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추수 감사 주일날 아침,
헌금 봉투 겉면에 감사의 내용을 적을 때였습니다.
‘주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 가정을 드립니다.’라고 맨 첫 줄에 적자
주의 품안에 우리 가족이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감사해서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많은 기억들이 물결처럼 흘렀습니다.
제가 맨 처음 교회를 나간 때를 되짚어보니
예닐곱 살 적, 그러니까 지금의 민서만한 때입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발령지를 따라
작은 섬에 2년 동안 살게 되었습니다.
그 섬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는데 목사님은 계시지 않았고
다리가 불편하신 전도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주일학교 훈련을 그때부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주일마다 전도사님께서 암송할 성경구절을 종이쪽지에 적어
도르르 말아서 건네주시던 것과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찬양을 많이 불렀던 것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다시 뭍으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그 섬은 기억 속의 그리움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 따라 교회에 몇 번 나갔다가, 곧 실망하여 나가지 않다가
또 한참만에 나가기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느라 서울에서 딱 10년을 살았는데
그 때 하나님을 가장 멀리했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화려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위해 내 자신을 맞춰가느라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대학 가까운 곳에는 유흥가와 홍등가가 있었고
직장은 강남 중에서도 압구정동에 있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내 눈으로 목격하고 살았습니다.
화려한 빌딩과 네온 숲, 잘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늘 마음 한 구석이 빈 듯했지만,
그러나 그때만 해도 무엇 때문에 그런지, 그 시간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저를 돌이키셨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자꾸만 겁도 없이 나아가는 저를 보시고
단번에 결단케 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여 창세전에 택하였고
나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버리고 이곳 홍성으로 오게 해 주셨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곤 없고, 예전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전혀 낯선 곳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이곳에 예비해둔 작은 교회를 섬기게 하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이곳에 온 지 딱 5년째.
성경공부를 새로 하고
꽃꽂이와 성가대, 점심 봉사로 헌신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세미한 감동과 은혜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기쁨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이 되돌려주시는 하나하나의 옛기억들입니다.
예닐곱 살 작은 섬의 꼬마 적 기억부터
주일학교 시절과 학생부 시절의 자잘한 기억들까지…
그 기억들은
그 어느 한 순간도, 심지어 내가 죄인 되었을 때와 원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확신을 주곤 합니다.
섬이나 어촌은 미신이 굉장히 성행하는 곳인데,
더군다나 70년대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어려운 시절에
복음이 들어간 섬에서 살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전도사님으로 하여금 어린 나를 전도케 하셔서
일찍이 주의 말씀을 듣게 하고 암송케 하였으며 찬양하게 한 것이
눈물나도록 감사해서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라는 찬양을 자주 부르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택함을 받을 만한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내 속에 든 어떤 씨앗을 보셨기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는지,
더군다나 그렇게 일찍 택하셨는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생부 시절에는 믿음도 없는 자를
성가대로 세우시고 그 가운데 택함 받아 중창단으로까지 세우셨습니다.
한동안, 믿음 없이 살았던 그 시절이 한심하고 부끄럽기도 하였고
찬양을 드린 것이 아니라 믿음 없이 노래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어느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확실한 감동을 주시며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네가 올린 찬양이 정말 허공 중에 사라져버린 노래였겠으며
학생부 예배 시간과 학생부 기도회에서 드렸던 그 많은 기도가
그저 생각없이 내뱉았던 웅얼거림에 지나지 않았겠느냐.
너는 다 잊어버렸지만 나는 다 기억한다.
네가 예닐곱 살, 처음 예배당에 나아와 드린 찬양과 기도까지
빠짐없이 기쁘게 받았노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와 감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영혼이 다 젖도록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열일곱 살에 학습을 받고 서른세 살에 세례를 받을 정도로
세상을 더 사랑하고 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고집 부렸던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섬마을의 작은 꼬마에 불과했던 나를 귀하게 여기셨고
내세울 믿음도 없는 나를 학생부에서 돋보이도록 세우셨으며
하나님의 원수 되어 세상 노래를 부르고 세상의 타락을 배우던 때에도
친구로 하여금 중보기도케 하셨고,
직장의 사장님을 비롯한 주위의 여러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권면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기억도 돌려주셨습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주일학교에서 작은 질문지를 내어 주었습니다.
다른 질문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두 가지는 생각이 납니다.
제일 가보고 싶은 곳, 그리고 소원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전원’과 ‘우리 가족이 모두 손잡고 주일날 교회 오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외국 동화를 많이 읽을 때여서 외국의 전원 풍경을 상상하며 그렇게 썼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유기농 전원마을입니다.
그리고 친정 식구들은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지만
내가 꾸린 가정만큼은 주일날 모두 교회에 나가고 있으니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알고 보니 남편도 나와 비슷한 절차를 거치며 하나님을 떠나 있었는데,
민서로 인하여 한 날 한 시에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교회 버스를 자원하여 운행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시어머니를 주셔서
때마다 시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추수감사 예배를 준비하는 며칠 동안
감사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그 때 아셨습니까?
제가 이렇게 이 교회에서
감사함으로 추수감사예배를 준비하게 될 줄 그 때 아셨습니까?
이렇게 성전에 올릴 꽃을 꽂고 헌물을 장식할 리본과 바구니를 챙기며
성가대 특송곡을 연습할 줄 다 알고 계셨습니까?
코흘리개 꼬마였던 때도, 믿음 없이 살았던 학생 때도,
세상을 더 사랑하고 타락했던 이십대 때도,
이렇게 돌아와 아버지의 자녀로 감사하며 살게 될 줄
주님, 미리 아셨습니까?
다 아셨다면, 아버지를 멀리하고 살던 그 때,
언젠가는 돌아올 이 죄인으로 인하여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이 탄식하셨습니까?’
눈물어린 그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대답 대신
하늘로서 오는 크고 큰 평안을 제 마음 속에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내 주님은 그렇게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임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심을
다시금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번 추수감사 예배에는 진실로 감사함으로
나와 내 가정을 추수감사 예배의 헌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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