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수 구원파에서 빠져나온 한 형제님의 간증

2008. 9. 15. 19:03신앙간증

어린시절의 악몽

<구원파와 관련한 오상원님의 간증입니다>

저의 집안은 기독교랑은 거의 상관이 없는 집안이였습니다.
아주 가깝게 외사촌형님이 장로교회에 다니는게 전부였고,
어머님은 처녀시절 아주잠깐 교회를 나갔으나
나중에 무당에게 목을매는 미신에 빠지신 상태였고,
아버님은 종친회일에 앞장서시던 분으로
무신론자에 평소 기독교인들을 조상도 못알아보는 놈들이라며
무척이나 경멸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고등학교는 불교재단 학교였으며 제 위에 형님도 불교신자였습니다.
어릴때 잘보았던 책은 스님들의 불교철학을 담은 책들이였습니다.
막내인 저는 어릴적부터 무척 병을 자주 앓았습니다.
목에 큰 혹이 있어서 여러차례 치료를 해보려다 결국 수술도 받아야 했고,
당시 어른들 말씀이
너무 어린 나이에 병을 앓아서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울것 같아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국민학교시절 겨울만 되면 의례 감기로 고생을 했었는데,,하
루는 감기열로인해 잠을 자다가 이상한 체험을 했습니다. 소위 유체이탈이라고 하죠,,
눈을 떠보니 내 자신이 천장에 떠있는 듯한 착각(?)이 들고
이상한 환영들이 보이는 무서운 체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냥 감기로 인한 악몽이였을지도 모르지만,
영혼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다는 뼈저린 경험이였습니다.
몸이 너무 약해서인지, 제가 죽음이후에 대한 공포는 남달랐던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기독교인 친구,

중학교 고등학교시절,,비교적 어릴때에 비해서 상당히 건강해졌지만,
키는 아주 작은 편이라서 맨 앞자리에 앉는 학생이였습니다.
아마 키가 작아서인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세서
남앞에서 지는걸 무척이나 치욕스러워했던 아이였나 봅니다.
당시 고1때였습니다. 내 옆자리엔 아주 극성스런 기독교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개신교 카톨릭 구교로 나누어진것도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고
둘 사이의 차이점도 잘 모르던 시기였죠,
그런데 그 친구는 개신교 친구였었나 봅니다.
그 친구는 순복음 교회를 다니던 친구였습니다.뭔 말을 그렇게 수다스럽게 잘하는지...
재미난 애기도 참잘했고, 읽었던 책이야기, 보았던 영화이야기도 참 재치있게 말을 잘하던 친구였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말을 참 지지리도 못하는 숙맥이라서 내심 그 친구가 좋았습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던 저를 자주웃게 하는 쾌활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애기(아마 전도였나봅니다)만 나오면
그 친구랑 저는 아주 목소리를 높혀서 말다툼이 일어나곤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에, 불교승려들이 쓴 수기같은 책을 보며 느꼈
던 기독교에 대해 아주 안좋은 인상을 가졌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참 다양한 주제로 우리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진화론,환생,,사후경험자의 지옥 이야기, 휴거에 대한 믿기어려운 예언,,,666표
저는 그런 애기들이 뭔가 마음 깊은 내면으로 부터 공포심을 일으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비록 그친구의 애기에 애써 태연한 척 해 보았지만 맘속에서는,,
어두운 밤 하교길에 그 친구의 애기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가 조금만 고집이 세지만 않않다면 조금만 자존심을 굽힐줄 아는 아이였다면,
아마 저는 그 친구를 통해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와 이야기도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심판의 날 이야기에 정말 무서운 마음이 참기 어려울 지경이였습니다
어린시절의 그 공포가 되살아났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소위 "구원받는 방법"으로 얘기한 것은 대략 이랬습니다.

1)사람에게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지옥간다

2)그러므로 죄 지은 걸 하나도 빼먹지 말고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무척이나 낙심해버렸습니다.
그 방법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1)세상에 죄지은걸 하나도 빼먹지않고 회개할수 있는 사람이 잇을까요?

2)회개한다 해놓고 다시 죄를 짓는다면 다시 죄를 용서해달라고 해야할뿐더러
다시 죄를 지었으니 앞서 용서를 구하며 회개한 모든 행동들은 거짓 회개한 것 아닙니까?

3)그러면 다시 죄를 지을때마다 앞서 회개했던것이 다 무효이므로
다시 처음부터 회개해야 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한 점이 이 점입니다.
이 방식은 말 그대로 율법적인 구원론이며 불가능한 구원의 길입니다.
제가 알기로 한기총에서도 이단으로 공인한 박무수씨의 4단계회개처럼
(인용이 맞는건지 자신없음,,)
죄를 일일이 자백해서 단뿔에 기록된 죄를 지워야한다는 식의 율법적인 회개며
그러지 못하면 지옥 간다는 식의, 구원의 영원성의 진리에도 어긋난 이상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당시 그 친구가 제게 얘기한 방식이 바로이랬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되물었습니다.
"너는 그럼 지금 심판받는 다면 천국에 갈 자신이 있느냐?"

"..............."

이 질문에는 부끄러운 얼굴로 살짝 웃는 얼굴만 할 뿐이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네가 먼저 천국에 갈 자신이 생기면 그때나 나보고 예수믿으라고 전도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실망스러웠습니다.

최근 제가 알기로는 순복음 교회에선 이렇게 가르치는 교단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그 속에 있던 그 친구는 제게 그렇게 말해왔던 것입니다.

,,왜 그렇죠?

어떤 분의 말대로 배달사고에 비유할 수 있을듯 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어지는 과정에서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못하는 사고말입니다.

어느 단체든지 사람이 많아지면 통일되지 못한 사상으로
내부에서조차도 일치된 사상을 가지지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지도자가 A의 성서적인 가르침을 가졌어도
내부의 평신도들은 B라는 전혀 다른 불확신한 신앙관을 가질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은 사람이 많아 지면 많아 질수록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어느 단체든지(구원파분들도 결코 예외일수없습니다)말입니다.

물론 B의 생각을 가진 평신도가 나중에 공부를 하고 제대로 양육을 받게 되면
원래의 A라는 가르침으로 돌아오게 되어잇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내버려두게 될 경우 그 숫자는 더욱 점점 불어나게 될것입니다.

최소한,분명한것은 그 친구는 초신자가 알아야할 기본인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당시 아마츄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대형화한 기독교에 팽배 해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개신교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못하고 두려운 마음을 해결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파에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때
개신교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나게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도 훗날 순복음교회 친구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다니던 교회를 비롯한 비슷한 종류의
기독교 일반에 대해 상당한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경험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 제 마음엔 이런 마음도 듭니다.

"그래도 그 친구가 학교에서 들려주던 그 많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들이
훗날 예수님을 영접하게 만든 씨앗이 된 것은 사실이 아닌가"

'만약 내가 그 당시 태연한척하던 가장하던것을 포기하고
그친구에게 제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친구에게서 정확한 해답을 못찾았다 해도
그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서 마음을 열고 해결책을 찾았다면 답을 찾을수 있었을까?"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않지만,
어느 날인가,,저는 밤중에 제방 창문 밖에 떠있는 별들을 보고
이렇게 기도한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저 멀리에서 저를 보고 계십니까?
저는 그것에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오실 수 있습니까?"

누가 가르쳐 준 기도도 아니고 입으로 정확히 읊은 기도는 아니지만
그런 염원을 품고 처음으로 기도한 것을 기억합니다.

군대에서 휴가 온 형님,

저의 친 형님은 앞서 얘기 했듯이 불교신자였습니다.
그런데 휴가온 날 형님은, "이제 나는 크리스챤"이라고 제게 애기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형은 휴가온 뒤, 누나네 집에서 누나랑 애기하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형의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오자
난생 처음 듣는 기독교애기 때문인지 조금 무서워하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별 무서운 얘기도 아니였는데 말입니다.

누나에게 얘기하던 형은 이제 저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 대화는 길게 잡아도 몇 분이 안 걸렸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화가 제 평생을 바꿨습니다.

제가 아직 철이 없던 고등학교1학년 시기였지만,,
당시 형이 애기하던 방식은 거의 아마츄어에서 약간 나은 수준이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4영리 만큼이나 아주 간단한 방식의 애기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경을 펴고 지적해가면서
자기 이야기가 성경이 말하는 바임을
보여주면서 애기햇다는 점입니다.

"형,,내가 알기로는 죄 지은걸 다 회개해서 용서받아야 한다던데?"

"아니야 십자가에서 모든 죄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모두 용서 되었다"

그 내용 확인을 또 성경을 펴주면서 (역시 별다른 설명은 없었습니다) 보었습니다.

영원한 속죄.. 지금의 기쁜소식선교회에서 처럼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히브리서에 영원한 속죄라는 구절들을 확인해 본 것 뿐입니다.

.그리고,평생, 잊지못할 감격스런 로마서의 말씀들,,,,
로마서 3장에서 쭈욱 8장까지...형과 나는 그저 그 구절들을 읽기만 했습니다.

1)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2)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3) 아무 행위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형이 한 얘기는 바로 이런 내용이였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 구절은 지금도 제 가슴을 격하게 만듭니다.

솔직히 그 당시 형은 별다른 얘기도 없었고 그냥 나와 같이 성경을 펴고
"이런 구절이 있다 이해하니?"하면서 확인시키는 수준이였습니다.

형이 가지고 있던 성경은 군부대 배포용 기드온 신약성경이였습니다.
저는 그날 자청해서 맨 뒤에 주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하는 날짜를 기입했습니다.
실제로 그날 저는 누워서 방 천장을 보면서 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찾아와 주셨군요...."
저는 그날 저녁,, 예수님이 제 맘속에 오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은 그 날 휴가가 끝나서 다시 군대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그날 저녁,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날 학교에 가서
그 (기독교)친구들에게 말한것은 고작
"나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뿐이엿습니다.

저는 당시 제가 경험하고 믿게된 사연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지 남감할 지경이였습니다.
제 단짝 친구도 놀랬고,,그 친구와 같이 교회 다니던 친구들도 이상해 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펴주고 어젯밤 몇 분 동안이면 읽을 수 있는 로마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성경을 펴서 보여주기만 하는 제가 뭘 말할려는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의도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 친구들이야 제가 평상시 얼마나 고민했는지 내심을 알 수 없었을테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 친구들은 제가 보여 주려는 성경구절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왜? 내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예수 믿고 천국에 간다는 소리를 해대는 것인지
궁금해하기만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제 대답은 성경구절에 기인한 것이였기 때문에
저는 성경구절을 들이댈뿐이였습니다.
아마 제가 조금만이라도 말을 조리있게 할줄 아는 아이였다면,
조금만이라도 침착했더라도 그 친구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매우 허둥지둥 설명을 할 수 없음에
제자신과 이해를 못해주는 그 친구들에게 화가 날뿐이였습니다.

"너 데체 어느 교회 다니려고 그러냐?"

내가 형에게 다니리고 권유받은 교회는 당시 어느 극장옆에 자리잡은 곳이였습니다
당시 아직 찾아가보지도 못한 때였습니다.

제가 그곳을 애기하니깐, 그친구는 그곳은 이단교회라며 놀랬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왜 이단인지는 잘알지는 못한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말에 대한 반감때문에 더욱 찾아가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토요일, 일찍 하교한 뒤, 저는 그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교회예배당은 어린시절 크리스마스날 한 두번 놀러간 것 외엔 처음이였습니다.

좁은 예배당인것은 둘째로 치고,예배당 한가운데엔 시멘트 기둥이 천장을 지탱하고있어서
중간에 앉은 사람은 강대상을 볼수가 없는 희한한 구조였고
사람은 한명인가 보이는,,썰렁하다 못해 안타까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예배당에서 저를 맞이한 분은 그곳의 딱 한명뿐인 사역자였던 전도사님이였는데,
나중에 알게된바로는 목사로 임명받은 사람은 전국에 몇명안되었고
대부분 전도사로 칭하던 시기였습니다.

교회도 100개 이하에, 한 교회에 성도가 10명도 안되는곳이
부지기수였습니다. 1986년도 12월이였으니 말입니다.

쓰레빠에 츄리닝을 입고잇던 전도사님은 아주 털털한 모습으로 저를 맞아주시더니
한 조그만 제 개인 방보다 적은,,
(데체 그 조그만 예배당에 또 조그만 방들이 또 잇다는것이 신기했습니다)
곳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전도사님은 제가 군대서 휴가 나온 아무개 형제의 동생이란것은 애기 들었나봅니다.

그러나 제가 왜 찾아왔는지 오해를 한 듯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마치 순복음 교회 친구가 제게 애기하던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터 시작해서,,,지옥이 어떻고,,,,심판이 어떻고,,,
예전같으면 그애기를 들으면 내심무서운 맘이 들었을 텐데,,
그날은 하나도 무섭지않았습니다. 이미 저는 든든한(?) 거시기를 꽉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점점 애기를 듣다가 졸음이 와서 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한시간,,두시간,,,이제는 무릎이 아파서 잠도 안 오게 될 정도였을까

"학생은 죄가 있어? 없어?"

"네? 죄야 있죠"

나는 당시 죄가 있다는 말에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죄가 있다는말과 동일한것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죄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의 표정은 약간 뭔가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표정같았습니다.

'음,,아직 한참 멀었군,,' 하는 표정말입니다.

나중에 겨울 수양회를 갖다오고 여러차례 얘기를 듣고서야
그 당시 교회에서 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원받지못한 사람이다 하는 논리를 배우게 되어서 저도
죄가 없다고 대답할수있게 되었지만,,

제가 죄가 있다고 대답한것에 대해 바라보던 전도사님의 표정은
뭔가 아니다 싶은 풀리지않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오해받고 있다는 막막한 마음이였습니다.
마치 기독교인 친구들에게 오해받던 그 상황과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설명을 제대로 할수없는 표현력의 한계때문에 자초지종을 애기하지못하는 답답함은
막상 복음을 전한다는 곳으로 부터서도 똑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을 알아챌수잇으시지만,,
인간은 제대로 표현을 하지못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한을 받는 존재니깐,,당연한일입니다.=

제가 비록 전도사님에게 죄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죄 문에 지옥간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왜냐구요?
당연하죠,,,모든 죄가 용서되었기때문이죠,,
그렇게 성경이 말하고있는걸 저도 알기때문이죠.

또한 아무 행위 없어도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을 했기때문이죠,..
무엇보다 성경이 분명하게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의롭다하신이는 하나님이시니,,내가 스스로 죄없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는 상대방으로 부터 스스로 죄없다는 말을
꼭 확인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믿는자는 죄가 없다고 스스로 대답하는 사람이고
믿지못하는 자는 죄가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는 논리입니다.
그 당시엔 그럴듯해 보여서, 저도 나중엔 그렇게 생각하게된 논리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로마서 4장에 보면 두부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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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4절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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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류는 열심이 일을 많이 한자입니다.
스스로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의인이라고 하나님이 칭할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한부류는 아무일을 한것이 없어 내세울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것을 부정하지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의롭다고 칭하지 않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죄인이라는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합니다.

다만,사람이 할것은,,,스스로 의인이다 죄인이다 하는 주장이 아니라는 입니다.

그렇게 선언하는 하나님을 내면으로부터 믿는 것, 그것뿐입니다.
스스로 나는 의롭다함을 받았노라고 주장해야
하나님께 비로써 믿음이 옳다 인정받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을 보지않고 내면의 진실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후10장18절)

하지만, 저는 당시 우물 쭈물, 표현을 할 방법을 잘몰랐습니다.

제가 당시 죄가 잇습니다 라고 대답한 이유만으로
제 구원의 여부를 오해받고 판단당했던, 그 당시의 묘한 이질감은,,
훗날 제게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곳 교회는

"죄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속죄를 믿지 묫하니 자신있게 죄가 없습니다 라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에 꽉 사로잡혀있던곳이엿습니다.

구원파는 모든 사람들을 그런 오해의 여지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질문과 대답만으로
판단해버리는 풍조가 만연해 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런 상태입니다.

아뭏튼 제가 그곳 분들에게 저도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표현을 하게 된것은
겨울 수양회를 다녀오기도하고 여러차례 얘기를 듣고 또 그분들과 얘기하는데
꺼리낌이 없게 될 정도가 된 한 달 정도 뒤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너는 언제 구원을 받았느냐고 질문해오면
언제부터인가 죄가 없다고 대답하게 된 시기를 일부러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솔직히 주입식으로 그렇게 교육을 받으면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는 대답 일 뿐이라고.. 내심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설명을 당시 할수는 없었지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 날이
바로 제가 구원받은 날이였다고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저는 그러면서도 타 기독교인들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을 구원받지못한 사람이라며 깍아내리는 전도법에 익숙해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이후,저는 직장선교학교 훈련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직장을 다니는 형제자매나 또는 직장을 아직 잡지못한 형제자매들을 대상으로
선교학교와 같은 훈련을 받는 명목이였습니다.
제가 듣기로 당시 우리가 받았던 훈련은
사역자들이 받은 훈련과 비슷한 방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선교학교,,사역자들을 보면서 가끔 복음을 위해사는 그분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은 형제자매들이라면 누구나 가진 희망이였습니다.
존경의 대상이었고 절대적인 지도자였으니 말입니다.

그런 그들이 받았던 훈련과 똑같은 훈련이라는 말에
이미 직장을 다니던 형제 자매들도 그만 두고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훈련속에서 제대로 체계적인 성경에 대한 어떤 양육도 받지못했습니다
그저, 즉흥적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하는 일상적인 설교를 듣는것이 전부엿습니다.

물론, 거리전도,무전전도여행같은 일들을 해가는 훈련도 기억에 남았고,,
각종 봉사일, 수양회의 식당일, 새수양관을 위해 공사장에서 노가다 하는일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마치 실전용 무술을 가르치는 도장같았고,,세일즈맨 훈련원같이,
사람들과 부딪히는 실용적인 방법들을 배운다는 점은 상당히 좋은 점도 있어보엿습니다.
하지만,,,,성서의 진리에 대해 공부하는건 솔직히,,일반 교회생활과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일즈맨 훈련같은 것을 받은 사람들이 지역에 돌아가서 설교를 할때,,
과연,,무엇을 설교할까요?

사람들에게 "죄 있어요 없어요?" 질문을 던지고
상대로 하여금 "당신은 구원받지못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논리와 관련 성경구절은
빠삭하던 그들이지만
아주 일상적인 필요한 기초적인 양육,,제자를 만드는 기독교 진리에 대해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세탁기를 잘판매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세탁기를 잘고치는 사람일수는 없습니다.
세탁기를 잘 고치려면 세탁기에 대한 공부와 증상에 따른 처리법을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일즈맨은 그런걸 잘 몰라도 판매는 잘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세탁기를 잘 고치는 사람이라해도 세일즈맨 처럼 잘파는 사람일수는 없습니다.
세탁기를 잘 잘 판매하려면 세탁기에 대한 기술적인 공부보다는
소비자의 심리에 대한 공부만 하면 됩니다.

구원파 사역자라는 사람들이 세일즈맨에 해당 되느냐?
기술자에 해당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게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죄책감이라는 문제를 가진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잘 파고드는 하나의 기술은 있엇는지 모르지만.

일상에서 풀어나가야하고 필수로 배워야 할
성서적 진리앞에서는 정말이지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무지한 것은 사실이란 것입니다.

성서의 폭넓은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그들은
고집되게 한쪽의 논리로만 모든것을 판단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틀에 박힌 코스를 밟는 전도법,,사실 그것은 매우 실용적인 파괴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매우 의외적인 돌발 상황들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버리고
그럴때 그들은 매우 당황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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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있다고 대답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나를 보았습니다...
제가 직장 선교학교 훈련중 거리 전도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교회가 위치한 도시의 변두리를 무수하게 돌아다니던 중,
어느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익숙한대로,,집에 방문하여 접근을 하여 애기들을 하나둘 시작했습니다.
그분 할머니는,,지금의 제 어머니만큼이나 상당히 세월이 흔적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소위 기성교회에 늙으막에 다니게 된 한마디로 무지랭이 할머니로 보였고
제가 질문하는 대답에 한마디도 대꾸 못하는 그런 할머니였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어느나라 민족인지 바울이 누구인지 마태가 누구인지
성경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다 시피 하던분이였죠,,,

그런데 그분은 딱 한가지 만큼은 저의 질문에 확답하시는 거였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죽어서 천국갈 수 있나요?"
"암,,지금 죽어도 천국 가지 "
"할머니 할머니 아까 죄가 있다면서요?"
"그래도 나는 죽어도 천국가 "

저는 그 할머니가 몇번이나 같은 제 질문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는 분명히 천국간다"고 말하는게 짜증날 지경이였습니다.]

도데체 뭘 믿고 그렇게 확신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천천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왜 이런 확신을 가지는지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은 성경을 전혀모르지만 (예를들어 종말론이니 어느 비유풀이도 전혀모르지만)
자기는 하나님이 약속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도 언제부터인가 자기는 죽으면 천국갈 수 있을까 의심했었는데
목사님이 한마디 한 성경구절을 듣고 마음이 놓이더랍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믿는 자마다...믿는 자마다...

이말을 곰곰히 생각하던 할머니는 자기는 아무리 죄가 많고 거짓말도 자주했던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했으니 사람같이 거짓말할 리가 있겠나 싶어서 안심하게 되었다는것입니다.

그할머니는 성경이 몇권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구약에 어떤인물이 나오는지도 잘모릅니다.
비유풀이 해석할 줄도 전혀 모르구요...

그러나 저는 그 자리에서 그 할머니의 면전에다,,
할머니는 구원받지 못 할 것이라.. 지옥갈것이라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그 하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초라해보였지만
그 믿음의 대상은 너무나 위대하였습니다.

저는 그 소박하지만 확실한 할머니의 믿음에 감동을 받아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를 평소와 같은 전도법으로 감히 정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마디의 약속이지만 누가 감히 그 한마디를 우습게 여기겠습니까?
그 이름모를 할머니의 간증 아닌 간증은 오랜 동안 제마음 속에 파문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믿음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던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전에 쓴글을 그대로 옴겼습니다)

그리고,,저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예전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정말 단순한 성경의 구절만을 붙들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던 그 때를 떠올렸던 것입니다.

저도 할머니와 아무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도 로마서 성경의 진리를 처음 접했을 때,,,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얼마 되지 않았을때 전도사님이 죄가 있느냐 없느냐란 대답에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죄가 있다"고 대답한 것을 기억햇기때문입니다.

그 할머니도 저와 동일한,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받은 사람인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 ㅡ글쓴이 :오상원

 

제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하다고 생각할 때면,
저에게선 늘 약한 모습이 드러나고 추악하고 비굴한 모습이 드러났었습니다.

19살때 저는 박옥수 모임의 수양관 길 공사에서 공사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9월쯤의 가을을 지나 겨울철 추운12월이 되도록 낮에도 밤에도

눈 비 맞아가며 마을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야로 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저는 그들 집단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으로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추위,,그런 것을 잊을 정도로 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적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기쁨속에서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그런 직후 부터 어둠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갔습니다.

"하나님? 대체 왜 제자신이 이렇게 추악한 모습. 나약한 모습들만 점점 드러나는 것인지요?

제 인생이 왜 이렇습니까...?"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때쯤 저는 기억하기도 싫은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나는 의인이라고, 나는 완전하다고 내자신을 스스로 자랑할때,,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위할 때,  저는 점점 밑으로 추락해갔습니다.

 

# 그러면서도 저는 여전히 저를 완전한 그리스도인,

구원파의 박옥수가 가르쳐준 대로 나는 회개할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만 자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의 고통은 오히려 점점 커졌습니다.
내 자신은 완벽하다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는!
스스로의 방어벽이 커질수록 고통은 비례해져 더욱 더 커졌습니다

.


95년도쯤인가?,,몇년간의 스스로의 방어벽이 어느날 밤인가 무너지고 말더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것을 금기시하던

박옥수 구원파의 여름수양회에서 저는 그 금기를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날밤 저혼자 기도하며 했던 말들이 모두 정확히 기억나는건 아닙니다만.

 

"용서해주세요 하나님,,저는 죄인입니다",라는 내용은 기억이 납니다.

스스로 나를 의롭다! 스스로 나를 완전하다고 하던 때엔
늘 나에게서 죄악의 모습만이,,나의 추악하고 나약한 모습이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내 죄악을 고백하며

나자신을 변호하던 변명을 포기하자 그것이 역전되버렸습니다


제 마음을 괴롭히던 죄악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지고

제 마음은 잊어버린 구원의 기쁨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다시 회복되어 버렸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내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내 마음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나를 완전하다고 자위하던 때와 정반대의 역전이였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란 것은 제 자신의 강함을 의지하는것이 아닙니다.

제가 약할때 보다 강해지고 제가 강해질때 나는 점점쓰러져갑니다.
제가 죄악을 감출때 저는 더욱 죄에 사로잡혀가고
제가 죄악을 고백할때 저는 죄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제가 스스로 보호하며 변명할 때, 하나님은 저를 위로하지도, 변호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제가 스스로 방어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저를 위로하고 변호하셨습니다.

 


저는 최근 작년에서 금년으로 넘어오면서 남들은 송구영신이니 어쩌니

축제분위기일 때쯤 저는 거울을 보며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37살, 대체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뭘 했는지 생각하게 됬습니다.

 

한때는 10 여년 넘게 박옥수 모임에서 별별 일(노역)들을 다 했었고

또 박옥수 모임을 떠나 그 곳 출신들을 규합해 보려했지만

몸은 박옥수 모임을 떠났어도 여전히 박옥수식 교리에 헤어나지 못함을 비판하자

모두 떠나갔고,,, 박옥수파 교리에 대해 안타까움에 글을 올렸지만 소득도 없었습니다.

이리 저리 세월만 흘러보냈습니다.

이제 전 모아둔 재산도 없고 그렇다고 쓸만한 직장도 없는 공사판 잡부인생...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모든게 허망했습니다. 

 

대체 나같은 놈이 또 있을까?...

 

인터넷에서 몇편 글을 올리며 제 이름을 알게 되는 분들이 늘긴 했지만,

실제로 제 모습을 보면 많이들 실망할 것입니다.

그만큼 저는 제 현실 모습이 너무나 비참해보였습니다.

아마 출애굽기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폐쇄한 이유도 그런 마음이 한편에 작용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비가 왔습니다.

인력시장에 일을 구하러 나와봤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일이 원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제게 집수리 일 하나가 떨어져서 일반보다 싼 임금이지만 감지덕지 나갔습니다.
비를 철철 맞아가며 그 집안에 그릇들을 일일이 씻어서 비닐장막 안에 정리하고 보니

온몸이 음식 찌꺼기며 쥐똥 싼 거며 먼지투성이였습니다.
그 집식구들은 식탁 위에서 점심을 먹는데

저는 짱개하나 시켜서 거실 한편에서 초라하게 점심을 때웠습니다.
목이 메어오고 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서 비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

차라리 일반 공사판에서 먼지 마셔가며 점심 먹는 것이 맘이 더 편한 것 같았습니다.


7시쯤에 일을 마치고 일당6만원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보니 비에 흠뻑젖어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바깥에 비가 오고 제 눈에선 눈물이 주룩 주룩 나옵니다.
제 방안에서"나는 정말 한심한 놈입니다"라고 무릎끓을때,,,
한순간에 제 마음이 기쁨으로 역전되버렸습니다.
제 영혼속으로 성경말씀의

"너는 모든것을 가진 부요한자다"는 음성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빛가운데 곧,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는,,

하나님안에,,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 삶을 살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때 나같이 연약한 자를 구원해 준 은혜에 참 감사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새 그 마음은 지식만 남고 그은혜를 잊고 내가 잘나서 완전한 줄로 압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나는 완전한 자, 의인입니다."라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어느새 보면 그리스도는 쏙 빠지고
"나는 완전한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고있는 걸 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나는 완전한 자입니다."   와
"나는 완전한 자입니다."  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분명 삶가운데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동안은 완전한 자일 수 있습니다.

 내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완전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착각에 빠진 당나귀처럼 자기가 혼자 잘 나서 완전한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어느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요한1서1장은 만일의 가정하에서 두가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빛가운데 ,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속에서는,,, 범죄함이 분명 없습니다.

 

<네! 바로 이럴때만 비로소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이것을 계속적인 범죄함을 할 수 없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동안,
자기스스로 잘나고 완전한 줄로 착각한 그리스도인은 어느새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이 아니게 되고 그는 어둠속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도 있고

때로는  나 자신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삶속에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필요한 연약한 자요 추악한 자인 것을 시인하며

인정(=자백)하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지만
삶속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이 완전하다는 자만심에 빠져

자기의 불완전함을 시인하며 인정(=자백)하지 않게 될수록

그는 어느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속에 있게 될것입니다.

 

내가 약할때 곧 강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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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무리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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