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4. 22:24ㆍ좋은 글, 이야기
한번뿐인 삶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아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가 왜 태어났을까요? 과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사람은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하고 이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인해 힘들어 합니다. 삶이 순탄하게 풀릴때는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삶 중에 고통을 받을때는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가 태어난 이유, 곧 사명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일까요? 그는 아마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 일겁니다.
그동안 불안에 떨어야만 했던 어두운 미래가 보이고 내가 왜 태어 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기에 기쁨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우리의 행복과 직결된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려면 우리가 왜 존재하는 지를 알기 전에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서로 한 몸이 되었고 그 결실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사랑이 단 한순간의 사랑이었건 평생의 사랑이었건 둘이 하나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10달 동안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우리를 품었기에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이 과정을 거쳤고 그 위의 조상들도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모든 인류는 전부 이 과정을 거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류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요. 진화되어 여기까지 왔을까요? 잠시 진화론이 맞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모든 물질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그것들을 구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은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완벽한 "무"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고로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결국은 스스로 존재하는 능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만들고 기뻐하셨습니다.
자연을 보십시요. 너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으며 모든 생물은 본능대로 살아가는데 먹고 먹히고 죽고 죽이는 관계 같지만 보면 모든 생물은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대로 너무 잘 맞아떨어지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치에 벗어남이 없이 자연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 법칙을 완벽하게 정하고 그 법칙대로 살아가게 정한것 같이 정교합니다.
지금 먹는 과일을 하나 꺼내서 보십시요. 어떤 느낌이 듭니까? 정말 당연하게 먹을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놀랍지 않다면 더 자세히 보십시요. 이것이 만든것이 아니고 우연히 생겼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가 귀히 여기지 않는 과일 하나도 우연 이라는 생각을 억지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완벽한 디자인과 맛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십시요.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마음도 누군가가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같습니다. 나를 생각하고 타인을 보십시요. 내가 사랑했을 때를 생각하십시요. 그때 내 마음이 어떠 했습니까? 내가 미워했을 때를 생각하십시요. 그때 내 마음이 어떠 했습니까? 내가 감사 했을때, 용서 했을때, 내가 감사하지 않았을때, 내가 용서하지 않았을때 이렇게 반대 되는 상황을 모두 생각하십시요. 그 상황마다 내 마음이 어떠 했습니까? 놀라우리 만큼 사람은 같습니다.
선한 마음을 품었을때 우리의 마음은 행복속에 쉬고 있었으며 악한 마음을 품었을때 우리의 마음은 불행속에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내 몸은 어떠했습니까? 행복은 고통을 잊게 만들고 불행은 늘 고통을 수반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지 않고 이렇게 같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동식물, 산과 바다, 낮과 밤, 하루와 일년 등 모든 것도 마찬가지로 정교합니다.
사람들은 정상, 비정상, 순리, 이치 등등 모든것은 자연의 법칙이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정말 맞습니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법칙을 정하신 분이 계십니다. 사람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법칙을 만들어 사는데 그 자연의 법칙도 생각대로 만든분이 계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완전한 법칙은 만들었다 인정하면서 완전한 자연의 법칙은 우연이라 생각하며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게임에도 룰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에도 룰이 있습니다. 룰은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우주 만물의 룰 안에 있는 지극히 작은 존재이지 그것을 지배하는 룰 밖의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법칙을 이토록 정교하고 완벽하게 정하신 분은 얼마나 큰 존재 이겠습니까? 모든 우주 만물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과연 얼마나 큰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작은 지구조차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작고 작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반전이 있습니다. 알 수 없이 큰 하나님께서 우주만물 중에 지극히 작고 작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이 부분이 우리가 생각할 수준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생각 할 필요없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변명의 여지없이 우리는 죄악속에 살아왔습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사람의 마음은 선해야 행복을 느끼고 쉴 수 있습니다. 선하지 않으면 불행을 벗어날 수 없으며 쉴 수 없습니다. 이로 보아 이 법칙을 만드신 분은 분명히 선한 분입니다. 선한 사람에게 행복을 악한 사람에게 불행을 주십니다. 악한 사람은 결코 쉼이 없습니다. 달콤한 잠도 악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고 권력이 아무리 높아도 이 법칙을 벗어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때문에 행복의 기준은 없습니다. 재물과 권력이 행복의 기준이라면 세상이 이렇게 타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극히 높은 자가 정한 이 선한 법칙을 지극히 낮은 우리가 편한 대로 생각하고 맞추며 살아 서로 반항하고 싸우며 악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결코 순종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죄악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지극히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변한적이 없으시며 정하신 일을 하지 않으신 적도 없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셨지 멸하기 위해 노력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렇게 죄악되게 만들었고 지금 당장 멸하신다고 해도 한마디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리고, 약하고 작을때 스스로는 살수가 없습니다. 보살핌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몸과 머리가 커질수록 그 보살핌과 사랑을 거부합니다. 스스로의 방법이 생겨 불순종하고 더 좋은 것을 찾아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자기 위주의 생각에 빠지게 되는 사람은 부모님에게 반항했던 것처럼 세상에서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선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며 악에 타협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지식이 쌓일때에 더 이상 보살핌의 사랑이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불순종하며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불순종하는 사람은 자기가 살던 방식 그대로 똑같이 세상에서 불순종하며 서로 믿지 못하고 싸웁니다. 이러한 사랑없는 삶에서 항상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항상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희망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더 깊게 되어 부부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때는 세상을 다 가진듯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살아가는데 어느 순간 이 첫사랑의 기분을 잊고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렇게 더 좋은것을 찾아 방황하며 반복되는 불행을 자초하다가 허무하게 삶을 마치게 됩니다.
항상 더 큰 꿈과 행복을 생각하고 기대에 가득 차 세상으로 나가는데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은 더 큰 사랑도 아니요. 더 큰 행복도 아니요. 믿음도 아니요. 오직 잠깐의 행복과 수고와 낙심 뿐입니다. 나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세상에서 살 소망도 잃고 죽기를 바란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악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견제하고, 폭력으로 위협하고, 말로 상처입히고,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을 시기하며 탐욕에 눈이 멀어 죄악 속에 살아갑니다.
밑에서 섬기기를 거부하고 자존심을 세워 머리중에 머리로 인정받기를 원하며 오직 사는 이유와 목표를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함"으로 잡게 됩니다. 사랑이란 이유로 태어난 사람은 어느 순간 그 사랑을 스스로 버리고 잊습니다. 사람에게 상처줘도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죄악에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인정하고 섬기는 것은 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짓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조롱합니다. 이런 악한 생각들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우리가 어릴때 보살핌과 사랑이 없이 살수 없듯이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는 그분의 보살핌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어머니가 해산의 고통을 오직 사랑으로 버티시고 나를 낳아 키우셨듯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고통은 세상의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자 하나님이신 그분이 피조물인 사람에게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기 원하십니다. 얼마나 가슴벅찬 일입니까. 죄악이 만연하고 마음이 굳어진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 사랑을 십자가 고난과 전부 쏟으신 피로 증명 하셨고 그 피의 능력을 다시 부활하심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또 하늘에 오르시고 그대로 다시 오신다 약속 하셨습니다.
죄악의 종으로 매인 우리의 고통을 대신 받아 사망속에 살소망이 끊긴 죄악에서 우리를 건지십니다. 우리가 고통속에 살아가는 것을 보고만 계시지 않고 고통의 이유를 전부 제거해 주십니다. 이를 마음 깊이 믿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의 피에 나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되어 사랑을 회복해 사람답게 살 길은 이뿐입니다. 그의 부활하심같이 우리를 다시 만드시고 고치시며 우리가 창조되어 사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오직 주님에게 의지하여 사랑을 행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그토록 고대하던 참된 쉼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죄악에서 벗어나 기쁨에 찬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에 우리는 참 소망이 생깁니다. 이 소망으로 이 땅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사람답게 살다가 본향인 하늘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방황 할 때에 우리는 자존심 하나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 자존심이 우리에게 걸리는 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끝없는 불행에 살았습니다. 우리의 혀는 사람을 죽이는 혀였으며 손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손이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며 몸통은 과시와 자랑의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내가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가 없습니까?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또 얼마나 허무합니까? 분명히 사람은 창조되었습니다.
선함은 행복을 악함은 불행을 줍니다. 이 법칙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이미 떠나버린 죄악된 우리가 스스로 선하게 살수 없기에 이를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고 완벽하게 해결하셨습니다. 그분을 마음 깊이 믿고 동행하면 우리도 선한 행복을 알게 됩니다. 내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인생의 최선으로 세워 그분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우리가 의로운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한 늦지 않았습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인생을 고통중에 살다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사람들이 나이들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인생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물론 더 나은 삶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 삶은 주님을 믿고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어 살 소망이 끊겼을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살 소망이 끊긴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죽음대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시고 생명 주시고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인 사랑을 마음에 새겨 주셨습니다. 아무 가치가 없던 삶에 가치를 주셨습니다. 이 가치있는 삶을 받은 우리는 일평생 빚진 마음으로 책임감에 살아야 합니다. 주님 주신 사랑은 모든 사람을 치유합니다. 이 사랑을 행해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면 이보다 가치있는 삶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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