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의 재해석 ; 간음하지 말라

2011. 12. 2. 15:34좋은 글, 이야기

십계명의 재해석 ; 간음하지 말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께로 끌고 왔습니다. 여자를 가운데 세우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의기양양하게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는데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들은 십계명 6계명인 간음하지 말라 내용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여자를 그냥 용서하라고 말하면 레위기 20장에 나오는 율법에 위배되므로 예수님을 고소할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를 율법에 나온 대로 돌로 죽이라고 말하면 예수님께서 평상시에 말씀을 전하시면서 용서를 강조한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어기는 위선적인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죄를 범하면 번이나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까 일곱 용서를 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무한적인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평소의 이러한 가르침과는 반대로 심판을 명하신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것이고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예수님을 떠날 것이라는 계산 하에 이들은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로 끌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돌로 치라고 하면 예수님은 모세의 법은 따랐지만 당시 로마 지배하에 로마 법을 따르고 있는 실정법에는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로마 법을 어긴  책임을 져야 것입니다. 이것을 이들은 이중으로 이용하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흥분해 있는 사람들 앞에서 몸을 굽혀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흥분해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재차 답변을 요구했고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너희 중??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흥분해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떠나 가버렸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글자에 많은 호기심을 갖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쓰신 글자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하게 상상의 날개만 펼칠 뿐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풍습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손가락이나 막대기를 이용하여 바닥에 쓰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베두인족은 양이나 염소를 거래할 바닥에 쓰면서 거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모습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생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땅에 무엇을 쓰셨을까? 먼저 예수님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기에 앞서 너희 중에 증인이 누구냐라는 것을 땅바닥에 썼을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 17 7절의 말씀에 이런 자를 죽일 때에는 증인이 그에게 손을 후에 백성이 손을 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증인이 먼저 돌로 쳐야 하는데 자리에는 증인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봅니다. 다시 말해 여자는 증인에 의해 현장에서 끌려 것이 아니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 의해 예수님을 고소할 목적으로 끌려 것입니다. 또한 증인이 필요한 것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왔다면 분명 여자와 남자가 함께 끌려 와야 합니다. 그런데 자리에 남자는 있지 아니합니다. 간음이란 부부가 아닌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성립되는 것입니다. 간음죄란 남자와 여자 똑같이 적용되는 법입니다. 남자 없이 여자 혼자 간음죄를 저지를 없고 여자 없이 남자 혼자 간음죄를 저지를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 ‘남자는 어디 가고 여자만 끌고 왔느냐 땅바닥에 쓰셨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신 하나를 상상하면서 일곱 번째 계명을 재해석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하였다 땅바닥에 쓰셨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에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신 것입니다. “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5:27-28)

 

     간음하지 말라이것은 결혼의 순결함을 지켜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과 가족에 주신 축복을 온전히 보존하고 나아가 사회와 인류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주신 계명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나아가 모든 순수하지 못한 사고와 욕망까지도 금하심으로 새롭게 계명을 재해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하였다고 단정하는데 이는 행위 못지 않게 행위의 바탕이 되는 마음 자체를 문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 모두를 계명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동성애 또한 성에 관한 사람들의 잘못된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나아가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드는 성전환과 같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사악한 가를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교회마저도 묵인하고, 아니 오히려 그것에 동정하고 인정하는 잘못된 자세에 대해 우리는 뼈저리게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눈만 뜨면 우리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많은 잘못된 문화가 오늘의 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버젓이 방송을 통해 우리의 자녀들에게 잘못된 의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여자가 같은 남자가 대세로 인정받고 사람들은 그것을 추구합니다. 여자고 남자고 없이 여자답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칼을 들이댑니다. 그리고 타인의 인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성폭행과 성추행은 오늘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간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오늘 다시 한번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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