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노숙자 신학생

2007. 5. 15. 11:34신앙간증

노숙자가 새신랑이 돼 돌아왔다.

초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 23일 서울 청량리역 광장. 마흔여섯살의 유용일씨가 까만 턱시도를 입고 나타났다. 뒤이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흔다섯살의 박훈례씨였다. 청량리 역 주변에서 노숙하던 ‘주민들’도 이날은 애써 단정한 모습의 하객이 되었다.

‘빠바밤∼’

광장 가득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지자 겨울 바람도 잠시 숨을 멈췄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숙자 중 한 명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소리쳤다.

“용일이 형,축하해. 잘살아!”

신랑 유씨도 활짝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었다.

유씨는 7년 전까지만 해도 이날의 하객들과 같은 노숙자였다. 20대 초반에 가출을 한 유씨는 20년 가까이 알코올 중독자로 살며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왔다. 그런 유씨가 지금은 서울 신설동 서울장신대를 다니는 신학생이 됐고,학교에서 만난 동급생 박씨와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나와 같이 노숙했던 친구들이 지금도 역 주변에 있는데….”

유씨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은 1998년 8월. 청량리 역에 나와 노숙자들에게 전도를 하던 김원일 목사를 만났다. 청량리역 광장에서 열리는 예배에 마지 못해 참석했다가 김 목사를 따라 재활치료를 받았다. 3개월 만에 20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이끌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새벽부터 밤까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 청량리 역에 나가면 옛 친구들이 “소주나 한잔 하자”고 했지만 오히려 “니들도 나와 같이 교회에 가자”며 이끌 정도로 흔들리지 않았다.

과거 유씨와 같이 노숙을 했다는 이병영(46)씨는 “용일이 형이 어느날 갑자기 교회에 가더니 사람이 변하더라. 얼마 안 가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음식을 갖다주면서 자기 얘기를 들려주더니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됐다”며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김 목사와 함께 청량리역 신생교회와 재활공동체인 경기도 양평 해돋는마을에서 봉사를 하던 유씨는,자신과 같은 노숙자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올해 초 신학대에 편입했다. 그곳에서 같은 또래의 박씨를 만났다. 신부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것 같다”며 “우리 부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주례를 맡은 김 목사는 “오늘 결혼하는 이 부부는 우리 신생교회의 자랑이자,역전 주민들의 기쁨”이라며 “가나의 혼인잔치 같은 기적이 가득한 혼인예식”이라고 말했다.

유씨의 어머니 이귀분씨는 신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아들이 돌아온 것만 해도 고마운데,결혼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는 어머니는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는 말만 거듭했다.

노숙자에서 신학생으로,또 새신랑으로 거듭난 유씨는 신부의 손을 꼭 잡으면서 “하나님,제가 새롭게 태어난 이 땅에서 새 출발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소리쳤다. 낙엽이 폭죽처럼 흩날리며 이들을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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