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3. 12:30ㆍ좋은 글, 이야기
내가 받고 싶은 신앙의
성적표는?
신앙인이라면 내가 얼마나 신앙이 자랐는지 점검도 할 겸 성적표를 받고 싶을 것이다. 요즘 성적표의 평가하는 기준이 점수를 준다던지 아니면 대학교처럼 ABC 로 하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런 반면 과거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평가기준은 수우미양가로 점수로 기준을 내렸다.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의 평가기준을 다음과 같다. 秀(수)는‘빼어날 수’자로‘특히 우수하다’優(우)는‘넉넉할 우’자로‘역시 우수하다’美(미)는‘아름다울 미’자로‘좋다’라는 뜻도 있고 良(양)은‘좋을 양’자로‘훌륭하다, 착하다’可(가)는‘가능할 가’로‘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라는 말이다.
위의 내용을 봐서는 낙제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제일 낮은 점수가 가라고 한다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칭찬에 가까운 점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 신앙인들 가운데 빼어날 정도의 신앙을 가진 분이 과연 교회 안에 얼마나 될까? 어쩌면 한국교회 안에서 몇 %를 자치할 것 같은가?
아니면 이 글을 읽는 접하는 독자가운데 한 명이라도 있을 것인가? 빼어날 정도의 신앙인을 성경의 인물에서 찾는다면 과연 어떤 인물일 것인가? 그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우수한 신앙인을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여기에도 그렇게 많은 숫자에 들어갈 분이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겨우 몇 사람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신앙이 우수하기 보다는 신앙이 넉넉한 사람으로 지칭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 될 것인지 가늠조차 어려울 것이다. 미의 신앙을 소유한다면 아름다운 신앙, 신앙의 좋은 사람은 그래도 그나만 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이 좋다는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있는지
새벽기도를 비롯하여 교회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기준인가? 아니면 충성봉사, 헌신을 기준으로 삼는가? 헌금을 많이 낸 사람을 기준을 삼는 것인가? 이 모두가 사람의 잣대에 의한 평가에 불과한 것뿐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믿음의 기준은 행위인가? 아니면 관념적인 것인가?
아무리 성경에서 나오는 잣대를 가지고 가늠한다고 하지만 신앙의 좋다고 할 만큼의 기준은 없다고 본다. 그 다음에 양의 성적은 받을 신앙인은 훌륭하고 착한 신앙을 기준을 삼는다고 하지만 무엇이 훌륭하며 착한 신앙인지를 기준을 삼아보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 봐도 훌륭하고 착한 신앙을 찾기 쉽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분할 가능성이 있는 신앙인마저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성적표의 기준을 보고 과연 본인은 어떤 종류의 성적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는 자문자답 속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가’라고 하는 성적마저도 받을 수 없을 정도 수준인데도‘가’라고 성적을 주신다면 언감생신이다.
믿음의 은혜로 능력을 받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된 줄로 착각하며 천하를 다 얻을 줄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가’의 성적을 받을 것에 불과한 것인데 최고의 점수인 ‘수’를 받은 줄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신앙에 대해 평가절하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경인물 중에 자신이 ‘수’를 받았고 고백하는 분이 없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수를 받았다는 의미로서 고백한 사도 바울의 말씀의 의도는 내게가 아니라“내가”능력주시는 그 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고백이 되어야 한다. 능력이라기보다는 나를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는 그 분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억지로 비유할 수 없지만 수는 지성소 안, 우는 휘장 부분, 미는 성소 안, 양은 물두멍, 가는 번제단이라고 한다면 이제 겨우 내 속에 있는 짐승의 태우는 정도에 수준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첫 출입문에서 주님과 만남으로 인해 사람 내면에 있는 짐승의 속성을 태워나가야 하며 물두멍에서 정결하게 씻어야 하는 수준이‘가’의 성적이다.
이것을 목회자들이 현재 목회수준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내가 지금 성직자이지만 지성소는커녕 번제단에도 못 미치는 이방인들이 득실대는 바깥들에서 설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번제단 앞에는 도달했지만 이글거리는 불꽃 앞에서의 열기 때문에 접근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죽을 각오를 하고 목회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겨우 풀칠만 하는 가운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큰 교회에서 어떻게 보조나 받을까? 아니면 어떤 독지가가 등록해서 교회 살림을 풍성하게 해 줄 인간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한국교회 안에 목숨을 걸고 하는 숨은 목회자들이 있다. 그 분들은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만 죽으면 괜찮은데 지성소를 들어가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다치게 되어 있다. 지성소에 들어가도록 제비를 뽑는 그 순간 제일 먼저 공격의 대상으로 여기는 마귀 사탄이다.
그들의 리스트에 올려져 공격 일선에 타격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여러 목회자들을 놓고 기도하면 이러한 상황에 놓여 져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평신도인데 자신이나 부모가 주님 앞에 서원기도를 해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간혹 만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약속을 안 지켜도 되는 줄 안다.
신학교 다닐 때와 목회를 할 때 그리고 지금 최근에도 그런 분들이 필자에게 언질을 주거나 아니면 주변 분들이 미리 말해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주께서 부족한 필자의 입을 통해 왜 주님께 서원한 기도를 이행하지 않나요? 하고 불쑥 말을 하게 된다. 필자도 놀라고 듣는 본인은 더욱 놀라워한다.
그래서 필자의 말을 이행하여 현재 외국에서나 국내에서 훌륭하게 목회를 하고 있는 분이 있는 반면 아직도 이행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신앙의 낙제 점수를 받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빵점 신앙도 있을 수 있겠으며 쌍권총을 여러 자루 차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가’라는 점수는 빵점이나 쌍권총의 점수가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위로의 점수라고 한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나 목회자들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교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점수를 후하게 줘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점수가 형편없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기에 부르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열등의식에 빠지지 말고 왜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나를 택했을까? 하지 말라. 필자도 왜 저를 택합니다. 저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항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는 필자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너와 똑같은 성격, 체격, 인상을 가진 자를 찾아오라고 하셨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위인은 없다.
만약에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하고 질문했더니 너를 죽이고 그 인간을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똑같이 생겼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성격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런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내게 심어준 주님의 뜻과 가능성은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명과 부르심을 받았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받고 싶은 성적표는 다름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위치에 도달해 있는지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도달되어졌다면 그 순간이 최고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위에서 배회하지 말고 도달하지 않겠다고 앙탈도 부리지 마라. 여러 모로 소모만 될 뿐 하나님을 지치게 하지 말라. 이것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는 사실을 그리고 옆에 분이 도저히 그 성적을 받을 수 없는 받았다고 질투나 시기도 하지 마라.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가야하며 주님께서 지시한 그 땅에 도달하는 그 순간 빼어날 성적‘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점수는 내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며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님만이 평가하고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최고의 점수를 받기를 원한다면 경쟁사회에서 얻어지는 점수보다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점수로 위로와 용기를 부여받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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