이 교회에 가요』

이렇게 전도한 결과 초신자인 내가 지난 해에는 13가정을 교회로 인도했으며,이제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온식구가 예배드리고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교회에 대한 나의 서툰 자랑은 아직도 내 입술에서 그칠 줄을 모른다.<새안산감리교회 집사>
-----------------------------------------------------------------------------------------

12. “할아버지 전도에 20년 걸렸다”/김숙희(나는 이렇게 전도했다

◎ 완고한 유교집안… 노환 병상서 구주영접/남동생도 군입대후 신앙회복 교회출석

나는 철저한 유교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교회를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었다.어린시절 새벽에 은은히 울리는 교회종소리가 좋았기에 교회에 나가게 됐다.그 종소리는 『어서 교회에 나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학창시절 나는 학교에 오고갈때면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엄마가 제사지내는 고달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어머니는 제사를 준비했고 그것을 한번 치르고 나면 꼭 자리에 누웠다.더군다나 나는 제사음식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며 먹지도 않았고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지도 않았다.

그때는 단지 제사음식이 싫었기 때문에 기도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가족 한사람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가정의 가장인 할아버지를 전도하고자 『제사지내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고 다 쓸데 없는 일』이라며 20년동안 계속 부르짖어왔다.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조상을 잘 모셔야 너희가 복을 받는다.다 너희를 위해서 제사지내는 것이야』라며 막무가내였다.

이렇게 완고하던 할아버지는 91년 병환으로 누웠고 나는 할아버지께 『지금이라도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라면서 할아버지를 위로했다.가장 힘들때 할아버지를 옆에서 위로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할아버지는 결국 주님을 영접하였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할아버지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 후로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모든 제사를 다 없애고 본격적인 가정 전도에 직접 나서게 됐다.

며칠전 군에 입대한 남동생이 교회를 잘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간 후로 세상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군에 입대할 때 허리가 아파 고생을 했었다.나는 「21일 다니엘 새벽기도회」를 다니면서 집중적으로 동생을 위해 기도했다.동생의 아픈 허리가 다 낫게 해달라고.

다니엘 기도는 지난해 11월27일에 끝났다.그런데 갑자기 28일 여동생이 전화를 해서 남동생이 훈련받다가 눈을 다쳐 국군백제병원 안과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다.나는 너무나 놀라 당장 동생에게 면회가려고 준비하였다.다음날 남동생이 전화를 해서 눈은 괜찮고 올 5월까지 이 병원에 있으면서 잔일을 도와주게 됐다며 편한 군생활이 시작됐으니 책좀 보내달라는 것이다.그리고 지금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막11:24).나는 이 말씀에 의지하면서 20년동안 우리 가족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했고 이제야 하나하나 결실을 맺게 됐다.

<진주 성남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