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2010. 6. 11. 21:36좋은 글, 이야기

당신의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얼마 전 한국의 KBS 2TV에서 방영되었던 ‘추노(推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추노는 조선시대 때 주인집에서 따로 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외거노비를 찾아가 몸값을 받는 일이나 주인집 등에서 무단이탈을 하거나 도망친 노비를 수색하여 체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볼 기회가 없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 드라마를 홍보하는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마음 한 구석이 꽤 찡하게 다가 왔습니다. 이 사진에 등장하는 노비들의 이마에 새겨진 ‘노(奴)’라는 글자를 보며 그들은 평생을 그렇게 자신의 한을 얼굴에 새기고 살아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인 조선시대의 모든 노비들은 다 그렇게 얼굴이나 몸의 일부분에 노비라는 문자를 새겨 놓고 살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알아본 결과 모든 노비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친 노비들에게 준 표식이었고, 이것은 죄인들에게 내리는 중국 고대의 5가지 형벌 가운데 하나였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그러한 형벌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 도적질한 자 가운데 그 죄가 무거운 자에게 ‘도(盜)’자 등을 새기는 자자형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겨 주고 있습니다.

 

   5년 전엔가 드라마 ‘해신(海神)’을 본적이 있습니다. ‘해신’이라는 드라마는 지난 1200년 동안 장보고가 비열한 반역자로 기록된 편파적인 역사의식에 신선한 도전을 던져 주었었습니다. 이 드라마 중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장보고의 라이벌인 염장의 이마에 ‘도적’이라는 화인이 찍히게 되는 자자형의 형벌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이렇습니다. 염장은 장보고의 수륙협공에 패한 후 호위무사들에게 족쇄가 채워진 채로 장보고에게 끌려갑니다. 장보고는 염장에게 전에 자신에게 말했던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이젠 네가 겪을 차례”라고 말하며 “염장을 죽이는 대신 얼굴에 도적 문신을 새기는 자자형을 행한 뒤 평생 노예로 살게 만듦으로써 그를 향한 원한과 증오를 갚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염장의 이마에 도적이라고 새겨진 붉게 달아 오른 인두로 화인을 찍습니다.

 

   그 후로 염장은 도적이라고 새겨진 흉측한 이마를 천 조각으로 가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드라마는 자신에게 끔찍한 자자형을 내린 장보고를 죽이는 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물론 역사 속에서도 장보고는 염장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됩니다. 

 

   ‘자자형’하면 윌란느 액커먼이 쓴 ‘도둑과 성자’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옛날 가난한 집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형제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그만 이웃집의 양들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범행이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양을 귀하게 여기는 그 시절에 남의 양을 탐낸다는 것은 큰 죄에 속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은 두 형제들에게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마에 ‘ST’ 즉 Sheep Thief(양 도둑)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한 형제는 평생을 창피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마에 천 조각을 두른 채 다른 동네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형제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며 동네에 선을 베풀고 살아갔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주고 아파하는 사람을 찾아가 돌봐 주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며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 사람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노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선한 일에 앞장서서 동네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어느 날 그 동네에 한 길손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길손은 노인의 이마에 찍힌 ST라는 글자를 보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몇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린 동네 사람들은 ST 글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ST가 Saint(성자)의 약자인 것 같습니다.” 양 도둑(sheep Thief)이었던 사람이 성자(Saint)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자자형은 아니지만 온 몸에 상처의 흔적을 갖고 살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몸에 흉측한 상처를 지니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자신의 몸에 영광의 상처를 지니고 산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빌립보 감옥에 있을 때는 채찍 끝에 쇠를 달아 때리는 무시무시한 태장을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는 수 없이도 맞았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친 후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갖다 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문신을 해 넣고 다닌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은 예수의 십자가 군사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몸에 새겨 놓고 다닌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이란 이 사람처럼 바울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표시나 아니면 어떠한 기독교의 표식을 새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19장 28절에 하나님께서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란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 당한 여러 가지의 고난과 또 그 고난으로 인해 온 영광스러운 상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어떠한 흔적이 있습니까? 사탄에 의해 농락당한 수치의 상처의 흔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부활의 주님을 위해 받은 영광의 상처의 흔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사도 바울이 믿음의 후손들에게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자신 있게 외쳤던 것처럼 우리들도 믿음의 후손들에게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cafe.daum.net/cgsbong   


 호주에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 호주에서 자녀를 공부시키려는 부모님,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젊은이들은 호주에 오기 전 미리 연락이 되어지면 호주에서의 정보, 공항 픽업, 숙소, 일자리 등과 함께 호주에서의 신앙생활과 정착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일을 이루려 합니다. 또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상담을 통해 젊은이들의 신앙과 인생에 안내자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세계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주역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호주로 오시는 분들은 메일(jirah@hanmail.net)이나 전화(9706 3203 혹은 0414307660)로 미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함께 돕겠습니다.

 

 

 

    

찬양을 들으시려면 전체메일 상단 혹은 하단에 표시하기  를 누르세요

 글   쓴   이

김해찬목사

호주 시드니 하나교회 

hanachurchmoksa@hanmail.net

 흐 르 는 곡

더욱 깊이 사랑 

  

 지난호 보기

창골산☆칼럼 

글에 대한문의는 필자께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