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소녀가 바꿔 놓은...

2006. 11. 20. 15:51신앙간증

 

 

나는 술집에서 만난 소녀에게 정말 믿기 힘든 과거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 나이가 15세라고 밝힌 소녀는 너무나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에게 맞기만 하다가

 

가출해 결국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포주가 무조건 빚을 지워 성매매를 강요했고 이런 생활이 죽기보다 싫어 도망쳤으나

 

항상 붙잡혀 다시 끌려오곤 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꾸 도망치자 포주가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그녀의 팔과 등을 지졌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인 15세 소녀는 인생을 체념한 듯 얼굴에 전혀 표정이 없었다.

 

 소녀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엄청난 분노가 솟구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갑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내면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바로 이들을 위한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귀를 의심했다. 고교시절 한창 기도할 때 들었던 느낌과 비슷했다.

“저는 부족한 신앙인입니다. 이들을 위해 사역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너는 이들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

 

 나는 너에게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맡길 것이다. 아파하는 양떼들을

 

내게 데리고 오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할 것이다.”

이 음성을 들음과 동시에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그곳을 박차고 나온 나는 거리를 배회하며

 

그 소녀를 이렇게 만든 우리 사회를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얼마를 울었을까.

 

 나는 그 눈물이 그 소녀가 불쌍해 흘린 눈물이라기보다 나 스스로를 향한 회개의 눈물

 

인 것을 깨달았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주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이자 이제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의지의 눈물이었다. 이것은 결국 어머니의 나를 향한 간절한 기도가 응답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을 겪은 후 말할 수 없는 애통함이 전심을 휘감아 1주일 동안 호되게 아팠다.

 

 웬일인지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내가 죄인인 것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슴 깊이 스며들며 끊임없이 눈물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내게 말씀하셨던 사역의 비전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손을 들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즉시 병원에 사표를 던지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어떻게 선교해야 할 것인가에 고민했다.

 

당시 관련 선교를 하는 분도 없었고 그 분야의 전문 선교단체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섭리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아울러 서울 연신내에 있는 서부중앙교회에서 전도사로 교회학교와 중고등부를 맡아 사역했다.

그리고 미군기지가 있는 동두천의 경기여자기술학원을 소개 받아 주 1회 예배와 상담을 나가게 되었

 

다.이곳은 성매매 여성들을 수용해 직업교육을 시키는 곳으로 웬만큼 마음을 강하게 먹지 않으면

 

그들 에게 말조차 걸기 힘든 곳이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그녀들은 아주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나는 상담을 통해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많은 빚을 지고 있었으며 심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자포자기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약물 복용 및 알코올 중독자도 많았다. 나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기도하며 연구했다.


기지촌 여성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비타공동체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말 못할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고 주일에 함께 예배 드리는 인원도 조금씩 늘어났다.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과 1년 정도 동거하다가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때론 미군 병사와 정이 들어 아이도 낳고 함께 미국에 들어갈 꿈에 부풀어 있는 여성도 있었다.

 

 그러나 미군들은 막상 임기가 끝나면 아무 말없이 혼자 귀국해버리거나 연락을 끊어 기지촌

 

 여성들은 이중삼중의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심한 배신감 때문에 약물이나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폐인이 되곤 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나를 찾아왔다. 마음씨 착한 미군을 만나 새 출발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 미군이 빚을 모두 갚아주었는데 문제는 주인이 웃돈 500만원을 더 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 때문에 장사를 못했다는 것이 이우라는 것이었다.

 

당장 그곳을 나오고 싶은 데 갈 곳이 없다는 그녀를 위해 무작정 클럽을 찾아가 주인을 만났다.


내가 그 자매를 데려가겠다고 하자 주인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댔다.

 

“당신이 뭔데 여기 와서 이러느냐"고 내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다음 날 200만원을 만든 뒤 주인을 다시 찾아갔다.


“이게 제가 만들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제 그 자매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참 어이가 없구먼.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가 아주 나쁜 사람 같소.

 

좋소 나도 그년을 내보낼 테니 당신도 두 번 다시 이곳에 찾아오지 마시오."

주인은 돈을 낚아채듯 받아쥔 뒤 탁자를 발로 쾅 차버리는 것이었다.

그 자매는 그날부터 우리 다비타공동체 식구가 되었다. 그리고 미군 병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새 출발을 축하해주었다.

 

공동체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녀는 얼굴과 성격이 변하고 말투까지 변했다.

 

제법 기지촌 여성들이 공동체 교회에 많이 나오고 성경공부 모임도 활성화되던 어느 날이었다.

 

말 그대로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10여명이 불시에 공동체에 찾아와 나를 에워쌌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거나 협박을 하지 않고 아주 조용하게 말했다.


“형씨,조용히 이곳을 떠나시오.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가시오. 우리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요.”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대형 사시미칼을 내 목과 옆구리에 갖다 댔다.

 

나도 싸움깨나 했지만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생각해보니 우리 공동체 때문에 기지촌 여성들이 늘 사먹던 히로뽕과 마리화나,대마초 등 각종 마약

 

이 안 팔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매들은 수치심을 잊고 살을 빼기 위해 이 약들을 상용했던것이다

그들이 돌아간 뒤 한동안 멍해 있던 나는 ‘사역을 여기서 접어야 하는가’라는 나약한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결국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기도하자 담대함과 용기가 솟구쳤다.

나는 폭력배 두목을 찾아가 죽어도 이 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나의 출연에 몹시 놀란

 

그들은 내가 사회운동을 해온 운동권 출신의 목사라는 것을 알자 의외로 기가 죽었다.

 

 자신들도 부탁을 받아 나를 겁주었을 뿐이라며 너무 두드러지게 활동해 포주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해주었다.

나는 그들을 찾아갈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이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

 

느냐는 배짱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내게 기지촌에서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

출처:FGTV  전우섭 목사님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 영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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