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만난 하나님
2006. 8. 4. 09:37ㆍ신앙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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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만난 하나님 | ||||||||
창천기도원 신상필 원장(76)과의 인터뷰 날짜를 잡고, 그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내내 가슴이 설레었다. ‘그가 평생 모든 돈으로 지은 2만평 부지의 기도원을 아무 연고 없는 교회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는 이야기는 돈이 우상이 되는 작금의 시대에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한 기도원을 찾아가니, 일반 기도원과 달리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한국의 전통식 가옥만이 눈에 띤다. 신 원장의 사택을 물어 찾아가니, 기와집으로 지은 커다란 대문에는 태평각(太平閣)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들어서는 기자를 향해, 신 원장 내외는 “뭐 볼게 있다고 아침 일찍 여기까지 찾아왔냐”면서도 반갑게 맞이했다. “현판이 멋있습니다”라는 인사에 신 원장은 “‘내 집에 들어오는 자는 평안할지어다’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기도원을 둘러보는데, 신 원장은 건물 구조며 건축자재를 세세히 설명했다. 1993년부터 3년에 걸쳐 기도원을 건축한 신 원장은 좋은 한옥자재를 구하고자 강원도 벌목장까지 가서 소나무를 손으로 만져보며 직접 골랐다고 한다. 기자가 “정성껏 지은 기도원을 연고도 없는 교회에 맡길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자, 신 원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려고 기도원을 지었다”며 “누가 운영하던 간에 기도원을 잘 운영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신 원장의 얼굴에는 깊은 평안함과 확신이 묻어났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를 하나님께 인도해 신 원장이 1960년 친한 벗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6개월간 불면증 시달렸다. 이를 치료하고자 유명한 절이며 무당을 찾아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교회였다.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33절이 마음에 꽂히듯 다가왔다.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순간 그의 맘에 가득했던 염려와 불안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매일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기를 계속했다. 맘에 기쁨이 가득했다. 어느 날 창세기 14장을 묵상하는 중에,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내용이 맘에 와 박혔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 그에게 직접 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그의 부친은 서울에서 알아주는 부자였고, 6남매 중 셋째 아들인 신 원장에게는 논과 밭, 과수원 등 땅 일만 평을 주었었다. 신 원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땅을 부친께 돌려드리며, 대신 불광동의 불모지 6백5십 평을 받았다.
신 원장은 불모지를 개척하고 연탄 하나로 일주일을 살아도 너무나 행복했다. 주일 예배 후에는 역촌동 시립병원과 시립갱생원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며 보냈다. 사람들이 모여 들면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며 예배도 드렸다. 그 바쁜 와중에도 1963년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시엔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논문상을 타기도 했다.신학교를 졸업하니 3개의 교회에서 전도사로 와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제일 월급이 적고 환경이 어려운 남양주 조안면 신우리의 산골짜기 작은 교회로 찾아갔다.
신 원장은 불광동에 개척한 땅 2백 평을 팔아 교회부지 4백6십 평을 마련하고 사택을 짓고 전기를 들이고 앰프 시설도 마련했다. 3년 뒤, 한 가정만 출석하던 교회에는 청년들 십여 명이 모여들었다. 평신도로 교회와 기도원을 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던 그는 다른 작고 가난한 교회로 떠났다. “신우리 교회에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한두 집 빼고 다 나와. 그 산골짜기 교회에서 얼마 전에는 해외로 선교사까지 파송했다니 놀라운 일이지. 그 후로 계속 가난한 교회만 찾아다녔지. 합동, 통합, 감리, 기장, 고신 등 교단을 가리지 않고 교회 건축을 도왔지”라고 말하며 신 원장은 밝게 웃었다. 일련의 크고 작은 기적으로 수십억대의 재산가가 돼 신 원장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겠다고 작정하자 크고 작은 기적들이 그의 삶 속에서 일어났다. 신우리 교회를 건축할 때의 일이다. 한 사람이 찾아와 땅 2백4십 평을 사라고 했다. 신 원장이 돈이 없다고 하자 그는 ‘평당 1만2천원의 땅값은 십년 뒤에 줘도 되니까 말로만이라도 산다고 하라’며 강권했다. 마치 하나님이 보낸 귀인처럼 느껴져 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땅을 샀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 사업이 시작된 후, 한 지인이 지역사회를 돕자고 권하여 불광동의 땅을 팔아 역촌동 일대에 하수도를 설치하고 보도블록을 깔았다. 공사가 끝난 후, 경기도 일산으로 가 농사를 짓고자 하였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이에 그 강권하여 샀던 땅을 팔았는데, 땅값이 10배 이상 오른 터라 큰 이익을 봤다.
일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고양 군수가 건축에 필요하다며 신 원장 산의 ‘흙’을 요구했다. 나중에 보니 흙을 너무 많이 퍼가 산이 황폐해져 있었다. 이를 미안하게 여긴 군수는 산을 잡종지로 변경해줬는데, 나중에 이 땅도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큰 이익을 보게 됐다. 일련의 크고 작은 기적으로 신 원장은 어느 순간 수십억대의 재산가가 되었다. 이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지금의 창천기도원을 건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10년간 기도원을 운영하면서 신 원장은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금을 지역 사회에 돌려주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절기마다 광탄 지역의 노인정에 음식과 선물을 보내고, 가까운 교회에는 건축비를 지원했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선 기자를 정거장까지 배웅하면서, 백발이 성성한 신 원장이 오랜 연륜과 경험으로 깨달은 신앙의 원리들을 하나하나 전해줬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모든 헌물 가운데는 과부의 두 렙돈이 있어. 헌물을 쓰는 사람은 두려워하면서 쓰고 모든 생활에 절제해야 해. 주의 종은 헌물을 이웃에게 환원시키는 통로에 불과해” “교회에 헌금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기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는 것은 잘못된 거야” “이웃을 돌보면 모든 것은 그냥 따라오게 돼있어. 진정한 부(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야” 이영주기자,joseph@googood.com(구굿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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