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2. 12:13ㆍ좋은 글, 이야기
짝퉁 농부
몇 년 전에 중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학년말 방학 기간에 중국에 직원 여행을 갔다. 가면서부터 중국에 가면 짝퉁제품이 없는 것 없이 다 있다고 이번에 가서 많이 사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중국 여행은 갈 때마다 짝퉁 물건 구입에 대한 일이 여러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도 너무 많은데 늘 무엇인가 더 필요하다고 여기며 사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나 비슷하게 외국 여행 중 쇼핑이 중요한 관심사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에 뉴스를 보니 노인들이 중국에 여행을 가서 사온 것들이 주로 약들인데 어떤 이는 무려 28가지나 되는 약을 사왔다고 한다. 그런데 입국할 때 그 약들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이 가짜약이고 심지어는 몸에 해로운 마약성분이나 납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약들이라는 발표를 들었다.
어느 해에 군산에서 배 타고 중국의 청도에 도착하여 그 주변 몇 군데를 관광하는 여행을 할 때에 청도에서 유명한 짝퉁시장이 있다고 하여 없는 시간을 쪼개어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같은 유형의 시장인데 어마어마하게 넓은 시장이었다.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모두가 짝퉁 물건들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유명한 스위스제(이름만) 손목시계를 구입하였다. 모양은 꼭 같은 거라면서 매우 만족해했는데 그날 배를 타고 오면서 안에 있는 부속이 하나 빠져 굴러다니는 소리가 나더니 쓸모없는 시계가 되고 말았다. 하도 싸게 산 물건인지라 하루도 못간 그 시계에 미련도 없는지 그는 별로 서운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물건만 짝퉁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도 짝퉁이 있고 믿음도 짝퉁이 있고 사랑도 짝퉁이 있고 목사도 짝퉁이 있다. 오래 전에 어느 여 가수가 '짜가'라는 가사가 많이 들어있는 노래를 부른 때가 있었다. 그 때에는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온통 주변에 '짜가' 투성이었는데 어느새 요즘에는 짜가라는 말 대신 짝퉁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도 짝퉁 농부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하고 싶다.
남편은 목사이므로 농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어찌어찌하여 땅을 사게 되었다. 7~8년 전에 우리 교회 주변에 800평 쯤 되는 천수답을 가진 이웃집 아저씨가 찾아와서 그 논을 돼지 축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에게 팔려고 하는데 동의를 해달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환경오염이 심한 축사나 공장 등을 지으려면 주변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논은 물이 닿지 않아 농사짓기가 매우 힘들어서 팔려고 내놓았더니 돼지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이 살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 논은 잘 팔리지 않는 논이었으므로 사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팔지 않으면 팔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교회 주변에 축사가 지어지면 냄새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므로 우리가 그 논을 사기로 하였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옛날과 달리 논밭 농사만 지으며 살 수는 없는 시대가 되어 젊은 사람들은 소, 돼지, 닭 등을 키워 교육비, 문화생활비, 노후대책비 등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 아름답고 깨끗한 시골이란 옛말이 되었다. 시골 교회 주변에도 축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지어져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가 그리 흔하지 않다. 시찰 목사님들이 모이면 저마다 교회 주변의 축사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괴롭다고들 말씀하신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 특히 목회자는 이웃과 심하게 따질 수도 없다. 전도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게 될까봐 그저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한 일로 한 번 사단이 나게 되면 오랫동안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전도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시골목회의 사역 현장이다. 그리하여 이왕 지어진 것들은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이제부터라도 교회 주변을 깨끗한 환경으로 유지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남편은 교회 주변의 깨끗한 환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이웃집 아저씨가 논매매 문제로 찾아왔을 때 대뜸 우리가 사겠노라고 했다. 마침 그리 큰돈도 아니어서 돈을 마련하여 그 논을 샀다. 처음 3년은 땅에 안식년을 주고자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 다음 해부터는 남들 하는 대로 벼를 심었다. 농사 경비가 보통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한정 없이 농사 경비가 들어갔다. 그제서야 왜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없는지를 실감했다.
사실 농사 경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것이 바로 농사였다. 농사란 먹을거리가 흔하다는 것만 빼고는 아무것도 이득이 없었다. 논 갈기, 논 고르기, 모내기, 벼 베기, 벼 말리기, 벼 찧기 등의 농기계 삯에다가 씨앗 값, 농약 값, 비료 값 등을 합하면 그해 거두어들인 벼의 값과 맞먹는다. 그러면 일 년 동안 고생한 값은? 제로다.
그나마 요근래에는 농사가 남는 게 없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법을 만들어서 농부에게 직접 주는 쥐꼬리만한 금액이나마 직불금제도가 있어 다행이다. 농부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마저도 타 먹어버리는 파렴치한 도시에 사는 땅주인이 많아 어느 해인가는 그걸 실사한답시고 어찌나 들들 볶아대는지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들까지도 혼이 난 적이 있다.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와서 직접 조사를 해야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서류만으로 처리하므로 발생한 불상사였다.
3년 동안 800평의 벼농사를 지었는데, 첫해에는 40kg들이 벼가 24개 나왔다. 다음 해에는 36개, 그 다음 해에는 48개가 나왔다. 차츰 진짜 농부가 되어간다고 좋아하였다. 한 개 당 45,000원 정도 된다. 그나마 관개가 되어 있지 않은 천수답이라 물관리가 엄청 힘들었다. 그래서 3년 벼농사를 지어본 후에 수지가 맞지 않아 2011년 봄에 그 논을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밭으로 개간했다.
처음에는 밭에다가 무얼 심을까 궁리에 궁리를 하다가 메주콩을 심자 하고 교우들에게 때를 물어보니 콩 심는 날자가 하루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여 급히 콩 씨앗을 사서 대충 뿌렸다. 밭에 뿌린 콩을 쪼아 먹으려고 온갖 새들이 다 날아왔다. 까치, 까마귀, 비둘기, 꿩,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의 풍성한 잔치가 벌어졌다.
며칠이 지나자 그들이 먹고 난 나머지 콩의 싹이 듬성듬성 보였다. 이제는 뭘 심을까 고심하다가 또 교우들에게 물었더니 어떤 이가 지금 팥을 심으면 아주 늦은 건 아니란다. 또 급히 팥 씨앗을 사다가 콩 안 난 곳에 뿌렸다. 그래도 여전히 빈 땅은 많았다. 이번에는 수수 씨앗을 사다가 뿌렸다. 그 다음에는 옥수수 모종을 심었다. 그리하여 곡식 박물관이 되었다.
"성경을 보면 밭에 씨앗을 섞어 뿌리지 말라고 했는데 괜찮을까?" 라는 의구심을 품으며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면 운동 겸 풀을 뽑으러 갔다.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이름 모를 온갖 풀들은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잘도 나서 잘도 자랐다. "왜 아담은 죄를 지어가지고 땅에 가라지가 된통 나게 한겨?" 라고 투덜거리며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뽑는 남편이 안쓰럽지만 성경에서 아담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야 한다고 했다고 우겨대면서 나는 바닥에 앉아 시간만 빨리 가라고 재촉하였다.
가을이 되어 추수를 하게 되었는데 800평의 밭에서 메주콩이 80kg, 팥이 30kg, 수수는 채 익지는 않았으나 내년의 씨로는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수알갱이 2kg 정도를 수확했다. 옥수수는 너무 때가 늦어 한 자루도 따먹지 못했다. 진짜 농부가 아닌 짝퉁 농부가 콩 농사를 좀 지으니 그나마 콩 값은 추락하여 가을에는 1kg당 6,000원 한다고 하더니 점점 더 값이 하락하더니 결국은 4,200원으로 떨어졌다.
작년에 우리가 씨앗을 살 때만 해도 1kg당 8,000원을 주고 샀다. 그때만 해도 800평에서 못 나와도 200kg은 나올 거야 하면서 계산해보니 천문학적인(?) 돈이 될 것 같아 마음이 부풀었었는데, 판매시기를 놓쳐 2012년 1월에야 시간이 좀 나서 팔려고 여기 저기 전화를 했더니 올해에는 메주콩의 출하량이 너무 많아서 사지 않는다고 한다. 간신히 부안에서 한군데 찾아서 가보니 1kg당 4,000원 밖에 줄 수 없다고 하여 1년 농사로 겨우 32만원을 벌었다.
씨앗 값, 비료 값 빼고 났더니 인건비는 고사하고 열불이 났다. 농부들의 불평과 한숨이 이해되었다. 그러니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고향에서 부모들이 그런 농사를 짓고 있으면 명절 때나 한 번씩 와서 이리 저리 계산을 해보고는 제발 농사짓지 말라고 욱대긴다고 한다.
이제 짝퉁 농부의 특징을 살펴보아야겠다. 우리가 바로 짝퉁 농부였으니 오죽 잘 알겠는가? 짝퉁 농부의 특징 중 하나는 때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태평스레 있다가 늘 시기를 놓치니 농사를 잘 지을 수 없다. 시골 농부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어디에 적어 놓지도 않았으면서 어찌 그리 때를 잘 아는지, 때 맞춰 씨앗을 잘 심는 것을 보면서 늘 감탄한다. 짝퉁 농부는 늘 한 발 늦는다. 그러니 수확이 좋을 리 만무이다. 농사란 자고로 때를 잘 맞춰야 수확을 많이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영적 농사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마을에 누군가를 전도해야겠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그 분의 부고를 받고는 멍해진다. "아, 하나님께서 그동안 숱한 기회를 주셨건만 미루다가 결국은 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떠났으니 이를 어쩌나, 그 사람의 피 값을 우리에게 물게 하겠다고 했는데......" 하면서 통회하는 때가 종종 있다.
짝퉁 농부의 특징 중 두 번째로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농부는 한 알의 곡식을 정성껏 보살핀다. 그러나 짝퉁 농부는 적은 양의 곡식은 하찮게 여기는 일이 다반사이다. 시골 할머니께서 허리를 구부리고 콩이나 팥을 고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농부가 아닌 자식들은 들여다보다가 "에이 그게 값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고 계세요. 차라리 제가 용돈 더 드릴 테니까 그런 일 좀 그만하세요. 그러니까 허리가 휘잖아요." 하고 핀잔을 퍼붓기 일쑤이다.
짝퉁 농부의 세 번째 특징은 수확량을 늘 계산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계산하고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그런 사람들은 진정한 농부가 될 수 없다. 시골 농사는 늘 수지가 안 맞으니까. 진정한 농부는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다. 가을에 나누어 먹을 것을 생각하며 즐거움으로 농사를 짓는다. 짝퉁 농부는 나누어 먹을 수 없다.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계산해보면 늘 손해이니까,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늘 마음이 가난하다. 그래서 나누어 먹을 수가 없다. 짝퉁 농부는 농사짓기 전에 계산부터 하고 본다. 그러나 진정한 농부는 계산하지 않는다. 땅이 있으니 그저 노느니 몸 굴려서 농사 지어 자식들 오면 이것저것 싸주는 재미로 일을 하는 것이다. 계산을 한다면 어느 누가 농사짓겠는가?
어느 날 공중목욕탕에 갔더니 중년 여성들이 사우나실에서 열분을 토하며 젊은 며느리들을 성토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시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준 참깨, 들깨, 고춧가루 등이 버려졌더란다. 무엇인가 하고 열어 봤더니 지난 번 추석명절에 시골에 가서 가져온 곡식들이 따뜻한 아파트에서 몇 달이 지나니 벌레가 생겨 내다 버렸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가져가 손질하여 먹었노라고 하였다.
올해 잡곡 농사를 우습게 짓고 나서 반성을 많이 했다. 어차피 진정한 농부가 되지 못하면서 농사짓느라 시간만 낭비했으니 내년부터는 어줍잖은 농사는 그만두고 사람 가꾸는 영적 농사나 잘 지어야겠다고 우리 부부는 다짐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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