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사랑하는 교회 박미래 목사님 간증

2006. 4. 28. 11:21신앙간증

양재동 사랑하는 교회 박미래 목사님 간증

 

 

처음 들은 하나님 이야기
초등학교 1학년 때 과외 선생님은 공부시간을 전 후해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던 가정에 태어난 나로서는 이것이 처음 들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무척 좋았습니다.
동네 아이들 소문에 의하면 그 선생님은 이스라엘 말도 한다고 했습니다.
방언이겠죠.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은 전도를 목적으로 과외를 한 ‘전문인 선교사’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해요. 지금 어디 계신지요...”
눈물의 크리스마스
초등학교 때 몇 번 교회를 나간 적이 있으나 신앙생활은 지속되지 못하고..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친구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당시 유학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한 안질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교회 나간 구실은
눈을 고쳐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내 영혼은 반년 전부터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예배당에 들어가자마자 눈물, 콧물, 어리굴젓... 범벅...
“하나님 제가 왔어요...!”
눈은 씻은 듯이 나았고 그 날은 제 인생의 BC와 AD를 나누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 날의 결단과 헌신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날이 1978년12월25일 크리스마스 10시 예배.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빠리는 나의 예배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곳 빠리로 왔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첫 집은 세느 강 근처에 있었고 조금 걸어 나오면 에펠 탑이 보이는 그림 같은 동네였습니다.
젊음과 빠리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두고 두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건 하나님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딜 가나 찬양을 끊임없이 불렀습니다.
당시 초신자라 아는 노래가 없어 그냥 마음대로 지어 불렀습니다.
다행히 거기는 미친 사람이 많아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빠리는 어디나 나의 예배실 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꿈에 본 <백마 탄 왕자>를 만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부활절 방학을 이용해 스페인까지 갔었습니다.
못 만났습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포르투칼.. 마지막으로 라자로 해변...
역시 허탕!
결국 교회 청년과 결혼, 한국에 돌아와 그는 KAIST교수로, 나는 애 엄마로...
그러다 한국에 온지 1년쯤 되어 갈 때 그는 하나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모두 다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난 쌩쌩했습니다.
장례식 때 제일 우렁차게 찬양했습니다.
♪ 하늘가는 밝은 길이~
그 길은 정말 밝게 느껴졌습니다.
모두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하나님 하신 일이 이해가 안 갔지만 찬양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대통령 코디네이터를 사양하고

별 생각 없이 다녀온 대통령 코디네이터 면접.
아~ 생각해 보니 하나님 뜻도 안 묻고 다녀왔길래 “하나님, 제가 그 일을 하기 원하시나요?” 기도했더니
그 답은 선명하게 “NO". 하지만 공교롭게도 와서 일해 달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깨끗이 사양했습니다.
물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대통령을 시켜 준다 해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길이 아니라면 가지 않기로 한 내 삶의 원칙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 사역에 부름 받은 것은 이 일이 있고 난 바로 뒤였습니다.
휴~~ 하마터면 하나님 백성들의 찬송의 옷을 입혀야 할 사람이 대통령의 옷을 입히는 사람이 될 뻔했습니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
나의 계획과 소원과 무관하게도 찬양 인도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음악과 무관한 내가, 여자인 내가 찬양 인도를 하다니... 영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찬양 사역 때마다 수많은 치유와 구원, 기적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간증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찬양 사역을 하던 1988년 어느 날 만든 노래말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는 어쩌면 내 삶을 향한 예언적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아~! 찬송의 옷! 그 어떤 옷보다 나를 아름답게 해주고 강하게 해준 옷, 전천후 의상이었습니다.
내 삶은 많은 사람들의 염려를 깨고 희락과 화관과 찬송으로 가슴 벅찬 삶이었습니다.
사는게 기뻤습니다.
그냥 기뻤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 믿은 첫 날부터 늘 내겐 변치 않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도 저 목사님처럼 수 많은 영혼 살리는 사람 되고 싶어요.”
때가 왔습니다.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국에 신학을 하러 떠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사직하고 하나님 일만 하겠다고 선언 했을때 여러 사람들에게 충격이 되었습니다.
특히 아들에겐 더 큰 충격, 아니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날 이해하지 못했고 나도 그들이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서로 다 이해합니다.
찬양 인도로 시작된 나의 사역은 내적 치유, 상담 사역 그리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시작된 사역이 있었습니다.
바로 목회였습니다.
나는 사랑합니다
처음엔 단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차원에서 개척한 교회. 얼떨떨하고 어정쩡하고 어설픈 목회...
하지만 나의 궁극적 부르심이 목회자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고 난 2005년도부터는 확 달라졌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또 영혼들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교회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모든 수고와 땀과 눈물을 사랑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사랑합니다.
아~ 사랑스런 교회, 사랑하는 교회!
행복합니다
지금 나의 가족은 네 명입니다.
오직 예수로 젖어있는, 어딜 찔러도 예수가 새어나오는 남편, 믿음직하고 몸무게도 듬직한 아들, 예쁘고 착하고 솜씨 좋은 딸...
하지만 나의 가족은 이 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교회에 수 많은 가족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웃고 함께 우는, 함께 춤추고 함께 씨름하는,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뛰고 함께 죽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늘 잘 웃고 순수하고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사랑하는 교회 가족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교회 목사인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나는 꿈을 꿉니다
하나님의 꿈을 꿉니다.
마른 뼈와 같은 가망 없는 영혼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꿈을,
새벽 이슬이 어둠을 깨고 빛을 뿌리며 땅 끝까지 덮는 꿈을,
불가능이라 불리웠던 일들이 현실과 일상으로 바뀌는 꿈을 ...
하나님의 꿈이기에 나는 도전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에 도전하렵니다!

 

http://www.churchin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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