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잊을 수 없는 목사님
2005. 6. 8. 13:54ㆍ신앙간증
출처 :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 (일맥)
“지난번 있던 교회에서 사례비를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송기연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들은 질문입니다.
“예, 50만원 받았습니다.”
작은 개척교회라 오려는 전도사들이 없다고 넋두리를 하시면서 목사님께서는
지난번 있던 교회에서 받은 사례만큼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실 지난번 있던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사례를 주시기는 힘들다고 생각을 했고,
설령 형편이 못되어서 적게 주시더라도 감사히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매달 꼬박 꼬박 약속하신 대로 50만원을 챙겨 주셨습니다.
학생들까지 합쳐서 성도 수 30명이 전부.
담임 목사님이 교회에서 받는 사례도 50만원이었는데 목사님은
파트타임 교육전도사 사례를 50만원씩 꼭 챙겨주셨습니다.
교회가 있는 지리적인 위치를 보면 어떻게 이런 곳에 교회를 개척하실 생각을 했을까 할 정 도로
위치가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 북쪽은 오산고등학교 뒷담과 좁은 골목을 사이로 붙어 있고,
교회 남쪽은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골목길을 조금 빠져나가면 바로 한강입니다.
더욱이 주성동이라는 동네는 이름은 있지만 실제 행정 구역에 없는,
동사무소도 없어서 동 빙고동에서 행정을 관할하는 그런 동네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거나 부흥하기 정말 힘든 지리적인 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그런 교회였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개척을 하고 몇 년 되었을 때, 부흥하기에는 교회 위치가 너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개발 예정지인, 소위 목 좋은 곳에 교회 용도로 좋은 자리가 있어서 교회를 옮기려고 계획하셨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기면 지금 있는 성도들 가운데 몇 명이
도저히 교회를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결국 포기하셨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 하나라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결국
그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어리석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지만,
오늘날 많은 목사님들이 교인 한 두 사람 잃어도 목 좋은 곳에 가면 금방 몇 배,
몇 십 배 쉽게 불어날 것만을 생각하고 교회의 양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지금 있는 한 두 사람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송기연 목사 님은 결과적인 숫자보다는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진정한 목회자이셨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 가운데 몇 명이 버스 4-5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오기 때문에 주일 오전 주 일학교
예배시간 전에 교회 승합차를 운행했어야 했습니다.
보통은 교육전도사가 승합차 운 전을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운전 면허가 없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 같았으면 운전 면허도 없냐고 구박을 하셨거나 운전 면허 빨리 따라고
독촉을 하셨을 텐데 목사님은 한번도 그런 일 없이 제게 예배 준비를 부탁하시고 목사님이
손수 승합차 운행을 나가셨습니다.
부교역자는 힘든 허드렛일을 시키고 담임 목사님은 고상한 일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송 목 사님은 저를 완전한 동역자로 생각하시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짐을 나누어지는 동 역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 제 집이 잠실에 있었습니다.
교회와 직선 거리로는 한강을 건너서 얼마 안 되지만,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저는,
버스 두 정거장 거리를 버스를 타거나 혹은 걸어서 서빙고 역까지 가서,
국철, 4호선, 2호선 이렇게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집에 가야 했습니다.
그 래서 교회에서 집까지 가는데 보통 1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가 끝나면 목회자가 진이 빠지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것이 사실인데,
언젠가부터 목사님은 교회 승합차로 저를 집까지 태워다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차로 가면 30분이면 가는데 버스 전철 갈아타면서 1시간이나 가면 힘들다면서 말입니다.
사실, 목사님 이 차를 태워주시면 저는 1시간 갈 것을 30분에 가니 좋지만,
목사님은 30분 가서 저를 내려 주시고 다시 30분을 돌아오셔야 했기에 1시간 운전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주일 저녁은 물론,
수요일 저녁에도 그렇게 저를 집까지 거의 늘 바래다 주셨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뜻하지 않게 유학생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을 때,
성경책 한 권 외에는 설교나 목회를 위해 도움이 될만한 책이 한 권도 없었을 때 목사님께서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목회에 도움이 되는 귀한 책들을 엄선해서 비싼 항공 우편료를 들여서
여러 권 보내주셨습니다. 그 책들과 그 책들을 통한 송목사님의 격려가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땅에 서 첫 목회를 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글로세리 스토어에 가서 ‘Forger’ 커피를 보면 늘 목사님 생각이 났 습니다.
목사님 댁에 가면 늘 귀한 커피가 있다면서 제게 타주시던 커피가 바로 그 Folger 커피였기 때문입니다.
산돌교회에 나오시던, 90이 넘으신 거동이 불편하신 영락교회 출신 권 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권사님이 아들이 미국에서 사 온 것이라면서 목사님께 드시라고 드린 것인데,
제가 목사님 댁에 가면 목사님은 그 귀한 커피를 늘 손수 타 주셨습니다.
한번은, 한국에 다니러 가는 학생 중에 주성동을 잘 알고 산돌교회 간판도 지나가다 얼핏 보았다는
학생이 있기에 목사님 생각이 나서 Folger 커피를 몇 통 사서 인편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그 학생이 다시 미국에 들어오는 편에 커피 값의
몇 십 배가 될 만큼 많은 책을 사서 또 보내오셨습니다.
목사님께 소식을 전해 드린 지 1년이 훌쩍 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연락은 자주 드리지 못 하지만 목사님의 훌륭하신 모습 기억하고
본 받아서 바른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
- 진지훈 목사, 미국, 해와 달 5월호
“지난번 있던 교회에서 사례비를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송기연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들은 질문입니다.
“예, 50만원 받았습니다.”
작은 개척교회라 오려는 전도사들이 없다고 넋두리를 하시면서 목사님께서는
지난번 있던 교회에서 받은 사례만큼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실 지난번 있던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교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사례를 주시기는 힘들다고 생각을 했고,
설령 형편이 못되어서 적게 주시더라도 감사히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매달 꼬박 꼬박 약속하신 대로 50만원을 챙겨 주셨습니다.
학생들까지 합쳐서 성도 수 30명이 전부.
담임 목사님이 교회에서 받는 사례도 50만원이었는데 목사님은
파트타임 교육전도사 사례를 50만원씩 꼭 챙겨주셨습니다.
교회가 있는 지리적인 위치를 보면 어떻게 이런 곳에 교회를 개척하실 생각을 했을까 할 정 도로
위치가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 북쪽은 오산고등학교 뒷담과 좁은 골목을 사이로 붙어 있고,
교회 남쪽은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만한 골목길을 조금 빠져나가면 바로 한강입니다.
더욱이 주성동이라는 동네는 이름은 있지만 실제 행정 구역에 없는,
동사무소도 없어서 동 빙고동에서 행정을 관할하는 그런 동네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거나 부흥하기 정말 힘든 지리적인 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그런 교회였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개척을 하고 몇 년 되었을 때, 부흥하기에는 교회 위치가 너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개발 예정지인, 소위 목 좋은 곳에 교회 용도로 좋은 자리가 있어서 교회를 옮기려고 계획하셨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기면 지금 있는 성도들 가운데 몇 명이
도저히 교회를 나올 수 없는 처지가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결국 포기하셨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 하나라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결국
그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어리석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지만,
오늘날 많은 목사님들이 교인 한 두 사람 잃어도 목 좋은 곳에 가면 금방 몇 배,
몇 십 배 쉽게 불어날 것만을 생각하고 교회의 양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지금 있는 한 두 사람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송기연 목사 님은 결과적인 숫자보다는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아는 진정한 목회자이셨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 가운데 몇 명이 버스 4-5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오기 때문에 주일 오전 주 일학교
예배시간 전에 교회 승합차를 운행했어야 했습니다.
보통은 교육전도사가 승합차 운 전을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운전 면허가 없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 같았으면 운전 면허도 없냐고 구박을 하셨거나 운전 면허 빨리 따라고
독촉을 하셨을 텐데 목사님은 한번도 그런 일 없이 제게 예배 준비를 부탁하시고 목사님이
손수 승합차 운행을 나가셨습니다.
부교역자는 힘든 허드렛일을 시키고 담임 목사님은 고상한 일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송 목 사님은 저를 완전한 동역자로 생각하시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짐을 나누어지는 동 역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 당시 제 집이 잠실에 있었습니다.
교회와 직선 거리로는 한강을 건너서 얼마 안 되지만,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저는,
버스 두 정거장 거리를 버스를 타거나 혹은 걸어서 서빙고 역까지 가서,
국철, 4호선, 2호선 이렇게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집에 가야 했습니다.
그 래서 교회에서 집까지 가는데 보통 1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주일 저녁 예배가 끝나면 목회자가 진이 빠지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것이 사실인데,
언젠가부터 목사님은 교회 승합차로 저를 집까지 태워다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차로 가면 30분이면 가는데 버스 전철 갈아타면서 1시간이나 가면 힘들다면서 말입니다.
사실, 목사님 이 차를 태워주시면 저는 1시간 갈 것을 30분에 가니 좋지만,
목사님은 30분 가서 저를 내려 주시고 다시 30분을 돌아오셔야 했기에 1시간 운전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주일 저녁은 물론,
수요일 저녁에도 그렇게 저를 집까지 거의 늘 바래다 주셨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뜻하지 않게 유학생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을 때,
성경책 한 권 외에는 설교나 목회를 위해 도움이 될만한 책이 한 권도 없었을 때 목사님께서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목회에 도움이 되는 귀한 책들을 엄선해서 비싼 항공 우편료를 들여서
여러 권 보내주셨습니다. 그 책들과 그 책들을 통한 송목사님의 격려가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땅에 서 첫 목회를 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글로세리 스토어에 가서 ‘Forger’ 커피를 보면 늘 목사님 생각이 났 습니다.
목사님 댁에 가면 늘 귀한 커피가 있다면서 제게 타주시던 커피가 바로 그 Folger 커피였기 때문입니다.
산돌교회에 나오시던, 90이 넘으신 거동이 불편하신 영락교회 출신 권 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권사님이 아들이 미국에서 사 온 것이라면서 목사님께 드시라고 드린 것인데,
제가 목사님 댁에 가면 목사님은 그 귀한 커피를 늘 손수 타 주셨습니다.
한번은, 한국에 다니러 가는 학생 중에 주성동을 잘 알고 산돌교회 간판도 지나가다 얼핏 보았다는
학생이 있기에 목사님 생각이 나서 Folger 커피를 몇 통 사서 인편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그 학생이 다시 미국에 들어오는 편에 커피 값의
몇 십 배가 될 만큼 많은 책을 사서 또 보내오셨습니다.
목사님께 소식을 전해 드린 지 1년이 훌쩍 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연락은 자주 드리지 못 하지만 목사님의 훌륭하신 모습 기억하고
본 받아서 바른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
- 진지훈 목사, 미국, 해와 달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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