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보호자” … 김병종 교수
2006. 9. 4. 09:42ㆍ신앙간증
“하나님은 나의 영원한 보호자” … 김병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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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오래 살지 않았건만 왜 그렇게 후회되는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가정과 자식을 버렸던 한 노인이 있었다. 온갖 부도덕하고 죄악이 가득 찬 삶을 살았던 그 노인은 부자였지만 영혼은 남루했던 사람이었다. 평생 아버지를 증오했던 아들이 찾아왔을 때 임종을 앞둔 노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입술을 달싹거린다. “리글렛,퍼킹 리글렛!”(후회,지랄 같은 후회).
삶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면 불현듯 그 노인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적어도 신앙적으로 소년기나 청년기에 상상했던 내 모습은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리글렛! 그야말로 ‘퍼킹 리글렛’이다. 하루종일 죄성은 언제나 나와 더불어 있었다. 때로 그것은 미소를 띠며 다가와 점령군처럼 내 영혼을 유린하기도 했다. 가끔 스무 해 전의 일기장,아니 서른 해 전의 일기장을 들춰보면서 소스라치는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변함이 없는가. 그 죄의 목록들.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홍안의 스무 살 때 목록과 귀밑머리가 희끗해진 이 나이의 그것이 어쩌면 그리도 같다는 말인가. 혈기와 정욕,교만과 독선,탐심과 위선…. 버려서 좋은 것을 모조리 달고 다니는 내 모습이여. “리글렛,퍼킹 리글렛이다!” 그러나 한 가지 영화 속의 노인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희미한 빛을 느낀다. 노인은 회한에 잠겨 ‘리글렛’이라고 되뇌며 죽어가지만 나는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할 대상이 있다. 나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사면과 용서의 전문가로 알려진 분이다. 그분은 용서의 전문가이고,용서를 넘어 저 페루 고산지역의 알파카 담요보다도 더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담요를 덮어주기를 즐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리글렛,퍼킹 리글렛’ 대신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았다. 토지문서 대신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나누어주셨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삶의 파란과 곡절을 많이 겪으신 분답게 배움은 없었지만 신앙의 카리스마가 대단하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어머니의 근심덩어리였다. 예술을 한답시고 동분서주하며 교회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나를 어머니는 늘 못 미더워하셨다. 그러다가 한번씩 호되게 꾸짖곤 하셨다. 신·구약성경을 수십 차례 통독하고 무릎이 으스러지도록 기도하다가 천국으로 떠나신 어머니는 어린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로워 마라. 기죽지 마라. 저기서 누군가 우리를 돕는단다.” 그렇게 우리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갔다. “얘야,너 그분과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한다. 기댈 곳은 그분밖에 없다.” 대충 이런 식의 말로 자식들뿐 아니라 주변의 허다한 사람들을 어머니는 교회로 이끌고 갔다. 혼자 살아온 여인답게 어머니는 어느 쪽이 힘세고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하는지 일찍이 잘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가끔 관계라는 낱말을 곱씹어볼 때가 있다. 어쩌다가 하나님은 나와 관계를 맺으셨나. 엄청난 불공평한 관계였다. 열두 살에 육신의 아비를 잃고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라고 불러보았을 때 이후 그분은 이 내면적 문제아의 끝없는 보호자,끝없는 인내자,끝없는 사면자가 되셔야 했던 것이다. 관념이 아닌 실존적 부권을 다 맡아서 행사해야 하셨다. 참으로 불공평한 관계였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분을 기쁘시게 한 일보다 슬프고 노여워하고 근심스럽게 한 일들만 태산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쪽에서는 태산인데 그분 쪽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고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나도 두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실로 ‘보호자’와 ‘아버지’ 역할로서는 그분을 당할 수 없다. 그분은 서른일곱 푸르고 청청한 나이로 연탄가스에 중독돼 죽음의 문앞에 이르렀을 때도 실의와 낙담,위기와 절망 속에 누워있을 때도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셨다. 그뿐인가. 내가 걸어가는 예술의 비밀을 살짝 커튼을 열고 보여준 이도 그분이셨다. 얼마 전 멕시코만과 카리브해에 다녀왔다. 쿠바 아바나에서 바라데로까지 카리브의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달리며 나는 열두 색으로 빛나는 그 물결에 “오오,하나님”이라며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 그 많은 별들을 걸어놓은 솜씨,샤론 광야의 백합화를 만드신 솜씨가 거기에 조용히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건대 남은 날 동안에도 나는 그분께서 살짝살짝 커튼을 열어 내게 창조의 비밀을 보여주셨으면 한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어머니의 근심덩어리로 남아 있다. 세월이 가면 에일리언의 눈처럼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던 ‘죄’도 육탈되듯 떨어져나가고 말갛게 성숙한 모습이 될 거라는 내 헛된 기대는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 다만 위로가 되는 것은 내 연약한 비틀거림이 도달하는 지점에서 늘 그러했듯 크고 부드러운 손 하나가 나를 붙잡아줄 것이라는 점이다. ◇ 김병종 교수는… '바보예수'와 '생명의 노래' 연작 화가로 잘 알려진 김병종 교수는 1953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외에서 모두 21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광주비엔날레' '베이징비엔날레' 등에 참가했고 피악(FIAC) 바젤(BASEL) 시카고(Chicago) 등의 국제미술제에도 여러 차례 출품했다.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화첩기행' '묵상 바보예수' 등의 화문집을 쓰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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