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3. 21:44ㆍ좋은 글, 이야기
인색함은 죄다.
글쓴이/봉민근
인간 관계이던 하나님과의 관계이던 인색함은 모든것을 경직되게 만든다.
삶의 자리에서 살기에도 부족한 물질로 인해 저마다 자기 몫에 대해서는 욕심들이 대단하다.
많은것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남을 위하여 베풀지 않으며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색한 것은 아니다.
더 가지려는 욕망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몰고 간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다.
죄를 짓고 법정에 구속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욕심과 시기로 인해 범죄한 자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법은 이웃을 위해 주라하시는 법이다.
그러면 후회 되어 그것을 되 갚겠다 말씀 하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이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거나 하나님께 드리는 삶에 인색하다.
세상에는 기아로 고통당하며 죽어 가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왜 하나님은 그들을 방치 하며 죽게 만드시는가에 의아해 하지만
세상에 먹을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수 없이 음식물을 버리고 낭비하며 사치로 향락으로 절제하지 못하며 살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이 먹고 비만이 되며 남은 음식물을 처리 하기 위한 음식물 처리기가 가정마다 설치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년에 버려지는 음식물이 20조에 가깝고 그 처리 비용 또한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서 매년 버려지는 음식물이 3000만∼5000만 명이 1년 동안 섭취할 수 있는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구상에 생산되는 곡물들은 세상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남을 배려 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불감증과 인색함이 수많은 사람들을 기아로 몰아 넣고 있다.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에서는 가축에게 고급 먹이를 주거나 반려 동물들에게는 비만이 되도록 먹이고 있지만
정작 가난하고 헐벗는 지구촌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곡물이 남아 돌아 퇴비로 사용하거나 가축 사료로 주는 경우가 허다 하다.
벌판에 널린 풀을 사료로 주어도 충분 하지만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면서 배고파 하는 이들을 위하여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지구촌에 굶어 죽어가는 자들을 인색함으로 방치하는 것은 그들을 살인하는 행위와 같다.
우리 모두가 방관자요 살인자 인지도 모른다.
주님의 제자라면 적어도 속옷을 원하는 자들에게 겉옷까지 주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목마르다 말씀하셨다.
사랑 없음에 목말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우리가 들을수 있어야 한다.
인색함은 죄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 앞에 드리고도 그 인색함으로 벌을 받았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38)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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