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남김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

2012. 2. 20. 11:43좋은 글, 이야기

하나도 남김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그냥 교회만 다녀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값싼 은혜로 치부해버리고 헌신짝 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주 고귀하게 여긴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하나님의 은혜를 값비싼 은혜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분들이 허다하다. 이번에 세미나를 주최하면서 독일과 중국에서 올 만큼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참석하셨다. 등록은 139명이었지만 출석이 100명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였다.

 

    성경 속에 있는 비밀을 조금 언급하며 강의했더니 계속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부탁하는 분들이 있었다. 목사님들이라면 성경연구를 하며 심지어 평신도들까지 성경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려고 하는 분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나름대로 성경을 읽고 깊은 깨달음 속에 들어갔지만 원형과 본질을 찾는 성경의 시각을 새롭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남쪽 지방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대전이나 천안 정도의 위치에서 강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교회와 목회자를 만나야만 가능할 것이다. 교통편과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는 좋은 장소를 제공하실 목회자님이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여호수아서를 많은 분들이 읽었지만 좁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문자의 틀 속에 갇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내용을 깨닫는 안목이 없다면 접근하기 힘들 것이다. 10장까지는 가나안 남쪽 지방을 공략하며 승리한 내용들이다. 11장부터는 가나안 북쪽 지방을 공략하며 승리하는 기록을 담고 있다.

 

     10장 벧호론(10:10)의 승리는 여호수아를 남부지역의 왕으로 삼은 것 같이 에롬(11:7)에 있어서의 승리는 북부지역의 왕이 되는 내용이다. 마치 몇 년 전, 극장가에 많은 인파들이 보게 했던 ‘반지의 제왕’처럼 전쟁하는 장면들을 연상케 할 만큼 하솔의 연합군은 엄청나게 많아 마치 군대의 모습이 운하처럼 보였다.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4)고 한다면 그 시대의 장면을 상상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엄청난 군대들과 싸움을 치러야만 한다. 그러나 나 혼자 해야 되는 전쟁이 결코 아니다. 대장 되신 예수님과 함께 싸워야 되는 전쟁이며 반드시 승리해야 되는 전쟁이다.

 

    시 33:16~17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 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과 함께 하시는 보이지 않는 군대는 적의 군대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왕하 6:14~17에 보면 아람군대들이 이스라엘 쳐들어왔지만 너무나 철통같은 방비로 인해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 군대 속에 내통하는 자가 있는 줄 알고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엄청난 숫자의 군대를 동원하였다. 엘리사의 사환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기절초풍을 하며 엘리사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한 뒤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하건 데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17) 하니 사환의 눈에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의 주변에 둘러 진 치게 하는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적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 말과 불 병거가 산 주위에 가득하여 포진되어 있었으며 적군 한 가운데를 들어가기 위하여 그들의 눈을 잠시 멀게 하였다. 그들을 완전히 몰살시킬 수 있었지만 오히려 먹을 것을 주어 충분히 먹게 한 후 다시 되돌려 보냈다. 이로 인해 아람군대는 다시 이스라엘 땅을 넘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격려하시고 전적으로 도우셨기 때문에 운하와 같은 대군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몽땅 쳐 죽였다. 10장에서도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구조할 때 적군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킨 것처럼(28, 30, 32, 33, 35, 37, 39, 40)11장에서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적군들을 멸절시켰다. (8, 11, 12, 14, 17, 22)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여호와의 종 모세에게 명한 것과 같이 여호수아는 그대로 실천했다는 것이다.(12, 15, 23, 신 7:2, 20:16~17 참조) 그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남겨 둔, 명령같이 행하고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당부했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실천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 같이 없었더라(15)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했다는 것이다.(23) 우리들 편에서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하나도”남김없이 온전히 행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하나도” 남김없이 약속하신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이다. (21:45) 은혜를 받기만 사모만 했지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만 한다.

 

     세미나를 마친 후 몇몇 목회자님들이 성경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염원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서울 목양교회에서 지난 목요일 시작했다. 20여명이 참석해서 세미나의 열기를 그대로 이어갔다. 단순히 성경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친 토의를 가질 예정이며 강단을 새롭게 하며 성도들에게 살찔 수 있는 꼴을 먹이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원형과 본질을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성경번역에 올바른 기초를 쌓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생명의 뿌리와 믿음의 근원을 바르게 하는 작업을 실천할 것이다. 또한 말씀의 실천으로 위해 결집력을 갖추어 종교가 아닌 진정한 기독교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그 분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올바르게 말씀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말씀을 못 깨달아서 실천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실천하려고 하니까 실천이 안 될 때가 더 많은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물러 계시는 그 분이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우리들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내 안에서 살아계시는 것이다’ (갈 2:20)는 말씀을 너무나 잘 알면서 내 방식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역역한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지.......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지 않으면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이 내용인데 이것을 배제하고 말씀을 접하며 실천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 나가 적군과 싸워서 엄청나게 얻어터져 몰골이 형편없는데 예배당에 예배드리는데 다친데 하나도 없는 척, 부상당하지 않는 척, 패잔병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분장, 위장하며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온전한 승리를 하고자 한다면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패배하지 않고 부상당하지 않으려면 대장되신 예수님과 함께 전쟁에 임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고 나 혼자 적진에 나가서 싸우려고 할 때 정신없이 얻어터지는 것이다.

 

    하나도 남김 없는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 혼자 지키고 실천할 수 없다는 고백아래 내 안에 살아계신 그 분과 함께 실행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도 남김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을 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을 목도만 해도 되는 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