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3. 11:27ㆍ좋은 글,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장로회신학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중 그 당시 너무나 데모를 많이 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해 나는 자원하다시피 해서 1980년 ‘민주화의 봄’의 바람이 불던 그 때 군대를 갔습니다. 나는 군 생활을 수원 주변 지역에서 했는데, 그 부대는 자세히 이곳에 기록하기 어려운 부대였습니다. 그 부대는 사병들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부대였습니다. 그곳은 논산훈련소에서 전반기 교육을 받은 훈련병들 중 소수의 군인들이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오는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사관들과 장교들도 교육을 받으러 오는 그러한 부대였습니다.
그 부대는 부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적은지라 부대 안에 교회가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있지 않으니 군목도 없고 군종 사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대에서 약 1km 떨어진 민간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선임하사가 보안을 문제 삼으며 그 마저도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선임하사에게 주일 날 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고 계속 건의를 했지만 불교도였던 그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사역을 시키며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도를 하며 생각하던 중 내가 부대 안에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임하사에게 건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임하사는 무조건 반대였습니다. 만약 부대 안에 교회를 세우면 군목이 와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부대의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정식으로 부대교회가 세워질 만큼의 부대의 규모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세워지면 불교도를 위한 절도 세워져야 하고 또 천주교인들을 위한 천주교회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며 생각하던 중 부대 안에 교회를 세우지 않고 주일날에 종교 행사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종교 사병들을 모아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는 내가 비록 이등병이지만 전문적인 종교 수학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인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주일 날 만큼은 종교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정식으로 부대장에게 건의를 했습니다.
드디어 부대장에게서 허락은 떨어지고 모든 종교인 들이 주일 10시에 모였습니다. 그곳에는 불교인도 있었고 천주교인도 있었고 물론 기독교인도 있었습니다. 교육 사병까지 50명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 자리에는 전문적으로 종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 예배를 이끌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기독교식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불교도인 고참이 반대를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불교식으로 집회를 인도할 수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으로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모든 종교인들이 보여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주일 예배가 내가 제대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불교도들이었던 사병들이 다 기독교인들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군 생활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러한 군 생활 중 아주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정말 내가 왜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겨우 군대 생활 4개월에,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을 때, 그리고 부대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하루는 선임하사가 급히 나를 찾아서 가 보았습니다. 선임하사는 나에게 지금 교육 사병 중 한 명이 온 몸이 마비가 되어 꼼짝없이 누워 있는데, 그 아픈 교육 사병이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나를 지목하면서 내가 기도를 해주면 일어날 것 같다고 나를 불러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도 다니지 않는 선임하사가, 예배드리는 것을 그토록 반대했던 선임하사가 나보고 가서 기도를 해 주라고 했습니다.
정말 교육 내무반에 가보니 그 교육생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김 이병님, 김 이병님이 기도해 주면 날 것 같습니다. 기도를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며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겨우 신학대학을 2학년 다니다 군대에 온 나에게, 그것도 겨우 작대기 하나를 달고 있는 이등병인 나에게 그런 엄청난 기도를 부탁하다니. ‘아! 이거 내가 뭘 할 줄 안다고 나보고 기도를 해달라고 하나.’ 라는 생각을 하니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나는 화장실 좀 갔다 온다고 말하고 뒷산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 사병이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된 다음에야 나는 내무반으로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가 구걸을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나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앉은뱅이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한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적을 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치유함을 받은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아파서 누워있던 교육 사병이 나에게 부탁한 것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를 부탁한 것이지 내 보잘 것 없는 이름으로 기도를 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능력을 원했던 것이지 나의 능력을 요구한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큰 착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한다고 생각했고 내 능력으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분명히 그 때 내가 기도했으면 그 교육 사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그 교육 사병의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해보면 나의 부끄러운 믿음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이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내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믿음으로 외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모든 일들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6)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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