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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듯 채워 주시는 주님

저는 1994년 당시 맛가마라는 상호로 간장,된장,쌈장,청국장을 생산하는 식품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에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출석하던 교회를 잊지 못해 7년 동안 주일이면 서울로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내려오곤 하다가 2002년에 본 교회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 붙인지 어언 3년이 되었습니다.
2002년 요맘때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당회 참석을 하고 오셔서 제게 “교회에서 무슨 일을 맡아 하라 하시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라” 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후 며칠이 지나서 지금은 원로목사님으로부터 시온성가대장 직을 감당 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저는 아무리 지엄하신 아버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양을 하였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업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거친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9년 주문량의 증가로 인해 부득이하게 공장증설을 하였는데 설비업체 선정의 잘못으로 인해 완공이 하루 이틀, 한주 두주, 지연되고 결국은 9개월 정도가 흐른 후에 겨우 시운전을 하게 될 수 있었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금방 생산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로 비싼 사채를 얻어 은행 이자를 갚았으나 원금상환 지연을 이유로 은행을 통해 경매처분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살얼음판 이었고 모든 것이 원망의 대상 이었습니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있어야 하는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는데......
출근하면 보증인들로부터의 원망 및 채근, 퇴근해서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오면 관리비 독촉장, 단전, 단수 하겠다는 최고장이 수북이 쌓여져 있었고 어느 한곳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인해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깊은 수렁에서 해매이다 문득 이것이 옳은 길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생각까지 들었다면 죽기 살기로 한번 뛰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를 해나갔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막내 동생과 한마음으로 뛴 결과 2003년 1월 2일에 경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곤고해져 있었던 저에게 시온성가대장 이라는 중책을 감당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극구 사양을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감당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동분서주 뛴 결과 경락을 받은 3개월 후 부터 흑자로 전환되어 조금씩 형편이 좋아져 갔습니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초긴장 상태로 지내시던 아버지께서 형편이 좋아진 것을 보시고 긴장이 풀리셨는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제가 미국 출장 중에 접하게 되었고, 부랴부랴 귀국하여 아버지를 뵈었으나 중환자실에 계셨던 아버지께서는 한마디 말씀도 또한 의사표현 조차도 못하시는 아주 약하고 또 약한 모습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아버지께 자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은 강하신 분이니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는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저를 안타깝고 초라하게 만드셨습니다.
워낙에 강하신 분이기에 분명 일어나실 것이라 확신을 하였고 잘 견디어 주셨지만 7월 9일 갑자기 악화되어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상을 치루고 여러 가지를 의논하기 위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단 한마디의 유언을 남기지 않으셨기에 평소 제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저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첫째.
제가 대전으로 내려왔을 때 매출의 십일조를 바치자 하고 말씀 하셨는데 그때의 상황은 십일조는커녕 항상 돈이 모자라 쩔쩔맬 때였기에 떼먹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 매년 한차례씩 부도를 맞았는데 그 돈이 떼먹은 십일조와 맞먹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절대로 하나님 돈에 눈독들이지 말기로 하고 매출의 절반을 계산한 십분의 일 중 절반은 교회에 나머지 절반은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목회자 쉼터인 은광목원 운영비로 바치기로 하였고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둘째.
교회에 바치기로 한 하나님 돈은 우리교회가 엘리베이터가 없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매년 부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되어 엘리베이터 목적헌금을 하기로 하였고 이제 그 결실이 목전에 와 있습니다.
셋째.
평소 아버지께서 은광목원이 1988년 5월 개원예배를 드린 이후 헌당을 못하였던 것을 아쉬워 하셨는데 본당 리모델링과 독서실 건축 후 2004년 10월 26일 헌당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넷째.
평소 아버지께서 움막 같은 집에 기거 하시면서 항상 어머니께 편안한 쉼터를 마련해주지 못하셨던 것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기에 어렵게 공사를 하게 되었고 2004년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낮 꿈이라고 생각 하였으나 주님께서는 이루어 주셨습니다.

제가 힘들 때 마다 원망하고 외면하였던 주님께 고백 합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시는 어려움이 강하고 크게 쓰시기 위해 연단하시기에 제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더 이상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함 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이겨나갈 것입니다.
또한 제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주시는 주님을 사랑 합니다.
40일 동안 새벽예배를 작정할 때만 해도 제가 과연 새벽잠이 많은데 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 없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었습니다.
또 새벽에 40일 동안 일어나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시작 했는데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또한 저의 생활리듬이 새벽인간으로 바뀌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이런 변화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 합니다.
마지막으로 40일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작정을 하고 기도를 하였던 것이 있습니다.
아직 응답 받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고 매달릴 것입니다.
저를 위해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돌아가신 제 아버지의 모습을 한번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전에 아버지의 음성으로 들어보지 못했던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는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매우 엄하기만 하셨기에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여 더욱 그립습니다
이렇게 한 가지 부족한듯하게 채워 주셔서 당신께 더욱 매달리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저는 사랑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