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10. 13:35ㆍ신앙간증
낮아질 때 주신 성령님
특히 나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면에서 항상 옳다고 생각했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존중해 주었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나의 태도는 남들이 보기에 전혀 오만하지도, 건방지지도, 고집스럽게 보이지도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좀더 잘 포장된 자만심과 우월감과 이기심,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고집이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었고, 나는 그러한 자신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나의 직업 또한 간호사로서 남에게 봉사하는 직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자만심과 우월감, 이기심, 고집스러움 등은 더욱 잘 포장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신앙
그러나 운명같이 나타난 남편과 결혼을 하고 독일 유학을 시작되면서부터 나의 삶은 점점 이가 맞지 않는 두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삐걱거렸으며, 끊임없이 남편의 톱니바퀴가 잘못되었다는 원망을 하며 살게 되었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심리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매우 어려웠다. 그래도 그 시절 위로가 되었던 것은 한인 교회를 다니면서 교인들과 교제하며 예배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여름성경학교, 겨울성경학교, 크리스마스 때만 교회에 가는 아이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 못하는 남녀 학생들의 공공연한 교제 장소가 교회"라고 경멸하면서 발길을 끊었던 콧대높은 여학생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소위 지성인이 다니는 대학 교회에 적을 둔 지적이고 이성적인 신앙인을 자부하며 울며 불며 시끄럽게 예배 보는 다른 교인들을 비웃었고 내 신앙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고고한 것으로 구분 지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성경 공부를 했고 남편에게는 결혼 조건으로 기독교인이 될 것을 다짐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서 남편과 함께 한인 교회에 나가면서도 인간적인 위로에 만족했을 뿐 `천국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인이었다. 남편도 예배드리러 같이 교회에 가기는 했지만 마음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듯 했다. 내 신앙이 제대로 자리 매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신앙적으로도 남편을 의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의존은 남편을 힘들게 했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 문을 닫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나의 잘못된 점은 전혀 보지 못했고 마치 남편에게 사기라도 당한 듯한 느낌으로 우리의 결혼 시간들을 메워 나갔다
원망스런 삶
힘들었던 독일 유학 기간이 끝났지만, 내가 당연히 기대했던 탄탄대로의 삶은 보장되지 못했고, 나는 또 다시 절망하며 남편을 원망했다. 서울에서 자란 내가 순천이라는 조그만 곳에서 산다는 것도, 일개 지방 교수의 부인으로 사는 것도 모두 불만스럽기만 했다.
그때까지 나는 자신의 자만심과 이기심을 깨닫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의 장식품이었고, 남편과의 갈등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깊어 갔다.
나는 전적으로 내 능력에 의지하여 불만스런 나의 삶을 고쳐 보기로 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매주 순천과 서울을 왔다갔다 했고, 순천에서의 삶을 부정하며 살았다.
순천에서도 교회를 정해 놓고 주일 예배를 보기는 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대놓고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나 또한 교회 목사님의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과 말씀에 원인을 돌리면서 교회로의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 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생활은 점점 더 위기를 치달았다.
그 때 남편과 같은 대학에 교수로 있던 대학 선배가 프랑스 교환 교수로서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 왔다. 그분은 출국 전에는 일반 교회 권사였는데 귀국하신 후 만나보니 참예수교회 신자로 변해 있었다. 프랑스에 가시기 전에는 인품이나 신앙면에서도 존경했던 분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저런 분이 그것에서 무얼 찾으신 것일까? 그렇게 모범적인 신자였는데 무엇이 순식간에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낮아질 때 임한 은혜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그 선배 집에서 하는 성경공부와 예배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처음 방언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 `그만 다닐까?' 하는 생각도 했고 주위 사람들이 "그 교회는 이단" 이라고 만류했을 때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7-8세 밖에 먹지 않은 어린아이가 방언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저런 아이도 방언을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방언을 못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는 오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분명히 오기였다. 나같이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성령을 받지 않으면 누가 받겠느냐고 하는 오만함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어린아이들도 하나 둘 성령을 받아서 방언 기도를 하게 되는데 나는 성령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내 영혼은 정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악한 영혼인가?' 하는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했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발길을 매주 예배 장소로 이어졌다. 끊임없는 이단 시비와 교리에 대한 질문을 목자님들과 선배, 그리고 선배의 부인, 순천교회 신도들은 잘도 참아 주었고 자상하게 대답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의 마음은 `하나님이 그저 내 영혼을 선택한 해주셨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가득찼다. 성령을 받아 방언하는 어린아이들이 커 보였고 부러웠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낮아졌을 때 주님은 나를 선택해 주셨다.
성도들이 위해서 기도해 주는 가운데 나는 성령을 받았다. 솟아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주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내 영혼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통곡과 가슴 저미는 감사함으로 깨달아졌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이런 상상을 하면 소름이 끼쳐 온다.
그후 성경을 보면 구구절절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졌다. 내 머리와 내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했을 때는 졸음이 앞섰는데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니 눈과 마음이 환히 열리는 것이었다.
성령으로 인한 변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며(마6:50) 주님은 나를 안고 사탄의 푸른 죽음의 강을 건네 주셨다. 믿음 안에 있지 못한 육신의 형제들, 부모님,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고 하나님을 전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남편에게 먼저 전해 주고 싶었다.
하나님은 남편에 대한 나의 잘못된 사랑 -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과 우월감, 오만함 뒤에 숨어 있는 잘못된 의존성이었다 - 을 깨달아 회개하게 하셨고 진정 용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하게 하셨다.
남편은 지금 교회에 나오고 있다. 가족과 시간을 같이 보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같이 교회에서 예배 드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른다. 또 그가 성경에 대한 의문과 관심을 표현 해 올 때는 순간순간 놀라며 기쁨으로 감사할 뿐이다. 주님은 일단 남편을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참 교회로 인도하셨다. 남편의 맘을 열어 주시고 주 안에서 거듭나게 될 모든 것도 주님이 해주실 것이다. 다만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일은 내 몫이리라.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서 순간 순간의 깨달음을 통해 너무나 모자라고 추하고 악하고 천한 이 존재를 주님이 끊임없이 완전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귀한 모습으로 다듬어 주고 계심을 감사함과 죄송함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받아 들인다.
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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