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을 받기까지

2006. 12. 30. 18:04신앙간증

안녕하십니까? 3남전도회 이 00 집사입니다.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제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간증을 하고자합니다.

저는 1956년 충북 제천군 송학면의 한 시골에서 농부의 차남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처녀 총각 시절은 00교회에 다니셨으나 결혼 후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고 미신을 섬기게 되면서 살림살이는 점점 기울어져 결국 고향을 떠나 1962년에 강원도 깊은 산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부모님께 매를 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불법으로 땅을 개간하여 불법 벌목으로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 나물로 허기를 달래며 쌀밥은 명절 때도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68년 현 주거지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활은 점점 악화 되어 살고 있던 집마저 남에게 넘겨지는 불운을 겪게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소다를 밥먹듯 하시고, 아버지는 화병으로 가정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때부터인지 어머님은 00 교회를 다니시면서 소다를 끊게되고 어머님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도 가끔 어머님을 따라 교회에 가보았으나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교회를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때가 더 많았습니다. 현재 어머님은 원로 집사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등록한 것은 1975년 8월 3일이었습니다.

개척중인 교회에 신 00 여자 전도사는 제 마음을 사로잡았고 신앙생활 이라기보다는 전도사를 보러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러던 중 우연히 아이들이 부르는 찬송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이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하는 찬송에 감동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점차 잃어가고 타락의 길에 빠지는 때가 많았습니다. 00우체국에 취직하면서 1979년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임명 되어 봉사를 하게 되고 저의 신앙생활은 잘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20살 되던 해 아버님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시니 저는 이 곳 저 곳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타락하게 되고 저의 신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얽매어 사는 때가 더 많아지고 술, 담배, 커피, 다방 여자에 빠져 타락하고 말았으니, 교통사고와 악성 질병으로 큰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1981년10월 4일. 침수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 성경학교 예배시간에 뜻하지 않게 천둥 번개와 함께 벼락을 맞아 정신 신경과에 다니며 무척 큰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나태한 신앙과 직장의 스트레스로 질병이 악화되었고 심장 부근에 혹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을 해도 재발 가능성은 90%라며 앞으로 3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청천 벽력같은 성모 병원의 말에 저는 기도는 뒷전이고 교회도 뒷전으로 눈물로 세월을 원망하며 타락의 깊은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약도 주지 않고 종이에 영어로 약 명을 적어주며 양을 사먹고 쉬는게 약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종이를 들고 약국으로 가며 아~~~이렇게 내가 25살에 죽는구나. 생각하니 한없이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절망의 늪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밥 먹는 것도 힘들고 병은 악화되어 5가지의 합병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부흥회 때 갑자기 교회가 가고 싶어서 걷기조차 힘들던 저는 뛰어서 부흥회 마지막 날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통성기도 시간에 갑자기 주먹만한 덩어리가 목에서부터 밀고 내려가며 창자를 뒤틀고 내려가는 통증에 사람 살리라고 하며 대성통곡하며 우는데 강사 목사님의 안수기도에 방구가 나오면서 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 후 저는 3년을 먹으라는 약을 6개월 만에 중단했습니다. 3년 밖에 못 산다던 저는 지금 50살이 되도록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00방적 회사에 다니며 음식을 조절하며 병마와 싸웠으나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에는 집사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 후 새로 지은 교회의 헌당예배를 드린 후에 33살의 늦은 나이에 지금의 집사람과과 중매 결혼을 했습니다.

큰애의 대몽 꿈에 어떤 여자가 한 손에는 사과를 또 한손에는 감자를 들고 (어느 것을 주랴)하고 묻기에 저는 (사과를 주세요.)했더니 딸을 낳고,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으며, 둘째의 태몽 꿈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깊은 계곡에 갔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밝은 빛이 내게 비치면서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 하는데 우렁찬 음성으로 들려 저는 (제가 아들 하나를 갖기 원합니다.) 했더니 (너는 성경 66권의 말씀을 믿느냐? )하는 우렁찬 음성에 (예 믿습니다.)했더니 (네 믿음대로 되리니 가라)하기에 저는 (그럼 아들을 주시는 것입니까?)했더니 (너에게 아들을 주리니 성경을 믿느냐?)하기에 (예 성경말씀을 믿습니다.)했더니 (가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기에 저는 수없이 많은 꽃밭을 날개를 달고 날아서 오다가 꿈을 깨게 되었고, 아들을 낳고 지금은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신앙은 나태해지고 교회보다 세상에 더 빠져 방탕했습니다. 아들이 7살 되던 해 저는 친구와 술을 먹고 있는데 자꾸 삐삐의 호출이 울려 급히 집으로 와보니 아들이 자전거를 타려고 하다가 다리 아래로 추락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니 큰 돌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인하여 아이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119를 타고 00 병원으로 가는 길은 휴일이라 차는 막히고 아이는 점차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고 마음은 다급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뇌진탕과 손목 골절)인데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의사를 붙들고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으며 의사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하며 머리에 응고된 핏덩이를 마취도 하지 않고 꼬챙이로 파내는데도 아이는 의식이 없이 반응이 없었고 손목도 깊스를 하고 머리도 꿔매었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기도로 바라만 볼뿐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길게만 느끼던 지루한 6시간이 흐른 밤12시에야 아이는 그제서야 (아빠 아퍼) 하면서 울기 시작하니 의사들이 이제는 한고비 넘겼으니 안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5일 후에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신앙이 나태해 질 즈음에 일은 또 터지고 말았으니 00방적의 화재로 인하여 직장을 잃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금 회개하고 공구 철물 납품업체에 취직하였으나 신앙생활은 게을리 하게 되었고 타락의 길은 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방탕하며 보내던 어느 날 꿈에 저의 3형제가 한자리에 있었는데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타나셔서 (누가 같이 가서 집을 지어야겠다.) 하니까 막내 동생이 (아버지 제가 갈께요.)하니 아버지는 (너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제가 제가 갈께요.)했더니 갑자기 막대기로 저의 머리를 세게 치시며 (너는 안돼 이놈아)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너무도 머리가 아파 한동안 애를 쓰다가 잠도 못잤습니다.

 출근을 하여 일을 하는데 운전을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배달을 나갔는데 빨리빨리 오라는 사장님의 호출로 과속 운전을 하다가 좁은 길에서 마주오던 차와 정면충돌 사고가 났고, 승용차에 타고 있던 사람과 저는 모두 3명이 다치는 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차를 고치고 퇴근했으나 머리가 아파 밤1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는데 새벽 2시에 요란한 전화벨이 계속 울려 받아보니 어떤 아줌마가 (형님이 위독하니 빨리 오세요.) 하는 말에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끊고 있다가 귀를 의심하며 다시 전화를 했더니 (형님이 위독하니 죽기 전에 와서 얼굴이라도 보세요.) 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차를 몰고 1시간의 거리를 30분 만에 달려 가보니 살아있어야 할 형님은 새벽 1시에 이미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였습니다. 내가 죽을 것을 하나님은 저의 형님을 집 짖기 위해 데리고 간 것입니다. 그날의 교통사고로 사장님은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여 직장을 나오게 되었고 공공근로사업으로 근근히 연명하며 생활하다가 신앙도 되찾는듯했습니다.

그러나 본교회 목사님과의 의견 충돌로 본 교회를 떠나 처제가 시무하는 00교회와 처남이 시무하는 00교회를 전전하며 신앙이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원로 목사님이신 장인어르신의 말씀에 가까운 교회를 다니겠다고 찾던 중 우연히 00교회의 전도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00교회에 이미 다니고 있기에 저도 00교회에 등록하기로 작정하고 2001년 10월 21일날 00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막상 등록은 했지만 깊은 신앙이 없고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껍데기 신앙이었습니다.

3남선교 회장직도 맡았지만 형식에 치우치기 일쑤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던 중 2002년 여름에 내게 또 시련이 닥치고야 말았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저와 같이 마당에서 일을 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입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 검사를 하던 의사가나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명이 (뇌 지주막하 거미줄 출혈)이라며 못사는 병이고 5분 안에 죽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의사를 붙잡고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느냐 물으니 기적이 아니고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급기야 처갓집과 저희 어머님 댁으로 전화를 하여 죽기 전에 오셔서 얼굴이라도 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사람은 혼수상태가 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저는 의사를 붙잡고 (여보시오. 당신이 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니 어떻게 한번 해봅시다.)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사람을 중환자실에 두고 나는 교회로 와서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을 믿으며 울고 또 울면서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2일째 되던 날 의식이 돌아오고 15일 만에 일반 병실로 나오고 1달 만에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임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생활하던 중 다시금 신앙이 나태해 질 무렵 갑자기 00목사님이 00으로 가시고, 00의 00목사님이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며, 아버지처럼 섬기던 00 목사님의 송별 예배는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나는 실의에 빠져 권 목사님이 오셨지만 그다지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제 머릿속에는 00목사님 생각뿐이었습니다. 설교 말씀도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5년 12월 1일 날 3중 교통사고로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기도의 조건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고는 났지만 아무런 상처도 없어 감사를 드리며 6일 만에 퇴원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얼마못가서 이번에는 저의 집사람이 감기인 듯싶어 의원에 다니며 약을 쓰며 치료를 했으나 건강은 더욱 악화 될 뿐 차도가 없어 건양대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폐렴과 위염의 합병증이라는 것입니다. 집사람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저는 처음으로 (금요 철야예배)에 나가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00목사님의 말씀은 저를 사로잡고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인 것처럼 제 마음에 와 닿게 되었습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보기를 원하여 소리 지를 때에 군중은 잠잠하라 했지만 바디메오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쳐 예수님을 부를 때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때에 눈이 떠져 보게 된 것이라는 말씀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리고 회개의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지금껏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소리로 외치지 못하고 내 맘대로 방탕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치 못한 것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제 머리 속에 끝없이 스치며 지나가고 성령의 충만을 받고, 갑자기 방언이 터지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밤 12시가 되었지만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뜨거운 내 몸은 용광로 앞에 선 것처럼 주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울고 또 울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보낼 때에 10가지 재앙을 만나고 백성을 보낸 것처럼 저 역시 많은 시련과 고통 앞에 제 마음이 녹아지지 못했음을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중 11일 만에 저의 집사람은 건강하게 퇴원 했습니다.

그날의 금요 철야예배는 나 자신을 새사람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 말씀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앞으로는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리라고 다짐하며 나 자신은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이제 저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리라 믿고, 완악한 바로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자 굳게 다짐하며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자 다짐합니다.

두서없는 저의 부족한 간증을 끝까지 들어주심을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6년 3월 5일.

~~~ 이 00 집사 ~~~


출처 : 주일학교 교사들 원문보기 글쓴이 : 작은 산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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