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 10:59ㆍ신앙간증
* " 환난 "은 주님의 음성을 들려 주시는 통로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외로운 길이요 고독한 삶의 연속이라고 하여도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이는 것들의 풍성한 삶을 산다면 주님과의 교통(交通)은 점점 멀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주님 자신이 어느 누구도 함께 하지 아니한 외로운 길인 †의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람들이라면 그 길은 꼭 걸어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
(고전 11:1)
"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엡 5:1-2)
저 역시 주님을 모셔 드린 후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그 길(†의 길)을 걷고 있음을 님들께 고백해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완전한 알곡으로서 영원한 천국을 가기 위한 훈련을
받으면서 한 발 한발을 주님과 함께 천성을 향하여 걷고 있답니다.
저는 신앙의 초창기에는 " 왜?!?!?! 나에게 이러한 일이 있을까? 무엇 때문에 ... "라며 며칠 씩 밤새워 울었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훈련받는 과정이 없었더라면 사랑의 주님을 지금처럼 제 안에
모실 수는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훈련이 없었다면 어둠에 속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줄 알고 썩을양식(糧食)들을 쌓기 위하여 저는 존재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대열에 섞여 그러한 삶이 옳다 여겨져서 제 성격상 남보다 더욱 열심을 다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시련의 고통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께 끊임없는 감사와 경배를 드리게 된답니다.
이렇듯 주님 안에서의 훈련은 환난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마 24:9에 기록되었듯이 환난의 대상은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오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 (마24:9)
그리고 그 이웃은 마귀의 옷을 입고 원수로 나타나게 되지요.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 주님 앞에 거룩한 예물로 화답해야 될까요?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롬 12:1,2)
저는 그럴 때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구합니다.
" 주님 이 일이 저에게 임한 까닭이 무엇인지 들려주소서 "
라고 여쭈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음성으로 들려주시지요.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마 5:44,45)의
말씀을 들려주시며
" 딸아 네가 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나를
모르는 불법을 행한 자로 나의 앞에 그 날 서게 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을 듣게 되는 저는 더 이상 원수의 역할을 맡은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게
되더군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를 단련하여 아름다운 신부로 단장시키시기 위해 즉 바로 왕, 사울 왕, 압살롬과 같은 악역을 맡았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역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저를 보석으로 아름답게 빚으시려는 섭리가 있으셨음도 알게 되지요.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기 보다 오히려 그 영혼을 위하여 더 기도하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한없이 부어주시므로 원수 같던 그 사람을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완전케 하신 계명(마 22:36-40)은 하나님을 목숨
바쳐 사랑한다면 너희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인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참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처해지는 상황마다 말씀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하나님 앞에 낮아져 기도로 여쭈어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면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자유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 8:31,32)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삶이겠지요.
곧 주님의 뜻(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라 하겠지요.
따라서 우리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내려놓기 힘든 자기 소유 (목숨, 물질,
가족관계, 명예욕 등)도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게 될 때는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되므로 전혀 내 소유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게 됨을 부족한 저는 체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그 분 안에 있을 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주님 한 분 밖에 보이지 않으며 그 외의 세상 모든 것들은 아주 작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세상의 염려로 말씀과 기도가 소홀해지면 (고후 7:10) 주님은 아주 작게 느껴지고 눈에 보이는 세상이 크게 와 닿습니다.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고후 7:10)
그러므로 주님은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내용들이 이해가 되지만 실제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 되는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큰 관건이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다는 것을 저는 체험했으며 지금도 체험하고 있으므로 말씀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멀리서 보기만 하고 생각만 한다면 그 사람이
알아듣고 다가와 '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한다 '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다가가서 '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 역시 그러한지 대답을 들려주세요 ' 라고 간청하고 대답을 듣기를 기다린다면 그 사람은 대답을 곧 들려주겠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 또한 이러한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해 보세요.
" 주님 사랑합니다 "
그리고 그 분께서 마음의 들을 귀에 들려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들려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들려지지 아니하면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그러한 시간을 자주 갖으십시오. 계속 끊이지 않고 구하신다면(렘 29:12,13, 잠 8:17) 그 중심을 보시고 언젠가는 꼭 들려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렘2912,13)
"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 (잠 8:17)
그러나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협착한 길을 통과시켜서 생명(구원)으로 이끄십니다.
결코 하나님의 †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우리 또한 주님 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눅 9:23,24)
한편 그 분의 나라 즉 천국은 헬라어 원 단어로는 '바실레이아'라고 하는데 주님의 왕국이라는 뜻이며 그의 의(義)는 '디카이 오쉬네'로서 정의(正義), 공의(公義)라는 뜻입니다.
'나라와 의'를 짧게 요약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 66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는 책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그 분을 알게 (기노스코, 야다 : 동침(同寢)하다)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왕국"은 천국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마 3:2, 4:17)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 (마 3:2)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 (마 4:17)
그리고 "의"는 우리 인간은 결코 의로울 수 없고 하나님만 의로우시므로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롬 3:10)
"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롬 3:10)
그러니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기도하여 생명이시며 구원이신 (요 14:6, 눅 2:30) 그 분을 만나는 것이고 그 분을 만난 사람은 그 분을 더 깊이 알기 위해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앞에 서는 날까지 그 분의 발자취를 기록된 말씀대로 †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며 그 분(말씀)응 좇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주님이 주시는 환난은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을 통과하므로 그의
나라와 의(義)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몸 된 성전 안에 거하게 하시기 위한 사랑의 표징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곧 우리 안에 나라(천국)와 의(예수 그리스도)이신 우리 주님을 안에 모시고 사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항상 그 나라와 그 의(義)를 구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
(롬 3:26-28)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묵상하는 갈 2:20의 말씀은 곧 주님의 발자취를 밟는 삶인 †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위한 정(情)과 욕(慾)을 못 박는 것으로서 항상 주님을
모셔 드리기 위하여 나를 죽이고 버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 비밀을 알게 된 사도 바울은 고전 15:31에서
" ...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길은 외로운 길이고 고독한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삶을 선택하여 사는 사람 안에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온전한 사랑(생수)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 안에 믿음(예수 그리스도)의 씨앗이 떨어지게 되므로 (눅17:6)
"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
오직 믿음의 주인이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 12:2)
그리고 위의 말씀이 응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공급해 주시는 사랑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므로 오직 그 분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이 사랑의 능력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랑을 공급받기 시작하면 오직 하늘 보좌를 바라보게 되고 그 분을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도우심으로 의(義)의 세마포로 신부 단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랑이신 그 분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 누가 강요해서 끌려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능력이 임하시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랑을 맛 본 사람은 세상의 썩을 양식 때문에 결코 그 분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우리 인간의 표현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큰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과 일치하는 삶으로 사는 자들에게 롬 8:35-39의 말씀이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
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롬 8:35-39)
우리는 이러한 삶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롬 13:14) 날마다 깨어서 근신하며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점검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되기를 피차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제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의 떡을 나눠드렸는데 조금도 의심하지 마시고 100%
믿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구하시고 인내하며 기다리십시오.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고요.
저도 21일 동안 간절히 구한 끝에 하나님과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때 저는 너무 기뻐서 밤새 잠도 못 자고 들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분은 저와 대화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루종일 그 분은 자상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르쳐 주듯이 성경적인 것은 거의 다 말씀해 주십니다.
오히려 제가 침묵할 때 그 분은 섭섭해하시는 것을 저는 자주 느낀답니다.
믿고 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주님과 풍성한 사랑에 취하여 그 분께 감사와 찬미로 화답(和答)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겠습니다.
이 귀한 교제를 허락하신 주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올려 드리며 님들께 하나님의 크신 빛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신앙간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죽었다가 3일 만에 깨어난 김상호 목사 간증(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설교 내용) (0) | 2008.07.03 |
|---|---|
| 흡연, 곧 죽음의 지름길~ (0) | 2008.07.02 |
| 감사의 흙탕물 (0) | 2008.06.30 |
| [스크랩] " 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 (0) | 2008.06.27 |
| [스크랩] 성도의 재산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0) | 200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