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1)

2005. 12. 23. 09:30신앙간증




나는 단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간구하고 있었다. 
기도할 때 나는 철야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있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 그 웅성거림 속에서 
하릴없이 구경하듯 하다가 문득 
"이 시간이 내게 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릴때부터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고 
기도는 조용하게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에 
간혹 터져나오는 울음조차 얼른 삼키려 했던 기억이 있을 뿐 
그래서 열광적으로 기도하는 그들의 나에게 구경꺼리였었다. 
사랑의 강권에 못이겨 꿔다 논 보리자루처럼 앉아 있기는 했는데 
그러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약에.. 만약에...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다면... " 
나는 4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었고 
또, 주일을 범하는 일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계속해왔으며, 대학때는 기독서클에서 
간부로 활동했었다. 그런 나 였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지옥도 천국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진짜로 살아계시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시고 계시다면..." 이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그때 나는 마치 교회에 놀러온 사람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는데..) 
다리를 풀고.. 자세를 바르게 했으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 나는 밑져야 본전이니까, 어떤 승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기도의 핵심은 단지 이것 뿐이었다. 
그 말 한마디 내 뱉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흡사 나는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린 죄수처럼 끙끙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들으실만한.... 진실하고 간곡한.... 
단 한 마디의 말을 내 뱉기 위해 나는 거의 필사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어라고 기도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희안하게도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나는 방언받기를 원하거나 기도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 수 없는 언어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외국 TV 를 켜 놓은 듯한 유창한 언어인데, 나의 혀는 다른 생소한 발음(혀 굴림)에 
무척 힘겨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단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언어들이였다. 
너무나 신기했다. 문제는 기도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도 방언으로 인사가 나오는 것이었다. 
상대는 의아해하면서도 웃고 있는데, 정작 더욱 의아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드디어 내가 미쳤나보다... ㅠㅜ 
무슨 말을 해도 방언이 되어 나오고 
나는 한국말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무심코 "아웅~ 졸려!" 라고 기지개를 켜는데도 
머리털 나고 첨 들어보는 생소한 언어가 툭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절친한 친구 한명이 그런 나를 보고 눈의 휘둥그레졌다. 
바짝 긴장하는 듯 하더니.. 나에게 거리를 두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능력도 철저하게 믿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교회를 다녔어도, 기독교 종교인의 생활을 했었어도 
내 중심은 하나님의 실존을 완벽히 믿지 않고 있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내 능력사이에서 힘 겨루기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이 현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책상" 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내기로 굳게 결심했다. 
마음은 책상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책상.. 이라고 외치는 순간에 
이미 다른 나라의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국말 두 음절조차.. 내 의지로 발음해 낼 수 없는 한계상황이었다. 
나는 책상의 "책"부터 발음하기로 결심하고... 손끝 발끝 머리끝 부터 
책.책.책.책.책.책책..책..책..이라는 식으로 기를 끌어모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책!!!!!!!!!! 이라는 단 한 음절의 발음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래가지고서는 한국어 대화는 불가능했다. 
나는 꽤를 내어 마스크를 착용한 다음 독감이 걸린 것처럼 위장하고 
볼펜과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는 메모지에 내 의사를 적어서 주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긴장이 풀어진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마스크를 벗고 나의 상태를 망각한 채, 친한 친구에게 
차창 밖에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기 시작했다. 
한 참을 떠들어 놓고 보니 그것이 전부 방언으로 나왔다. 
뒤 늦게 사태를 눈치챈 나는,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주변 사람들이 일제를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그 황당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의 방언은 알 수 없는 나라의 뉴스방송을 틀어놓은 듯 했다. 
" 저 아가씨는 분명 토종 한국인같이 생겼는데 
말하는 것은 이상한 외국어로 말을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이야?" 
하는 듯한 의구심에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진땀이 흘렀다. 
이러다 한국에서 살 수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있었으나 
그러나 내 마음중심은 지극히 평온했고 지극히 행복했다. 
나는 3일 밤낮을 우리나라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이제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나보다 강한 분이심을 믿나이다." 
나는 그렇게 고백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때가 내 나이 27세였고, 4월 27일 금요일 밤이었다. 
("하나님의 음성, 어떻게 들리는가?" 를 쓰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있었던 일부터 회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