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 10:54ㆍ좋은 글, 이야기
순종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
과거 전쟁사에 의하면 제일 힘든 공격이 바로 성을 공략하는 것이다. 적군이 올라가기 힘들게 높게 쌓아 올리고 어떤 무기로도 성벽을 무너뜨릴 수 없게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버리면 아주 힘든 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각종 무기를 동원하거나 성벽의 높이로 만든 전망대를 만들어 공격하기도 했다.
여호수아 6장의 사건은 어느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박진감이 넘치고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무기를 동원해서 성을 공략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엿새 동안 매일 성 주위를 언약궤를 앞세우고 제사장 일곱 명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행진하며 마지막 칠 일에는 일곱 번을 행진한 후 나팔을 길게 울리게 부는 신호에 따라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쳐 부르게 되면 성벽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맨 처음으로 그들 앞에 가로막힌 장애물은 여리고의 금성철벽 성이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언약의 땅에 있어 최초의 시험이었다.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아무런 시험이 없고 환란이 없는 줄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전혀 없게 한다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
아무리 난공불락이고 금성철벽일지라도 하나님께 향한 신앙과 복종에 의해 성벽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순식간에 무너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미 여리고성에 있던 백성들과 적군들 사이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 들어온다는 소문으로 인해 공포로 휩싸여 있는 반면 견고한 성벽으로 인해 아무리 공격을 해와도 끄떡없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리고성의 공격은 사람들이 지혜나 방법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방법으로 공격한 것이다.(2)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라면 현실로 승리를 획득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느냐? 아니냐? 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전쟁에 있어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전쟁을 임하고 있다. 그래서 군대에 작전전략에 의한 지침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말씀을 토대로 영적 전쟁을 하게 된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략은 매일 한 번씩 여섯 동안 언약궤를 앞세우고 양각나팔을 잡은 제사장이 선두에 서서 여리고 성 주위를 맴돌고 마지막 칠 일에는 마치 달리기를 하듯이 전 속력으로 성 주위를 돌고 난 뒤 일곱 명 제사장이 나팔을 일제히 동시에 불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목소리를 외치면 성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으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략방법으로 세상에서는 해괴한 방법을 따르는 것이었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복종으로 여리고성을 함락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승리는 하나님의 위한 것으로 사람 편에서는 신앙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라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순종과 복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권위임을 입증하는 장면이 여호수아 7장의 내용이다.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권위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순종을 하거나 복종하는 것에서 그에 대한 권위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이나 사람들 앞에서 순종과 복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여리고성의 함락을 위한 행렬 중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항상 앞서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임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8, 11, 12, 13절에 거듭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언약궤는 그들의 행진에 따른 권위를 상징했으며, 온전한 하나님의 역사에 위력을 발휘하게 된 원동력이라고 본다.
나팔은 적과 싸울 때에 하나님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분 것으로(민 10:9) 기도의 신앙의 발표로서 희년의 자유선포를 위해서도 불었던 흔적이 성경 여러 군데 남아 있다.(레 25:8~10) 또한 복음전파의 예표로 보여 지는 것으로 여리고성은 하나님께서 무너뜨리는 것을 알리는 경각심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7”이란 숫자는 우리 모두가 다 알듯이 완전수를 의미하고 있다. 7일 또는 최후의 날에 일곱 번을 성 주위를 돌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복종을 의미한다.내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전진하고 최후까지도 신앙과 순종의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은 것은 복음의 승리를 선포(전파)하는 곳에 승리가 주어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과 신앙에 의해 홍해를 건넜고, 순종과 신앙에 의해 요단을 건넜으며, 이제 또 순종과 신앙에 의해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다. (히 11:30) 실로 순종과 신앙은 산을 옮길만한 힘(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순종과 신앙의 결과는 라합의 구원을 가져왔으며 완벽한 승리를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복종을 위해 엄숙하게 진행시킨 전쟁으로 철옹성과 같은 성이 일순간에 무너짐에 따라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에게 승리의 생애를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축복인가? 그래서 라합이 마태복음 1장에 여자의 이름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라합은 이방인이었고, 더욱 더 죄 많은 기생, 어쩌면 기생보다 더한 이방여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이방 신과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해 수많은 남자들과 함께 성관계를 가졌다고 가상해보면, 도저히 사람 편에 끼어들 수 없는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복종과 신앙(히 11:31)으로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까지 구원해 냈다.(행 16:31)
오늘날 신앙생활을 유도하는 많은 목회자들 중에 성공주의를 외치고 있는데 성공보다 승리하는 것이 최고 관건으로 승리보다 패배하더라도 성공하면 되는 줄 착각하고 있다. 예수 잘 믿고 이 땅에 잘 살다가 가는 것이 성공으로 인식시키고 있으니 너무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정신 차려야 한다.
승리의 생애를 보내지 못하는 일은 세상에 대한 영적 손실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도 남을 짓밟고 올라서면 되는 성공주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공이 아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복종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는 성공은 전혀 다른 성공이다. 오늘날 이러한 영적 승리는 없으면서 성공했다고 하는 자랑만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적에게 승리하는 것도 순종과 신앙, 자기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순종과 신앙, 적의 성벽을 깨는 것도 순종과 신앙, 자기 가족을 구원하는 것도 순종과 신앙에 달려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가 나타나야만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다. 가족 구원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목회자의 권위도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복종하고 있는지에 따라 권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 생각과 판단, 내가 경험한 지식과 이성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올바르게 판단하여 순종하는 것을 찾아 온전한 복종을 하게 된다면 진정한 권위가 나올 것이다.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을 함에 따라 큰 사명을 받았고 이방의 천한 여인도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순종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일이 내 앞에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앞에 엄청난 일이 생긴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한 복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부여하신 것이다.
한국의 목회자들과 직분자들이여 사람들 앞에 권위를 세우지 말라. 그 권위는 자랑하고 주신 것도 아니며 사람들 앞에 거들먹거리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해 더욱 더 겸손하게 온전한 복종을 또 다시 감행해야 하는 기회를 얻는 것뿐이다.
권위 있는 신앙생활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명예가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남이 알아주는 직분을 얻는 것도 아니며, 남에게 나타내기 위한 표시도 아님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복종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위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서를 읽다가 보면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복종이 권위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해 복종하지 않는 결과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진정 권위 있는 신앙생활을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 철저한 복종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권위로 사람들을 기죽이려고 하지 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신앙이 탁월해서 아니라 도저히 복종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복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쉽게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과 복종은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복종을 하는 장면은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위를 올바로 세워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이런 각오가 세워진다면 신앙 전반이 권위 있는 신앙생활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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