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07 이철환 성도(연탄길의 저자)의 신앙간증
하나님의 선물
지면을 통해 무한한 사랑을 간증케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먼저 감사 드립니다. 7 년 전 아내와 함께 강북제일교회에 처음 왔을 때, 아픔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시는 윤덕수 목사님의 모습이 저에겐 커다란 은혜였습니다. 이전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제 믿음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수유제일교회에 온 후였습니다. 그런데 99년 가을, 저에게 아픔이 생겼습니다. '연탄길' 이라는 책을 쓰면서 너무 과로한 탓에 양쪽 귀에서 매미 울음소리 같은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종일 들리는 이명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한 고통이지요. 이명과 같이 동반되는 증상에는 불면증, 우울증, 심한 경우에는 자살충동까지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쪽 귀에만 이명이 있는데 저는 양쪽 귀에 이명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불면증, 우울증, 자살충동은 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글을 쓰는 일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모두 놓아야했지요.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10년 간 피웠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던 사람이니까 결코 의지가 약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정신과 병원에까지 다니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을 치료받아야 했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치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면서 아픔에서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고통 속에 갇혀 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았고 수요 예배까지도 가능한 한 꼭 참석하려 했지요. 저는 교회 본당에서 예배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명이 심한 사람들은 큰 마이크 소리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수유제일교회 시절, 철 계단을 올라가 본당 2층 창가에 귀를 기울이고 서서 희미하게 들리는 목사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때로는 땡볕 아래 땀을 흘려가며 귀를 기울였지요. 2층 교육관에는 커다란 텔레비전도 있었지만 그 소리 또한 너무나 커서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렇게 전투를 치루면서도 저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계실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고통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저는 또 다시 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거라는 사단의 유혹이 저를 끝내 절망케 했습니다. 이명도 더 심해졌고 감당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 무렵 교회가 지금의 강북제일교회로 이전을 했습니다. 저는 목사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지? 沮?곳에는 제가 예배 드릴 곳이 한곳도 없었습니다. 로비도, 자모실도 웅웅 거리는 소리 때문에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도 가보았지만 그 곳에도 웅웅 거리는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냄새나는 화장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깊어서가 아니라 설령 화장실에서라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하나님께 만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명은 점점 더 심해졌고 저는 또 다시 우울증, 불면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어두운 방안에 온종일 누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딸아이가 내 가슴에 안겨서 말 없이 눈물을 흘릴 때 저는 말 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딸아이가 힘내라고 써온 편지를 제가 누워 있던 바로 옆에 붙여놓고 용기를 내보려고 했지만 이명과 우울증은 제 숨통을 꼭 쥐고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영혼을 뜯어먹는 사단의 이빨과도 같은 이명과 우울증은 저에게 죽음을 강요했습니다.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기도하자고 말했을 때, 저는 기도 같은 거 안 한다고 목울대를 세우며 말했습니다. 본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제 마음 속에 하나님이 너무나 ! 많이 들어와 계셨으니까요. 하지만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은 사람을 이토록 처참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제 무릎을 꺽어 놓으셨습니다. 그 때부터 전투적인 기도가 시작 됐습니다. 먹던 약까지 모두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온종일 어두운 방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 지치면 쓰러지고, 기도하다 지치면 다시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텅 비워지면서 한 줄기 빛이 제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감격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는데, 어디에 계신지요?" 하나님은 제게 말하셨습니다. "철환이 네가 눈물 흘릴 때, 나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아니?" 이것은 제 인생에 있어 실로 감격적인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어두운 방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명을 없애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에 "너를 통해 나의 뜻을 이룰 때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 고 하나님은 말하셨습니다. "하나님, 저를 일으켜주시면 저 하나만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저도 세상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제가 쓴 책 "연탄길"에 날개를 달아주시겠다는 약속도 해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긴 어둠 속을 걸어나왔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하신 약속을 하나하나 이루어주셨습니다. 이명도 견딜 수 있는 온전한 힘을 주셨고 "연탄길"도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세상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연탄길나눔터" 라는 조그만 공간도 만들어주셨고 그 곳에서 일할 사람들까지도 보내주셨습니다. 신문과 방송 그리고 교회뿐만 아니라 대학이나 중고등학교,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는 교도소에까지 저를 보내시어 하나님의 사랑?간증할 수 있도록 세워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완벽한 시나리오이기에 혹여 제가 우쭐거리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매일 기도? 構?있습니다. 이명은 여전히 들리지만 이제는 본당에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목사님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런지요. 며칠 전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만났습니다. 푸른 옷을 입고 있는 그분들께 말했습니다. "저에게 아픔이 있듯 여러분 가슴속에도 저마다 아픔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길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잘 보이는 법이니까요. 여러분의 선한 눈빛을 이 곳에 남겨두고 저 혼자만 세상 속으로 나가서 죄송합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너무나 진지한 눈빛으로 제 말을 들어주던 그분들을 남겨두고 나올 때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던지..... 다음에는 재소자 중 한 명만 이라도 가슴에 꼭 안아줄 거라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경비가 삼엄한 교도소 정문을 통과할 때 저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백했습니다. "부족한 저를 세워주신 아버지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 윤덕수 목사님과 여러 부목사님들, 그리고 최안자 권사님, 서옥순 집사님과 아내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신 그분들의 손길이 제게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여전히 흘러가는 하나님의 강물같은 사랑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