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분의 실제 간증입니다!~~은혜 받으시길~^&^
2006. 1. 19. 11:54ㆍ신앙간증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감자를 깎고 있는데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동네 소식을 전해주시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씀.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너 다니는 교회..혹시.. 구원파 아니냐?
어째..니가 너무 갑작스라서.....”
“컥”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의 구원을 그토록 간구하신 엄마조차도
나의 변화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나는 탕자였던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삶이 엄마조차도 의아심으로 쳐다볼 만큼
나는 견고한, ‘복음의 아웃사이더’였구나.....
* *
내나이 열아홉살까지만 해도 우리집은 독실한 불교집안이었다.
교리적 깨우침은 없었어도 지성으로 믿으면 반드시 복을 얻을 것이라시며
절에 바치신 공양미가 족히 3백석이요,
방귀만 뀔려도 절에 찾아가 택일을 하시던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
두 살아래 동생이 급작스럽게 죽어 버리는 불행이 우리집에 닥쳤다.
창졸지간에 당한 애통함이라 엄마를 비롯한 우리가족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방황하던 엄마는 얼마 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새생명을 얻게 되었고
엄마의 인생은 오로지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는 신실함으로 채워져 갔다.
그러나 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인생을 예정론에 맞춰 해석하는
사주팔자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운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다 그렇게 운명이 정해졌단 말인가??
삶과 죽음, 세상의 질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내 내부에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대학1학년때 휴학계를 내놓고 집안에 틀어박혀
철학과 역학에 관련된 책을 사다 읽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공부라 깨우침이 조금 더딜 뿐,
구통도가, 천기누설, 사주명리,주역, 육효, 관상학, 성명학등
차근차근하게 다져간 나의 역학 실력은 급기야 한사람의 인생을
한눈에 유추할 수 있는 전문 역술가의 경지에까지 올라섰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그 이후 내 생각과 관념은
자꾸만 사주오행의 틀에 치우쳐갔다.
사람들을 만나면 사주를 통해 분석되는 선입견으로 그를 평가하고
일상의 대화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허상속에 허우적대며
내 정신은 구리튀튀 썩어들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주풀이는 물론이요,
궁합,이사,고사택일등 역학쟁이로 주변사람들과 친교를 쌓으며
나는 나의 족집게 같은 역학적 지식을 보란 듯 내세우기에 바빴다.
역학과 영매풀이를 비교한다며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는 무당들은 또 얼마나 쫒아 다녔던지..
남편과도 총각점쟁이를 통해 엮어졌거니와
엄마 몰래 죽은 동생의 영혼결혼식까지 밀어붙이는 대담함으로
나는 내 영혼과 가족의 영혼까지 야금야금 마귀에게 팔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노후대책으로 퇴직 후, 역학 상담실을 차려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엉뚱한 계획까지 세워놓게 되었다.
그렇게 허랑방탕한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교회에 한번만 나와 달라는 친구 용선이의 간곡한 권유에 못이겨
체면치레로 나와 준 교회에서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만 것이다.
매미 짱짱하게 울어대는 7월 어느날,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아름다운 교회(전주시 중화산2동 사무소 옆)에 첫발을 디뎠다.
사주책 뒤적이는 나를 보고 눈물짓던 엄마가 캥기기도 했거니와
혈기많고 뚝성질 있던 용선이의 눈빛을
잔잔한 바다와 같이 변화시켜버린 그 무엇이 궁금해서
사실은 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엄마따라 시골교회에도 몇번 나가보고
엄마에게 신앙을 세워주신 목사님이며
직장 동료며 이사람 저사람 청에 의해
전주시내 교회 대여섯 군데를 한 두번씩 나가보기는 했지만
교회 문턱만 들어서면 벌집 쑤신 듯 머릿속이 욱신거리고
가슴으로는 2만 볼트 짜리 고압전류가 합선을 일으키면서
전동 드릴로 드르륵 박아대는 것 같은 불유쾌함 때문에
나는 도저히 교회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교회와 절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고
그래서 더욱더 역학이며 우상에 빠져 들었던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까지 나는 사탄 마귀들의 신실한 종이었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설명할수 없는 부드러운 기운이 내 목덜미를 감싸는 것이다.
수세미로 박박 긁어 댈 것 같은 불편함을 예상했건만
귀로 들어오는 찬양은 감미로웠고
목사님의 설교도 쏙쏙 들어 앉았다.
경직되지 않은 자유함속에서
신실함이 묻어나는 성도들의 예배모습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른 교회에서는 그토록 하품만 나오고 짜증이 솟구치더니
그날은 무엇 때문인지 졸음도 찾아오지 않았다.
예배 끝 무렵, 사모님의 축송에서는
눈시울까지 촉촉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곧 사탄마귀의 굴레에서 놀아나며
용선이와의 관계를 구기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핑계거리만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에 끌려(^^) 다닌지 네 번째 되는 주일날은
마침 교회 여름 수련회(2005년 8월14일-15일) 날이었다.
아직 성경책도 볼줄 모르고 찬송도 따라부르지 못하며
예배 분위기 조차 익숙치 못한 나는 당연히 수련회를 거부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무척 가고 싶어라 했고, 용선이와 목사님도 간곡히
청했으므로 도살장 끌려가는 소 기분으로 미적미적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수련회 장소는 남원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황벌교회란 곳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떠난 참이라 황벌에 도착했을 땐 오후 5시가 다 됐다.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견고한 진’이라는 주제로 수련회가 시작됐다.
견고한 진이란 내안에 견고하게 자리한 부정적 습관과
아픔을 버리고 치유함으로서 온전히 새로운 삶으로 거듭난다는
주제를 가진 일종의 내적치유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내 삶에 관여하며 내게 상처를 준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옳지못한 습관들을 회개했으며
내안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나를 보았다.
저녁 기도시간.
낮은 조도에서 사람들이 통성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를 할줄 모르므로 남들이 하는 기도만 가만히 듣고 있는데
용선이 와이프(현재미)가 내게 말했다.
현: 언니 기도해
나: 뭔 기도여..나 할줄 몰라
현: 언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옆사람에게 말하듯
소원을 말하고 하나님 한번만 만나주세요~ 해봐
나: 에이. 이상해..안하고 그냥 있을래.
현 : 해봐 언니, 꼭 만나주실 거야.
호기심이 생겼다.
진짜..만나주실까?
하나님이 있긴 있는거여??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조심스레 달싹거려 보았다.
하나님!
남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열심히 사주책 뒤적거리고
올해만도 벌써 6번이나 점을 치러 다녔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가 이랬겠습니까?
하나님 계시면 제발 제게 한번만 보여주세요.
하나님이 계신 것만 알게되면 제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다니겠습니다.
하나님,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그순간...정말..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혀가 갑자기 꼬이면서 저절로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불가항력적 힘이 내 혀에 앉아 내 혀를 조종하고 있었다.
타닥 탁탁탁.. 탁탁탁 타닥타닥!
방언이었다.
방언이 있다는 걸 들어보긴 했지만 방언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으므로 나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혹시 귀신들렸나 싶은 두려움에 울상이 되어
혀를 움직이고 있는데 목사님이 내게 다가와서 일어나 보라고 했다.
그리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시작하셨다.
한 5분쯤 지났을까??
내 몸이 갑자기 공중부양하는 듯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뒤로 넘어졌다.
현재미목녀가 나를 붙들어 뉘였고 나를 바닥에 누인채 목사님은
계속해서 안수를 해주셨다. 내 뱃속은 뉘울거림으로 요동쳤다.
20여분이 지난 뒤 모든 것은 진정됐다.
황당했다.
허망했다.
속은 것 같았다.
집단최면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 간구에 곧바로 응답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단 말인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오~ 하나님!!
성질 사나운 여편네 반짇고리속 실패처럼
내 생각줄기가 뒤죽박죽 얼키고 설켰다.
그러나 이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긴 싫었다.
밤이 아닌 환한 대낮에 다시한번 확인이 필요했다.
당초는 그날밤 집으로 돌아와 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나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밤에 나는 교회 자매님들로부터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는 걸 알았고,
방언은 사단이 결코 들을수 없는 하나님과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도 들었다.
어떤이는 영어로,어떤이는 일본어로 어떤이는 불어로 방언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펼친다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더 나아가 통변능력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선 전율까지 느껴졌다.
나의 발칙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햇볕 짱짱한 이튿날,
내 입술에선 여전히 방언이 흘러 나왔다.
기도시간마다 아무리 사람의 말로 기도를 하려고 해도 내 혀는
곧 바로 방언으로 돌아서며 나는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셨으며
우리의 삶을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나의 삶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1주일간 묵은 피로를 푼답시고
12시가 다되도록 침대에서 뒹굴다가
찬밥으로 대충 아점을 때운 뒤
또다시 침대에 누워 시체놀음을 하던 내가
8시쯤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고
유모레스크와 같이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교회에 달려온다는 사실이다.
종전에는 두리번거리기 바빴던 예배시간도
온전히 주님께 주파수를 맞추고 기뻐 찬양하게 되었으며
주일 예배가 끝나면 다시 수요 저녁예배를 기다리는,
신실한 그리스도 홀릭(^^;;)으로 변해갔다.
초신자가 방언을 받으면 사탄의 공격을 받기 쉬우므로
성경으로 무장하는게 좋겠다는 목사님의 제안에 따라
사모님과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신앙도 눈에 띠게 자라났다.
이제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십자가와 구원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성령충만한 삶을 갈구하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참 행복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날까지 웃고 떠들면서도 마음 한가운데
덩그마니 앉아있는 허허로움을 이기지 못해 방황하던 내 심령이
예수님을 알면서부터 그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나님께서 기름붓듯 성령을 부어가며
나를 새사람으로 다듬어 놓으신 것이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후,
사탄에 씌였던 내가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며
수렁으로 밀고 간 그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 다급해졌다.
먼저, 친정에 전화를 걸어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해심을 전하고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혜경이를 비롯
나의 지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옥토와 가시밭, 자갈밭이 있다더니
내가 증거 한 하나님이, 누군가에게는 참 믿음으로 자라
함께 하나님께 돌아오는 가 하면, 누군가는 하나님은 인정하되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세상 것과 타협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이방인의 길을 고집하며
나를 '급작스럽게 교회에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러나 내가 어느날 갑자기 이방인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듯이
나는 오늘 그들에게 심어놓은 복음의 씨앗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신실한 양이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련회장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가 나의 방언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래 목사님 눈에 자동차 쌍라이트를 비추며
가열차게 시위했던 강퍅스러운 남편도
이제 주일이 되면 서둘러 아침을 먹고 함께 교회로 향한다.
세상에 대한 탯줄을 끊어버리고 예수님의 심장에 접속해
복음의 양식을 먹고 있는 우리 가정은 지금,
그리스도 보혈 안에서 한껏 자유하고 예수님 사랑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행복을 함께 맛보기 위해
내 주변사람들에게 예수 증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허물과 죄로 죽어가던 나를 건져
새생명 주신 은혜로우신 하나님..
세상 끝 날까지 저를 인도하소서.
.....할렐루야~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실제 간증을 옮긴 글입니다.
모두들 읽으시고 은혜 되셨으면 합니다.
^&^
이런저런 동네 소식을 전해주시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씀.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너 다니는 교회..혹시.. 구원파 아니냐?
어째..니가 너무 갑작스라서.....”
“컥”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의 구원을 그토록 간구하신 엄마조차도
나의 변화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나는 탕자였던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삶이 엄마조차도 의아심으로 쳐다볼 만큼
나는 견고한, ‘복음의 아웃사이더’였구나.....
* *
내나이 열아홉살까지만 해도 우리집은 독실한 불교집안이었다.
교리적 깨우침은 없었어도 지성으로 믿으면 반드시 복을 얻을 것이라시며
절에 바치신 공양미가 족히 3백석이요,
방귀만 뀔려도 절에 찾아가 택일을 하시던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
두 살아래 동생이 급작스럽게 죽어 버리는 불행이 우리집에 닥쳤다.
창졸지간에 당한 애통함이라 엄마를 비롯한 우리가족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방황하던 엄마는 얼마 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새생명을 얻게 되었고
엄마의 인생은 오로지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는 신실함으로 채워져 갔다.
그러나 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인생을 예정론에 맞춰 해석하는
사주팔자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운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다 그렇게 운명이 정해졌단 말인가??
삶과 죽음, 세상의 질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내 내부에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대학1학년때 휴학계를 내놓고 집안에 틀어박혀
철학과 역학에 관련된 책을 사다 읽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공부라 깨우침이 조금 더딜 뿐,
구통도가, 천기누설, 사주명리,주역, 육효, 관상학, 성명학등
차근차근하게 다져간 나의 역학 실력은 급기야 한사람의 인생을
한눈에 유추할 수 있는 전문 역술가의 경지에까지 올라섰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그 이후 내 생각과 관념은
자꾸만 사주오행의 틀에 치우쳐갔다.
사람들을 만나면 사주를 통해 분석되는 선입견으로 그를 평가하고
일상의 대화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허상속에 허우적대며
내 정신은 구리튀튀 썩어들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주풀이는 물론이요,
궁합,이사,고사택일등 역학쟁이로 주변사람들과 친교를 쌓으며
나는 나의 족집게 같은 역학적 지식을 보란 듯 내세우기에 바빴다.
역학과 영매풀이를 비교한다며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는 무당들은 또 얼마나 쫒아 다녔던지..
남편과도 총각점쟁이를 통해 엮어졌거니와
엄마 몰래 죽은 동생의 영혼결혼식까지 밀어붙이는 대담함으로
나는 내 영혼과 가족의 영혼까지 야금야금 마귀에게 팔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노후대책으로 퇴직 후, 역학 상담실을 차려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엉뚱한 계획까지 세워놓게 되었다.
그렇게 허랑방탕한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교회에 한번만 나와 달라는 친구 용선이의 간곡한 권유에 못이겨
체면치레로 나와 준 교회에서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만 것이다.
매미 짱짱하게 울어대는 7월 어느날,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아름다운 교회(전주시 중화산2동 사무소 옆)에 첫발을 디뎠다.
사주책 뒤적이는 나를 보고 눈물짓던 엄마가 캥기기도 했거니와
혈기많고 뚝성질 있던 용선이의 눈빛을
잔잔한 바다와 같이 변화시켜버린 그 무엇이 궁금해서
사실은 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동안 엄마따라 시골교회에도 몇번 나가보고
엄마에게 신앙을 세워주신 목사님이며
직장 동료며 이사람 저사람 청에 의해
전주시내 교회 대여섯 군데를 한 두번씩 나가보기는 했지만
교회 문턱만 들어서면 벌집 쑤신 듯 머릿속이 욱신거리고
가슴으로는 2만 볼트 짜리 고압전류가 합선을 일으키면서
전동 드릴로 드르륵 박아대는 것 같은 불유쾌함 때문에
나는 도저히 교회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교회와 절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고
그래서 더욱더 역학이며 우상에 빠져 들었던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까지 나는 사탄 마귀들의 신실한 종이었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설명할수 없는 부드러운 기운이 내 목덜미를 감싸는 것이다.
수세미로 박박 긁어 댈 것 같은 불편함을 예상했건만
귀로 들어오는 찬양은 감미로웠고
목사님의 설교도 쏙쏙 들어 앉았다.
경직되지 않은 자유함속에서
신실함이 묻어나는 성도들의 예배모습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른 교회에서는 그토록 하품만 나오고 짜증이 솟구치더니
그날은 무엇 때문인지 졸음도 찾아오지 않았다.
예배 끝 무렵, 사모님의 축송에서는
눈시울까지 촉촉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곧 사탄마귀의 굴레에서 놀아나며
용선이와의 관계를 구기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핑계거리만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에 끌려(^^) 다닌지 네 번째 되는 주일날은
마침 교회 여름 수련회(2005년 8월14일-15일) 날이었다.
아직 성경책도 볼줄 모르고 찬송도 따라부르지 못하며
예배 분위기 조차 익숙치 못한 나는 당연히 수련회를 거부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무척 가고 싶어라 했고, 용선이와 목사님도 간곡히
청했으므로 도살장 끌려가는 소 기분으로 미적미적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수련회 장소는 남원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황벌교회란 곳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떠난 참이라 황벌에 도착했을 땐 오후 5시가 다 됐다.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풀고 ‘견고한 진’이라는 주제로 수련회가 시작됐다.
견고한 진이란 내안에 견고하게 자리한 부정적 습관과
아픔을 버리고 치유함으로서 온전히 새로운 삶으로 거듭난다는
주제를 가진 일종의 내적치유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내 삶에 관여하며 내게 상처를 준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옳지못한 습관들을 회개했으며
내안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나를 보았다.
저녁 기도시간.
낮은 조도에서 사람들이 통성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를 할줄 모르므로 남들이 하는 기도만 가만히 듣고 있는데
용선이 와이프(현재미)가 내게 말했다.
현: 언니 기도해
나: 뭔 기도여..나 할줄 몰라
현: 언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옆사람에게 말하듯
소원을 말하고 하나님 한번만 만나주세요~ 해봐
나: 에이. 이상해..안하고 그냥 있을래.
현 : 해봐 언니, 꼭 만나주실 거야.
호기심이 생겼다.
진짜..만나주실까?
하나님이 있긴 있는거여??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조심스레 달싹거려 보았다.
하나님!
남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열심히 사주책 뒤적거리고
올해만도 벌써 6번이나 점을 치러 다녔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가 이랬겠습니까?
하나님 계시면 제발 제게 한번만 보여주세요.
하나님이 계신 것만 알게되면 제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다니겠습니다.
하나님, 제발 한번만 만나주세요....
그순간...정말..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혀가 갑자기 꼬이면서 저절로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불가항력적 힘이 내 혀에 앉아 내 혀를 조종하고 있었다.
타닥 탁탁탁.. 탁탁탁 타닥타닥!
방언이었다.
방언이 있다는 걸 들어보긴 했지만 방언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으므로 나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혹시 귀신들렸나 싶은 두려움에 울상이 되어
혀를 움직이고 있는데 목사님이 내게 다가와서 일어나 보라고 했다.
그리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시작하셨다.
한 5분쯤 지났을까??
내 몸이 갑자기 공중부양하는 듯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뒤로 넘어졌다.
현재미목녀가 나를 붙들어 뉘였고 나를 바닥에 누인채 목사님은
계속해서 안수를 해주셨다. 내 뱃속은 뉘울거림으로 요동쳤다.
20여분이 지난 뒤 모든 것은 진정됐다.
황당했다.
허망했다.
속은 것 같았다.
집단최면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 간구에 곧바로 응답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단 말인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오~ 하나님!!
성질 사나운 여편네 반짇고리속 실패처럼
내 생각줄기가 뒤죽박죽 얼키고 설켰다.
그러나 이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긴 싫었다.
밤이 아닌 환한 대낮에 다시한번 확인이 필요했다.
당초는 그날밤 집으로 돌아와 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나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밤에 나는 교회 자매님들로부터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는 걸 알았고,
방언은 사단이 결코 들을수 없는 하나님과 나만의 이야기라는 것도 들었다.
어떤이는 영어로,어떤이는 일본어로 어떤이는 불어로 방언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펼친다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더 나아가 통변능력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선 전율까지 느껴졌다.
나의 발칙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햇볕 짱짱한 이튿날,
내 입술에선 여전히 방언이 흘러 나왔다.
기도시간마다 아무리 사람의 말로 기도를 하려고 해도 내 혀는
곧 바로 방언으로 돌아서며 나는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셨으며
우리의 삶을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나의 삶은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1주일간 묵은 피로를 푼답시고
12시가 다되도록 침대에서 뒹굴다가
찬밥으로 대충 아점을 때운 뒤
또다시 침대에 누워 시체놀음을 하던 내가
8시쯤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고
유모레스크와 같이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교회에 달려온다는 사실이다.
종전에는 두리번거리기 바빴던 예배시간도
온전히 주님께 주파수를 맞추고 기뻐 찬양하게 되었으며
주일 예배가 끝나면 다시 수요 저녁예배를 기다리는,
신실한 그리스도 홀릭(^^;;)으로 변해갔다.
초신자가 방언을 받으면 사탄의 공격을 받기 쉬우므로
성경으로 무장하는게 좋겠다는 목사님의 제안에 따라
사모님과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신앙도 눈에 띠게 자라났다.
이제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십자가와 구원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성령충만한 삶을 갈구하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참 행복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날까지 웃고 떠들면서도 마음 한가운데
덩그마니 앉아있는 허허로움을 이기지 못해 방황하던 내 심령이
예수님을 알면서부터 그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나님께서 기름붓듯 성령을 부어가며
나를 새사람으로 다듬어 놓으신 것이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후,
사탄에 씌였던 내가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며
수렁으로 밀고 간 그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 다급해졌다.
먼저, 친정에 전화를 걸어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해심을 전하고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혜경이를 비롯
나의 지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옥토와 가시밭, 자갈밭이 있다더니
내가 증거 한 하나님이, 누군가에게는 참 믿음으로 자라
함께 하나님께 돌아오는 가 하면, 누군가는 하나님은 인정하되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세상 것과 타협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이방인의 길을 고집하며
나를 '급작스럽게 교회에 미친 사람' 취급했다.
그러나 내가 어느날 갑자기 이방인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듯이
나는 오늘 그들에게 심어놓은 복음의 씨앗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신실한 양이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련회장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가 나의 방언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래 목사님 눈에 자동차 쌍라이트를 비추며
가열차게 시위했던 강퍅스러운 남편도
이제 주일이 되면 서둘러 아침을 먹고 함께 교회로 향한다.
세상에 대한 탯줄을 끊어버리고 예수님의 심장에 접속해
복음의 양식을 먹고 있는 우리 가정은 지금,
그리스도 보혈 안에서 한껏 자유하고 예수님 사랑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행복을 함께 맛보기 위해
내 주변사람들에게 예수 증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허물과 죄로 죽어가던 나를 건져
새생명 주신 은혜로우신 하나님..
세상 끝 날까지 저를 인도하소서.
.....할렐루야~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실제 간증을 옮긴 글입니다.
모두들 읽으시고 은혜 되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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