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2005. 5. 31. 08:36좋은 글, 이야기

 

글 / 조인형

(1)

토요일이면,
내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셨다.
내 어려선 나를 기다리시고,
동생을 기다리시고,
내 자라선 손자, 손녀 우리 모두를 기다리셨다.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모내기 하는 그 날 에도,
밭 메고 씨 뿌리시던 그 날도,
농약 치시던 그 날도,
밭에서, 논에서,
아버지는 집 앞 재터고개 언덕을 기다리셨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성휘를 보면 힘이 난다’고,
단지 그 이유로 아버지는 언덕을 이른 아침부터 기다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
내 아들 성휘가 제일 많이 울었다.


(2)

시골에 가는 그 날에는
어머니는 늘 두부를 하셨다.
그 불편한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다리를 가지시고,
내 좋아 먹는,
내 모습이 좋아,
두부를 만드셨다.

모를 낸 그 날 저녁에도,
밭 메고 씨 뿌리시던 그 저녁에도,
농약 치던 그 날 에도,
아들이 좋아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두부를 만드셨다.
그 따끈-따끈한 두부와 잘 만들어진
내 어머니표 간장을 준비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두부 먹는 날 이 적어졌다.


(3)

밤이 되면,
내 동생 용준 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
밤새워 안방을 오르고 내리고
웃고 웃는다.

아버지는 지친 동생을
보-랍게 애기처럼 재우신다.
그 조용한 시골의 밤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지금도,
토요일에는
내 아버지와 동생의 잠든 모습이 그리워진다.


(4)

주일,
아침의
햇살은 너무나 싱그러웠다.
어머니의 소리, 아버지의 아침 목소리 (소리=기도)
우리는 그 목소리에
아침을 맞는다.

아버지의 아침 인사는
‘우리 오늘 특송 하자’
우리는 알고 있는데 꼭 그 말씀을 하셨다.
늘 우리는 아버지 말처럼 특송을 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은 내 딸 은비가 반주하며 더 멋있게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돌아 가셨다.

*‘소리’ ‘멋있게’는 표현은 시 흐름상 표현입니다.


(5)

지금도,
시골에 가면,
아버지가 다니시던 교회가 제일 아버지를 그립게 한다.
앉아 계시던 목사님의 옆자리 등이 긴 의자.
그리고, 예배당 맨 뒷자리
(아버지는 새벽 예배는 앞자리에
다른 예배시간에는 늘 뒷자리에 앉으셨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기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린 아이를 보아도 먼저 인사하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
아버지의 손-때 묻은 교회 구석구석,
그곳에, 아버지는 계셔 말씀하신다.
‘난 지금 너무 편하단다.’... 라고


(6)

주일,
늦은 시간
어머니는 무:-말랭이, 씀바퀴, 돌-미나리, 고사리, 콩나물, 두부, 김치,
그리고 콩, 팥, 쌀 보다리 보다리 만들어
경운기에 올려놓으시고,
우리는 아쉬움의 보다리를 올려놓는다.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 옆에
내 여동생은 경운기 한 가운데,
시골발 저녁6시 50분 경운기는 그렇게 떠난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내 어머니를 두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었는데,
그레도, 내 아버지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